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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이 너무 없는 회사?

by 널하우스


예전에는 "일이 너무 많아서 힘들어"라는 이야기가 주를 이뤘다면, 요즘엔 "일이 너무 없어서 힘들어"라는 고백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 '일이 없다'는 말이 단순히 입사할 자리가 없다는 의미는 아니다. 취업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사람들도 많겠지만, 사실 회사에서 자신이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있다는 확신을 가지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다. 가짜 노동, 그저 형식적인 일, 해야만 하는 일들에 휘말리는 사람들을 나는 주변에서도 어렵지 않게 발견한다.


회사를 다니는 친구는 몇 번을 만나도 불안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오늘도 아무것도 안 했어" 그렇게 말하는 그를 보며 나는 물었다. “그럼 루팡이라도 해보지 그랬어?” 하지만 그 질문이 제대로 가닿을 리 없다는 걸 알았다. 그 친구의 불안은 단순히 '무언가를 하지 못한다'는 불편함만이 아니었다. 그가 느끼는 불안은 자신이 존재한다는 증거를 일로부터 찾을 수 없다는 무력감에 가까웠다. 아주 정직한 입장표명이라 할 수밖에 없겠다.


‘일이 없어서 힘들다’는 말은 우리가 ‘일’을 단순히 생계를 위한 수단으로만 여기는 시대는 이미 지나갔다는 걸 뜻한다. 오늘날, 일은 우리 존재의 가치를 증명하는 방식이 되어버렸다. 왜냐하면, 우리가 존재한다는 증거를 보여줄 때,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무엇인가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통해 인정받기 때문이다. 물경력에 대한 걱정이나 커리어 패스를 위한 과도한 노력도 결국 존재의 공허함을 피하고 자신의 가치를 타인에게 승인받기 위한 심리작용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일이 없다는 건 단순히 '쉬는 시간'을 누리는 문제가 아니게 된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자신의 존재를 증명할 기회를 놓치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러한 믿음은 사회가 요구하는 '생산적 존재'라는 기준에 길들여진 결과물일지도 모른다. 마틴 루터 킹은 벽돌을 쌓는 일이 단순한 고역이나 돈을 버는 일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아름다운 집을 짓는 일이 될 수도 있다라며 직업윤리와 소명의식을 제안했는데, 이런 인식은 자칫 모든 일이 보람차고 의미 있어야만 한다는 압박감을 느끼게 할 수도 있다. 윤리는 당위적 문제로 쉽게 치환되고는 하니까.


하지만 우리가 어떤 일을 할 때, 그 일이 반드시 '보람'과 '의미'를 가져야만 한다는 기대는, 오히려 우리를 더 큰 불안에 빠뜨리지는 않을까? 일을 통해 나를 정의하려는 욕망은, 때로는 일 자체에 대한 강박으로 변질될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모든 일이 반드시 보람 있어야만 한다는 강박을 덜어내고, 그 자체로 가질 수 있는 단순한 의미를 찾아야 하는 건 아닐까?


전체를 설명하려는 규범이 결국 부분적인 특수성을 간과하게 되는 것처럼, 일이 반드시 보람 있고 의미 있어야만 한다는 기대가 오히려 우리의 삶에서 개별적이고 단순한 의미를 놓치게 만들지 않을까 나로서는 염려되는 것이다.


일이 없다는 불안은 내가 무언가를 하고 있지 않다는 느낌에서 비롯되며, 그것이 곧 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느낌으로 연결된다. 우리는 스스로를 정의하는 방식으로서 일을 바라보지만, 어쩌면 그 안에서 '생산적 존재'로서의 정체성만을 좇으며 일원화되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마틴 루터 킹의 선의에서 비롯된 사상도 일 그 자체에 대한 부담으로만 작용하게 된다면, 우리는 일 이외에 나를 증명할 방법이 없다는 믿음을 강화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길게 써버렸지만, 오늘따라 한가한 회사에서 쉬는 법과 노는 법을 연구하는 본인을 합리화하기 위한 이야기였다. 한시적으로 '비생산적 존재'가 되어버렸다. 이런 여유를 허락해 준 회사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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