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역사를 감히 한 단어로 축약해 본다. 인류의 역사는 ‘리스크 헤지(Risk Hedge)’의 역사다. 나는 위대한 인류학자가 아니다. 그래서 이 말에 그다지 신빙성은 없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잠깐만 기다려주길 바란다. 프랑스의 철학자 레비나스는, 한 사람이 생을 마감하면 그와 함께 한 사람 분의 진리가 세상에서 사라진다고 말했다. 진리가 전체에 귀속되지 않는다면, 이 당돌한 일갈에도 손톱만큼의 정당성은 있지 않겠는가.
‘하이 리턴-하이 리스크’, ‘고이익-고위험’은 자본시장에서 경제활동을 하는 우리에게 이미 익숙한 언어다. 그렇다면 ‘트레이드오프(Trade-off)’는 어떤가. 하나를 택하면 하나를 포기해야 하는 모순적 관계. 이 또한 상식적인 범주 안에서 받아들여진다. 하지만 문제는 ‘리스크 헤지’다. 위험을 예방하고 분산하는 이 활동이, 지금 우리 사회에서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가? 나는 감히 진단해 본다. 그렇지 않다고.
‘하이 리턴-하이 리스크’로 돌아가보자. ‘큰 이익에는 큰 위험이 따른다’는 말에서 사람들은 이익 쪽에 더 강하게 반응하는 듯하다. 이익을 얻기 위해서라면, 심지어 사람의 목숨이 위태로워도 개의치 않는다는 사고방식이 상식이 되어버린 것 같다. ‘트레이드오프’ 역시 마찬가지다. 내가 얻는 것만 중요하지, 그로 인해 누군가 희생되는 것에는 전혀 무감각하다. 이와 같은 사고방식은 ‘시장’이라는 특수한 환경에서 더욱 강하게 작동한다. 시장의 주체들은 본질적으로 ‘리턴’을 쫓고, 리스크는 뒷전으로 밀려난다. 그래서 나는 ‘시장’이라는 단어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주식시장, 부동산시장, 상품시장 같은 전통적인 경제·금융 영역은 물론이고, 의료시장, 취업시장, 교육시장, 심지어 결혼시장까지, ‘시장’이라는 단어는 우리 사회의 거의 모든 영역을 잠식해 버렸다. 후자의 경우에는, 나는 가끔 끔찍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 ‘시장’의 알고리즘은 언제나 리턴을 향하고 있지만, 그 이면에서 리스크는 아무런 예방도 받지 못한 채 방치되어 있기 때문이다.
시장이 실패할 때, 그 이유는 리턴이 줄었기 때문이 아니다. 그것은 리스크를 예방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2008년 금융위기와 서브프라임 사태는, 주식과 부동산의 수익률이 감소해서가 아니라, 불어나던 부채 리스크를 헷징하지 못했기 때문에 발생했다. 결혼생활이 지속되지 못하는 이유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그것은 찬란한 순간의 하이 리턴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트레이드오프처럼 이득과 희생을 고르게 나누지 못해서도 아니다. 사소한 말에도 상처받지 않도록, 감정의 위험을 미리 헷징하려는 평소의 작은 노력이 부족했기 때문일 것이다.
생각해 보면, 인류는 처음부터 리스크를 의식하며 살아왔다. 원초의 인간은 야수의 습격을 대비해 공동체를 이루었고, 계절의 순환 속에서 자연의 증여를 예측하고 저장하며 생존해 왔다. 불확실한 내일을 살아내기 위해, 인간은 항상 오늘의 위험을 감지하고 헷징하는 존재였다. 그 본능이 문명을 만들었고, 사회를 이뤘다. 우리가 ‘자본시장’이라는 미명 아래 살아가는 지금도, 여전히 그 원초의 본능은 유효하다. 다만, 더 많은 리턴을 쫓는 사이 더 많은 리스크를 잊고 있는 것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