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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널하우스 Nov 05. 2024

좋은 사람 콤플렉스


'당신은 좋은 사람 콤플렉스인 것 같아요'라는 겸연쩍은 말을 들어 버렸다. '그런가요?'라며 말 그대로 겸연쩍게 웃어넘겼지만 얼마 간의 시간이 흐른 지금, 그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일단 나는 좋은 사람은 아니다. 이것만큼은 단언할 수 있다. 나의 심연에 도사리고 있는 욕망의 항아리에는 무섭고 섬뜩한 것들이 무수히 득실거리고 있기 때문이다. 


냉혈적이고 시니컬한 내가 있고, 포학하고 심술궂은 내가 있으며, 폭력적이고 허무한 내가 있다. 물론, 차마 입에 담기 힘든 '나'들도 많다. 거기서 분출되는 욕구와 메시지들이 인터페이스를 거치지 않고 밖으로 튀어나와 버린다면 나로서도 굉장히 처치곤란일 것이다.


반면, 따뜻하고 포지티브 한 내가 있고, 인자하고 존중하는 내가 있으며, 평화적이고 충만한 내가 있다. 될 수 있다면, 타자와는 이런 상냥한 '나'로 마주하려 노력하는 편이긴 하다. 논리적이 다거나 다소 이성적이다라는 말을 듣곤 하지만 이것도 나름 신경 쓰는 편이라는 걸 알아줬음 한다.(놀랍게도 나는 'T'가 아닌 'F'다) 선택의 순간에서 가급적 상냥한 자신을 선택하는 것을 '콤플렉스'적이라고도 할 수 있다면, 나는 '좋은 사람 콤플렉스'가 맞다. 좋은 사람 콤플렉스임을 시원하게 인정하는 바이다.


좋은 사람처럼 행동하기 위해서는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내면의 나'와 '타자가 바라보는 나'의 괴리로 인해 난감함을 느낄 때도 있다. 회의적인 결과와 상황에서도 자신을 추슬러야만 한다. 일말의 냉소와 부정에도 무너질 모래성 같은 논리에 상상력이란 CPR을 게을리해서도 안된다. 여간해서 좋은 사람인 척 구는 것은 꽤나 품이 많이 들고 어려운 일이다. 그래도 얻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는 말할 수 없다.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했던 흔적들이 남는다.(뭐 별거 없나?) 


그 흔적들은 연대하여 물리적인 세계에 금방이라도 뛰쳐나가려 발버둥 치는 위험한 욕망들을 단속해 주기도 한다. 그러한 통제력을 유지하는 이상 내면의 안전지대 안에서 마음껏 욕망할 수 있도록 해준다. 냉혈적이고 시니컬하고 포학하고 심술궂고 폭력적이고 허무한 '나라는 타자'가 내면에서 만큼은 마음껏 날뛰어도 좋다. 좋은 사람인 척 굴었던 허물이 내면에서 외면으로 향하려는 암흑물질들을 붙잡으며 유통시간을 벌어주는 동안은 말이다.


마음에서부터 우러나오는 선행과 친절이라면 더할 나위가 없겠으나 그러한 기대는 어쩌면 타인에 대한 욕망을 넘어 욕심인 면도 없잖아 있는 것 같다.(그런 게 더 콤플렉스적이지 않나) 어떠한 선택의 기로에서 무수한 사고를 회전한 끝에 친절을 베풀었다면, 결과적으로 좋은 사람이었다고 보는 것이 맞다고 본다. 


손익을 따져보기도 하고, 저항적인 심리를 느꼈다 할지라도 무수한 '나'라는 욕망의 주체 안에서 이 순간 친절을 선택한 이상, 선택한 친절을 행동하는 동안, 얼마간 친절의 마음이 깃들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친절을 행하는 동안만큼은 이러니 저러니 해도 좋은 사람으로 보는 것이 맞지 않을까. 그 정도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한 일이 아닌가 맘 편하게 생각한다. 차후에 어떠한 잘못을 저질렀다 할지라도 친절했던 자신이 사라지는 것도 아닐 테니.


나를 '좋은 사람 콤플렉스'로 지목한 상대의 의도를 잘은 모르겠으나, 겸연쩍게 웃고 만 이유는 콤플렉스를 통해 심연의 민낯이 들춰져 버린 듯한 자각 혹은 부끄러움 때문은 아니었다. 내가 노력하는 모습을 상대가 알아봐 준 게 아닐까 하는 멋쩍음 때문이었다.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은 물론 좋은 사람인 척 구는 것도 어렵다. 이왕 만났으니 친절하게 대하자라는 연기 아닌 연기에서 어떠한 애씀을 발견하고서는 '그거 힘들지 않나요?'라며 알아주는 것 같아 고마웠고, 들켜버린 것 같아 미안했다.


'좋은 사람 콤플렉스'는 내게 있어 일종의 파수꾼 역할을 담당한다. 애들이란 달릴 때는 어디로 달리는 지도 모르는 법이다. 사고와 욕망 또한 실로 그렇게 작용하지 않던가. 뛰노는 아이들이 절벽으로 떨어질 것 같으면 재빨리 잡아주어야 하고, 물에 빠진 개구쟁이들을 건져 올려주어야 하고, 다소 음침한 녀석이라도 마음껏 어울려 놀 수 있게 호밀밭을 보살펴야만 한다. 콤플렉스 가득한 '좋은 사람'이 내게는 든든한 뒷배인 것이다. 본심이야 어떻든 내 안의 누구라도 벼랑으로 떨어질 것 같다면 꽉 붙잡아 줄 테니까. 이 녀석을 믿고 오늘도 활개를 치며 돌아다닌다. 이만하면 보통 콤플렉스가 아니다. 그래서 탄로 나 버린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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