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아웃이라는 현상은 흔히 감정의 언어로 해석된다. 탈진, 무기력, 슬럼프 같은 말들로 설명되지만, 나는 번아웃을 감성의 문제가 아닌 ‘사고의 형식’에서 비롯된 문제로 보는 게 옳다고 본다. 의지라는 것은 감정보다 논리에 기대는 경우가 많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사고의 관점에서 번아웃은 '추론 불가능성'의 상태다. 논리적 연쇄를 따라가다가 결국 막다른 길에 이르고, 더 이상 나아갈 경로가 보이지 않을 때 우리는 좌절한다. 선택지도 없고 새로운 가설도 떠오르지 않는다. 그렇게 모든 가능성이 닫히는 순간, 사고는 멈추고 사람은 주저앉는다.
사고의 정지는 곧 감성의 비상신호로 전이된다. 분노, 우울, 혐오 같은 감정이 끓어오르며 이 막막함을 덮어보려 하지만, 결국 소진되는 것은 우리의 의지다. 번아웃은 그 감정들이 우리를 삼킨 결과처럼 보이지만, 실은 사고의 에너지 고갈이 먼저 찾아온 것이다.
그래서 나는 번아웃을 감정의 양태가 아니라, 사고의 구조가 망가진 상태로 간주한다.
이 세상은 과학적 사고, 즉 측정 가능하고 검증 가능한 인과로만 움직이지는 않는다. 구조주의 인류학자 레비스트로스는 ‘야생적 사고’라는 개념을 제안했다. 이는 신화나 주술처럼, 시간의 누적된 흐름 속에서 작동하는 사고방식이다. 믿음과 반복, 상징과 신뢰로 움직이는 사유 방식이다.
‘신앙’이라는 것도 그렇다. 눈에 보이지 않고, 손에 잡히지도 않는 신을 믿는다는 것은 과학적 사고로는 설명이 불가능하다. 하지만 ‘야생적 사고’로 보면, 신앙은 추론이 막힌 순간에도 삶을 지속하게 하는 지적 장치다. 신이라는 개념은, 직접 증명할 수 없지만 강력한 매개물로 작용한다. 그것을 통해 인간은 다시 앞으로 나아갈 동기를 얻기 때문이다.
프로그래밍에서도 마찬가지다. 코드를 아무리 분석해도 원인을 찾지 못할 때, 불현듯 하나의 변수만 새로 투입해도 문제가 해결되곤 한다. (물론 마구 할당하면 큰일이 난다.) 핵심은 언제, 어떤 변수로 사고를 환기할지를 아는 일이다.
조작 개념, 매개물, 변수-이들은 모두 사고의 틀을 재편하는 방식이다. 과학적 사고가 '측정 가능한 단서'를 필요로 한다면, 야생적 사고는 '시간의 층위에 쌓인 상징'을 다룬다. 전자는 단기적 추론을, 후자는 장기적 회복력을 견인한다. 그런 점에서 나는 번아웃을 사고의 정지, 혹은 사고방식의 교착 상태로 정의한다.
눈치채셨겠지만, 나는 지금 번아웃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