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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널하우스 Nov 21. 2024

서비스와 삼자대면


오픈튜토리얼스라는 비영리단체의 기고문을 읽으면서 기억에 남는 문장이 있었다. "종말에 대한 애도가 아니라, 완주에 대한 축제가 될 수 있다면." 단체 설립을 공언하는 입장에서 아름다운 소멸을 전망하는 운영자들의 태도를 보며, 서비스의 본질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서비스는 필요에 의해 생산된다. 그렇다면 더 이상 필요하지 않게 되었을 때 소멸해야만 한다. 하지만 때때로 서비스는 '존재하는 것' 그 자체를 목적으로 삼고 지속되는 안타까운 상황에 처하기도 한다.


불필요한 서비스는 존재하기만 해도 소비자와 생산자 모두에게 해가 될 수 있다. 고정비용을 지불하기 위해 불필요한 기능, 불필요한 업무, 불필요한 광고, 불필요한 경쟁, 불필요한 착취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는 서비스가 운영되는 몸집의 크기와 비례한다. 본래 필요에 대한 판단은 소비자의 몫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서비스는 생존을 위해 종종 자본에 의해 지배받을 수밖에 없고, 이로 인해 본질이 훼손되기도 한다.


이러한 고민이 오픈튜토리얼스의 활동에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었다. 플랫폼의 생태계와 기능 개선, 콘텐츠 생산자에 대한 지원 방안, 기금 마련, 영리와 비영리의 상호부조까지 다방면에 대한 고찰이 투명하게 공개되었다. 그들은 언젠가 불필요한 서비스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참여자들의 콘텐츠를 백업할 방법도 준비해두었다. 그들의 소멸이, 종말이 아니라 완주로 이어질 수 있도록 말이다.


보다 성숙한 서비스, 그리고 그런 서비스를 제공하는 조직은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지인들과 ‘콘텐츠’와 ‘커뮤니티’에 대해 논의한 적이 있었다. 그 논의의 핵심은 콘텐츠가 먼저인가 커뮤니티가 먼저인가였다. 이른바 닭이 먼저인가, 달걀이 먼저인가와 비슷한 문제였지만, 나는 커뮤니티가 먼저라고 생각했다.


한번은 지인들의 도움으로 '메타커뮤니티'라는 실험을 해볼 수 있었다. '커뮤니티의 커뮤니티'라는 당찬 포부로 시작된 이 실험은, 콘텐츠 없이 사람을 먼저 모은 후 그들이 자체적으로 콘텐츠를 만들어가는 방식이었다. 물론 쉽지 않은 과정이었지만, 나의 상상 이상으로 흥미로운 경험들을 할 수 있었다. 현재의 오픈튜토리얼스 역시 참여자들이 콘텐츠의 생산자가 되는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그러나 커뮤니티를 구성하려면 분명 매력적인 콘텐츠가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동일한 관심사를 공유하며 유대가 쌓이고, 그 관계들이 확장되면서 커뮤니티가 형성되기 때문이다. 오픈튜토리얼스의 전신인 생활코딩은 ‘일반인들을 위한 프로그래밍 교육’이라는 콘텐츠에서 출발했다. 그 이후에는 콘텐츠를 담을 그릇인 플랫폼이 필요했고, 그것이 오픈튜토리얼스가 되었다.


생활코딩의 이고잉은 ‘ㅋㅋㅋ전략’이라 불리는 이론을 제시했다. 그것은 콘텐츠, 컨테이너, 커뮤니티 이 세 가지 요소가 지속 가능한 서비스 운영에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다. 정보를 전달하는 콘텐츠, 콘텐츠를 담는 그릇인 컨테이너, 컨테이너 안에서 콘텐츠를 향유하는 커뮤니티, 이렇게 세 요소는 반드시 조화를 이루어야만 한다.


디지털적으로 콘텐츠, 컨테이너, 커뮤니티를 깔끔하게 구분할 수는 없겠지만, 이 세 가지에 중점을 두는 방식은 각기 다를 수 있다. 콘텐츠에 중점을 두는 것은 생산자 측면에서, 컨테이너에 중점을 두는 것은 운영자 측면에서, 커뮤니티에 중점을 두는 것은 소비자 측면에서 바라볼 수 있겠다.


콘텐츠에 중점을 두는 것은 생산자가 제공하는 정보나 자료, 혹은 제품 자체에 집중하는 방식이다. 이 방식에서는 콘텐츠의 품질과 유용성, 창의성 등이 핵심이 된다. 


반면, 컨테이너에 중점을 두는 것은 콘텐츠를 담고 이를 효율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구조와 기능을 설계하는 데 집중하는 방식이다. 컨테이너는 물질적 공간에서 부터 플랫폼, 시스템, 인터페이스 등을 포함하며, 사용자 경험과 접근성, 기술적 안정성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마지막으로 커뮤니티에 중점을 두는 것은 참여자들 간의 상호작용과 관계 형성, 공동체의 가치를 중요시하는 접근법이다. 커뮤니티는 단순히 콘텐츠를 소비하는 곳이 아니라, 사용자들이 서로 의견을 나누고, 지원하며, 협력할 수 있는 장으로 기능한다.


결국, 우리의 논의는 콘텐츠와 커뮤니티의 비교우위에 대한 논의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서비스 그 자체에 대한 논의로 확장될 수밖에 없었다. 생산자와 소비자 양측에서의 논의는 자연스럽게 운영과 관리의 장에서 맞닿게 되며, 이 삼각관계에서 균형을 맞추는 것이 더 성숙한 서비스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라 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서비스의 본질이 성숙하게 발현되는 순간, 그것은 서비스 제공자뿐만 아니라 그 서비스를 이용하는 모든 사람에게 더 큰 가치를 창출하게 될 것이다. 이는 단순히 이상적인 모델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오픈튜토리얼스나 탈중앙화된 자율조직(Decentralized Autonomous Organization, DAO) 같은 실제 사례에서 그 가능성을 엿볼 수 있다. 


이러한 모델이 현실화되기까지는 많은 과제가 남아 있지만, 그 과정에서 얻는 인사이트와 경험이 결국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발판이 될 것이다. 불가능하다는 것은 아직 할 일이 많다는 말이 아니겠는가.


그런 점에서 상대가 콘텐츠파인 한 나는 커뮤니티파로 남을 수밖에 없다. 우리의 논의를 한가운데에서 듣던 마지막 지인 한 분을 내 멋대로 '컨테이너파'라고 지정했기 때문이다. 각자의 입장에서 무엇을 중시하느냐에 따라 각기 다른 역할이 존재할테지만, 바로 그러한 역할들이 함께 어우러져야 비로소 균형 잡힌 시스템이 완성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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