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든 페이스

영화와는 관계없는 감상문

by 널하우스


"남들이 가진 만큼 나도 가져야 하고, 남들이 누리는 만큼 나도 누려야 한다" 오르테가라는 저명한 사상가는 대중사회에서 나타나는 '획일적 평등주의'를 이렇게 비판한 적이 있다. 맹목적인 평등의 추구는 결국 자신만의 욕망과 개성을 지우고 집단 속의 ‘익명적인 존재’로 사라지게 만들 뿐이라고.


이런 문제를 니체는 더욱 직설적으로 비판했는데, 대중이 추구하는 평등이 '노예도덕'의 확산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다른 사람과 같게'라는 무력한 구호는 자신을 넘어서는 힘이나 독립적인 욕망의 발현이 아니라, 오직 반동적 본능에 의해 움직인다. 강한 자에 대한 원한과 복수심만이 존재할 뿐, 그들은 스스로를 긍정할 힘이 없는 노예인 것이다.


'동일성'과 '익명성'이라는 대중에 대한 주된 논리는 식상하리만큼 숱한 문제의식에 직면해 왔다. 하지만 나는 그러한 비판이 대중에게서 보여지는 칠칠치 못하고 어리숙한 모습 때문만은 아니라 느껴진다. 동일성과 익명성은 오히려 집단을 하나로 묶는 중요한 장치이자, 대중을 대중으로 존재하게 만드는 강대한 힘이기 때문이다.


무엇이 비판의 대상이 되는가 생각해 보면, 대상에 내재된 단순한 오류나 한계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어쩌면 그 안에는 우리가 경계하고 제동을 걸어야 할 만큼 강력한 권력이 담겨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대중의 힘은 그 자체로 강력하다. 마치 흐르는 강처럼, 모든 것을 집합체로 몰아넣고, 개별적인 흐름을 차단해 버린다.


흐르는 강 속에서 익명화된 개인은 겉으론 집합적이고 공적인 삶에 은신하지만 물 밑에선 개인의 은밀함을 따르는 사적인 삶을 영위해 나간다. 더 이상 타인의 눈에 띄지 않을 때, 은밀한 쾌락은 더욱 강하게 드러난다. 은밀함은 비대칭적인 정보의 불균형을 만들어낸다.


너는 모르지만 나만 아는 은밀하고 비밀스러운 사실은 쾌락을 배가시킨다. 이는 대중의 속성과 이율배반을 일으킬 것 같지만, 사실은 그 반대이다. 대중이 강하게 결속하는데 한 눈을 팔수록 개인에게 은밀함의 기회는 더욱 많아지기 때문이다. 동일성과 익명성은 자신만의 비밀스러운 욕망을 추구하는데 중요한 수단인 것이다.


이쯤에서 오르테가가 그의 책 제목을 <대중의 충성>이 아니라 <대중의 반역>이라 지은 이유를 떠올려본다. 대중 사회가 내포한 동일성과 익명성이 집단의 결속을 강화하는 동시에, 그 결속을 유지하려는 권력의 또 다른 형태로 작용한다면 순전히 대중을 나약한 '노예도덕'으로 치부하기도 어렵고, 그렇다고 고귀한 '주인도덕'으로 칭송하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순진한 양의 탈을 쓰고 집단에 충성하는 듯 하지만, 자신의 권력을 모를 만큼 대중들은 순진하지 않다. 오히려 그 이면에서는 편익을 위해 권력을 이용할 만큼 명민하다. 시대의 소음에 민감한 소설이나 영화는 이제 한 명의 세계사적 인물을 다루지 않는다. 대중 속에 숨겨진 개인들의 비밀스러운 얼굴을, 그들의 <히든 페이스>를 탐구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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