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ve In Red Ocean
두 번째 촬영을 끝냈다. 아쉬움이 많았다. 그에 대한 회고를 남겨둔다.
콘텐츠의 기본 골격은 2030 남자 세 명이 다양한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연애, 인간관계, 행복, 불행, 일, 꿈 등등 가능한 모든 것을 다룬다. 카메라 한 대로 우리의 일상 이야기를 담는 문자 그대로 비디오 로그(Video Log)인 셈이다.
이야기는 사람에 따라 달리 표현될 수 있지만, 주어지는 역할에 따라서도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되기도 한다. 우리는 각자가 '호스트'의 역할을 맡게 되었다. 대면하는 세 사람은 물론이고 스크린 너머에서 지켜볼 시청자에게도 우리의 이야기는 전해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역할을 떠안음으로써 아쉬운 점도 함께 떠안게 되는 건 불가피했나 보다.
아무래도 카메라를 켜고 이야기를 하다 보니 의식적이었다. 충분히 생각하고 천천히 이야기해도 될 것을 서둘러 다듬어지지 않은 말들을 꺼냈다. 빙 돌아가는 이야기는 집중력을 떨어뜨리고, 화자들의 체력도 떨어뜨렸다. 무음 구간은 컷편집으로 충분히 대처가 가능한데도 자꾸만 빈 말로 침묵을 채우려고 했다. 말을 마무리 짓지 못하고 어영부영 정리하기도 했다.
그로 인해 개성적이거나 진정성이 느껴지는 생각들이 덜 비쳤다. 새로운 인식을 깨닫게 한다거나(개성) 정직하게 비치는 것(진정성)이 내가 견해를 표현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두 가지다. 새로운 인식은 그 자체로 견해로서 가치가 충분하기 때문이고, 진정성은 이미 익숙한 인식도 새롭게 느끼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하게 의식된 언변에서 화자들의 개성이나 진정성보다는 사족들이 많이 달렸다.
주제 소모도 많았다. 주제를 준비해 가도 그때그때 바뀌기 일쑤지만 편집하지 않은 원본영상에서도 5분이 채 안 되는 주기로 주제전환이 빈번했다. 주제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이야기를 한다는 건 좋으나 그렇다고 너무 얕게 다뤄서는 안 되겠다. 준비한 말들이 떨어졌다고 어물쩍 주제를 넘기기보다는 넉넉히 숙고해 보는 시간을 가질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멘트 비중이 많이 치우쳤다. 물론 세 사람의 이야기 빈도를 기계적으로 맞출 필요는 없겠지만 한쪽에 과잉된 전개는 인터뷰나 인물 탐구가 아닌 이상 어느 정도 절제가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셋 다 말하는 것을 좋아해서 자기가 할 이야기만 생각하느라 주제를 잊기도 하고 중간에 끼어들어 이야기의 흐름이 산으로 가는 경우도 많았기 때문이다. 적재적소에서 리액션과 반론을 제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먼저 충분히 들어줘야겠다.
정리하자면 침묵을 초조해하지 말 것, 견해에 개성 혹은 진정성을 담으려 노력할 것, 주제에 대해 넉넉히 숙고해 볼 것, 충분히 들어줄 것, 이상이다. 나열하고 보니 로버트 풀검의 책 제목이 불현듯 떠오른다. '내가 정말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유치원에서 배웠다'. 정말 그런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