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남자는 두 갈래로 나뉜다는 모양이다.
하나는 어깨가 넓고, 턱이 각지고, 콜드브루 대신 닭가슴살 쉐이크를 마시는 테토남. 다른 하나는 펭귄 클래식 문고판을 뒤적이며 드라이 와인을 곁들일 것만 같은 에겐남. 한쪽은 트레이닝복의 삶, 다른 한쪽은 트위드 재킷의 삶. ‘남자다움’의 이중적 해석이 흥미롭다.
사내라면 모름지기 허벅지 근육을 팽팽히 단련해야 하고, 웨이트 트레이닝 중간중간에 "남자는 원래 고독한 법"이라고 중얼거려야 한다. 그게 아니라면, 철학서 두 장을 넘기기 위해 한 시간을 보내고, 우산을 고를 때는 색보다 ‘소리’를 듣는다던가 하는 섬세한 기품이 느껴져야 한다. 마치 에스프레소보단 룽고가 어울리는 남자랄까.
남자다움의 이러한 집적들을 나는 심플하게 요약해 본다. 그것은 '허세'다.
참으로 다루기 까다로운 존재들이다. ‘남자다움’이란 이름 아래, 매일을 단련하고 또 연출해야 하니까. 하지만 이 연출에는 치명적인 문제가 하나 있다. 이를테면 위기내성 내지 지속성이랄까.
1912년, 타이타닉호는 얼음산에 부딪혔고, 그 안의 사람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최후를 맞았다. 당시 재벌이었던 벤저민 구겐하임은 만찬용 턱시도로 갈아입었다. 차분히 브랜디를 따르고, 시가에 불을 붙였다. 저명한 언론인 윌리엄 스테드, 그는 흡연실에 앉아 무릎까지 차오르는 바닷물을 아랑곳하지 않고 책을 읽었다.
이들뿐만이 아니다. 오케스트라 단원, 화부들, 선원들, 성직자들 모두 구명보트의 마지막 자리를 주저 없이 다른 이들에게 양보했다. 여자와 어린아이를 둘러업고 물폭탄을 통과해 구명정에 실어 내보냈다. 더는 할 일이 없어지자 몇몇 무리는 모여서 카드놀이를 하였다고 한다.
그들의 태도는 사선을 넘나드는 상황에서도 흔들림이 없다. 그들은 테토남일까, 에겐남일까, 아니면 알파남일까?
“위기 속에서 어떤 자세로 무너질 것인가.”
질문에 대한 그들의 연출은 100년이 지나도 신사답다. 허세는 최후의 순간에 본색이 되기도 한다. 어쩌면, 진짜배기 남자의 허세란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