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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의 미래

by 널하우스


미래를 궁금해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생각한다. 어떤 사람이 될지, 무엇을 이루게 될지 묻기보다는 그 사람이 지금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를 바라보는 쪽이 더 정확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무엇이 될 것인가’라는 질문은 삶의 방향을 가늠하고 실현 가능성을 점친다. 하지만 나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묻고 싶다. 미래는 정말 묻는 것으로만 올 수 있는가. 혹은, 이미 와 있는 것은 아닐까.


하루도 빠짐없이 운동하는 사람은 미래에도 그럴 확률이 높다. 반면, 무기력하게 하루를 보내는 사람에게는 안타깝게도 그 미래 역시 낯설지 않을 것이다. 예언이 아니다. 단지, 우리가 미래라고 부르는 어떤 것들은 사실 지금 이곳에서 이미 생성되고 있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면 인간은 늘 미래를 현재 속으로 호출하며 살아간다. ‘점심을 먹을 것이다’라는 소박한 계획부터, ‘어떤 사람이 되겠다’는 서툰 다짐까지. 이 모든 맹세는 아직 오지 않은 시간을 향해 있지만, 그 말이 발화되는 순간, 그것은 이미 지금의 나를 움직이고 있다.


‘천하무적이 되겠다’는 선언이 현실성이 부족하다는 건 누구보다 말한 자신이 잘 안다. 그럼에도 그 말이 나를 조금 더 똑바로 서게 만들고, 주저했던 선택을 향해 밀어 넣는다면, 그 말은 이미 현실을 움직인 셈이다. 어떤 개념이 가진 ‘방향성’은 그것이 실제로 이루어질 가능성과는 별개인 것이다.


출근길에 조용히 세운 목표 하나, 메모장 구석에 적힌 장래희망, 혹은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한 줌의 열망. 그것들은 모두 손에 잡히지 않는 미래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우리를 움직이는 현재의 구성요소들이다.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지금의 선택 속에서 미래들은 제각기 그 형상을 잉태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어떤 사람의 미래를 알고 싶다면, 그 사람의 오늘을 지켜보야만 한다고. 그것이야말로 가장 정직한 예언이 될 수 있다고. 현재가 얼마나 분명한가에 따라, 미래는 언제나 그 밀도만큼 다가오는 법이니까.


그래서 나는 이렇게까지 말하고 싶어진다. 어떤 사람에 대한 최고의 찬사는, 그 사람의 현재를 존중하고 지켜주는 일이라고. 그 사람의 오늘이, 곧 그 사람의 가장 찬란한 미래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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