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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너의 기억 속 테넌트

by 널하우스


인간의 상상력은 생각보다 그리 대단하지 않다. 결국 자신을 본떠 형상을 창조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신의 피조물’이라 자칭하는 인간은, 조물주마저 인간의 모습으로 상상하는 한계를 드러낸다.


컴퓨터 비전과 시멘틱 웹 분야에서는 ‘온톨로지’라는 개념이 자주 등장한다. 이는 사람이 이해하는 방식 그대로 컴퓨터가 이해할 수 있도록 표현 체계와 구조를 설계하는 기법이다. 컴퓨터는 문맥 속에서 무엇이 '의미 있는지' 알지 못한다. 그래서 우리는 보상과 벌이라는 체계를 부여하여, 컴퓨터라는 학생이 의미의 경계를 스스로 학습하게 만든다.


클라우드 컴퓨팅도 마찬가지다. '테넌트(tenant)'는 임차인을 뜻하며, 클라우드 환경에서 지향하는 멀티테넌시는 다양한 임차인(서비스)이 하나의 서버 안에서 울타리를 나눠 쓰며 동시에 운영되는 구조다. 한때는 융통성이라곤 찾아볼 수 없던 컴퓨팅 시스템이, 이제는 필요에 따라 실시간으로 스케일 인/아웃을 수행하며 유연하게 변화한다.


한 인간의 기억 속에도 여러 사람들이 테넌트로 입주해 있다. 그리고 나 역시 여러 사람들의 기억 속에 테넌트 되어 파편적인 조각들로 분산 처리된다. 물론 저장 용량도, 우선순위도, 해상도도 천차만별일 것이다. MECE(누락 없이, 중복 없이)하게 기억되고 싶지만 욕심일 터다. LISS(핵심추출)하게만 정리되어도 다행일 테니까.


공학 공부를 하는 이들을 ‘너드’하게 보는 시선이 있지만, 전문성이 폐쇄성을 동반할 수 있다는 데엔 이의를 제기하지 않겠다. 다만, 공학이라는 것이 인간학과 그다지 멀리 떨어져 존재할 수 없다는 말을 하고 싶을 뿐이다. 인간이란 난감한 생물은 자신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무언가를 고민하고 생산하고 발명하니까.


너드들은 때때로 모니터와 대화하며 웃는다. 롱노우즈와 드라이버를 펜처럼 휘두르곤 한다. jargon(전문용어)에 응축된 역사와 서사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흥미도 없는 사람을 붙잡고 기술의 재미를 오타쿠처럼 전도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들에게 때 묻지 않은 순수함이 느껴지는 건 왜일까.


기술 용어에도 미학적 낭만이 담겨 있음을 사람들이 슬슬 깨달은 모양이다. 너드남 대세론이 활발해지고 있다.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너드남은 생각보다 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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