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리스행동 1부_안희제
“백신 몇 번 맞으셨어요?”
“다섯 번째야.”
“이제 막 2차 접종했는데 어떻게 다섯 번을 맞아요, 선생님.”
2021년 봄, 해가 머리 꼭대기에서는 조금 내려온 밝은 대낮에 서울역 앞 광장에 몇 사람이 종이를 들고 다니며 설문조사를 한다. 미리 약속을 하고 만난 게 아니라 거리에서 걸어다니며 누군가를 붙들고 질문을 시작한다. 이미 서로 아는 사이인 듯 질문에 자연스럽게 대답하기 시작하는 사람도, ‘나는 그런 사람 아니다’라며 대답을 거부하는 사람도 있다. 홈리스 백신 접종 실태조사를 하겠다며 여기저기에 말을 걸고 다니는 이들은 홈리스행동 활동가들이다. 나 또한 여기에 자원활동으로 함께하고 있었다. 사실 위의 대화는 내 경험이다.
백신을 다섯 번 맞았다고 대답하는 장면은 당사자의 입장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홈리스 복지의 현실이 코로나19 시기에 어떻게 드러나는지 보여준다. 코로나19 시기에 홈리스들은 지원 기관을 방문하려면 반드시 PCR 검사를 받아야 했고, 셀 수 없이 코에 면봉을 쑤셨다. 백신을 다섯 번째 맞았다는 대답이 어리숙해 보이는 나를 놀리는 것인지, 최근에 코에 면봉을 쑤신 횟수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데에는 그런 배경이 있다.
홈리스행동에서는 ‘노숙인’ 대신 ‘홈리스(homeless)’라는 명칭을 사용한다. ‘노숙’은 말 그대로 ‘집 바깥에서 잔다’는 의미인데, 거리에서 생활하는 이들은 거리에만 머물러 있지 않다. 이들은 거리, 쪽방이나 여관, 고시원 등을 전전하며 지낸다. ‘홈리스’라는 명칭은 이를 모두 포함하기 위해 사용된다. 적절하지 않은 주거, 즉 ‘비적정 주거’에서 살아가고 있는 이들을 통칭하는 것이다.
홈리스행동은 다른 반빈곤 운동 단체들과 ‘아랫마을’이라는 한 지붕 아래에서 함께 활동한다. ‘마을’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이들은 이곳에서 만나고, 밥을 먹고, 청소를 하고, 일을 하고, 떠들고, 담배를 피운다. 2023년 3월 11일, 토요일이라 한적한 아랫마을에서 안형진 활동가를 만났다. 첫 번째 교실에서는 보통 홈리스행동 당사자 회원들이 앉아서 핸드폰을 하거나 TV를 본다. 토요일이어도 첫 번째 교실에 누가 찾아올지 몰라서일까, 우리는 기다란 폴딩도어로 칸이 나뉜 두 번째 교실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안형진: 저희는 주거권 요구를 주된 활동으로 삼고 있는데요. 사람으로서 살기에 적합하지 않은 거처들이 있는 거잖아요.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거리, 시설, 쪽방, 고시원, 여인숙 등 사람이 살기에 적합하지 않은 거처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그 당사자들을 만나고 또 조직해서 조직된 힘으로 그런 부적절한 거처에서 사람이 사는 것을 그냥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는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2001년 창립된 ‘노숙인복지와인권을실천하는사람들(이하 노실사)’은 ‘노숙인’ 당사자의 조직화를 통해 홈리스 정책의 수립과 인식 개선, 홈리스 인권 옹호를 목표로 하였다. 이후 홈리스 대중의 조직화를 위한 다양한 사업을 구체화하는 과정에서 2010년 2월에 홈리스행동이 출범했다. 홈리스 운동은 홈리스 상태를 경험한 사람들과 함께해야 하는 운동이다. 홈리스행동이라는 이름은 당사자 중심성을 강화하자는 맥락과 더불어, 당사자들이 피해자를 넘어 고발자로서, 증언자로서, 그리고 요구자로서 함께 행동한다는 방향성을 담고 있다. 홈리스행동은 현장활동, 아랫마을 홈리스야학, 미디어매체활동, 연대활동을 통해 노실사의 문제의식을 이어오고 있다(이동현, 2012).
왜 하필 2001년이었을까. 1990년대 후반, 한국에서는 외환위기 이후 수많은 이들이 직장을 잃었다. 당시 정부는 단기 공공 일자리를 통해 ‘실직 노숙자’들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리라고 봤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실직 노숙자’, ‘노숙인’과 같은 단어들이 정책 용어로 쓰이기 시작한 것도 이 시점이었다.
안형진: 저는 상근을 2018년부터 했어요. 그러니까 5년 정도 됐네요. 홈리스 운동에 참여한 것 자체는 한 10년 이상 된 것 같습니다. 2011년에 서울역에서 노숙인 강제 퇴거 조치가 있었어요. 대합실 내에 있던 분들을 주기적으로 감시하고 퇴거시키고 이런 일들이 있었고, 그 즈음에 여러 사회운동 단체들의 연대체에 참여해서 활동을 했었어요. 그 후로도 홈리스 추모제에 한 해 빼고는 함께했어요. 그렇게 홈리스행동에 자주 오게 되고 2015년, 2016년부터는 홈리스행동에서 활동들을 하나씩 하게 된 거예요.
노숙인 강제 퇴거가 있었던 2011년 이전에도 비슷한 문제는 있어왔다. 2005년 1월 서울역에서는 철도공사가 자행한 거리홈리스 폭행사건에 분노한 거리홈리스들의 집단행동이 일어났으며, 이때 단발성 분노에 머무르지 않고 당사자들의 조직화를 지속함으로써 스스로의 문제를 해결해나가려는 목적으로 2007년 ‘주말배움터’가 시작되었다. 이후 2010년에는 수업 일수를 늘리고 교육 과정을 보다 구체화하여 ‘아랫마을 홈리스야학’이라는 이름으로 정식 개교했다.
안형진: 저희가 아랫마을 홈리스야학 굉장히 오랫동안 하고 있어요. 홈리스 당사자들이 모이는 거점 사업이기도 하고, 정말 어떤 빈곤 상태에서 꼭 필요한 것들을 배워가는 공간, 또 지금까지 생각하지 못했던 어떤 권리에 대해서 같이 고민을 하고 이야기하는 공간이거든요. 야학 같은 경우는 정말 많은 자원활동가 분들 오랫동안 같이 하시고.
안형진 활동가는 홈리스 당사자 회원들이 홈리스행동 활동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홈리스야학이나 홈리스뉴스 등을 통해 이들을 만나게 되는데, 비당사자 회원들을 만나는 경로도 비슷하다. 그는 “‘직’ 따로, ‘업’ 따로”가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생활을 위해 하는 일과 자신의 소명으로서 하는 일이 다를 수 있다는 뜻이다. 그는 실제로 다른 직장에 다니면서도 홈리스 운동을 업으로 생각해서 회원으로 함께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나누어 주었다. “‘활동가가 활동을 한다’라기보다는 ‘활동을 하면서 활동가가 된다’라고 생각하는 편이거든요. 많은 분들이 또 그렇게 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라는 말은 그러한 경험에서 나왔다.
홈리스행동은 사회운동의 성격에서 홈리스의 권리를 강조하는 사실상 유일한 홈리스 운동 단체로, 홈리스 복지가 노숙인 시설에 집중되어 있는 지금의 상황을 바꾸고자 노력한다. “탈시설의 ‘탈’ 자도 잘 안 나오는 동네가 이쪽 동네”라는 그의 표현처럼, 홈리스는 복지 서비스를 받으려면 시설을 경유해야 한다. 심지어 병원을 가려고 해도 시설 이용 기록이 있어야 한다. 홈리스행동은 이런 홈리스 복지의 현실을 바꾸고자 가장 치열하게 싸우는 단체다. 시설 대신 집에 살 권리, 지정된 병원 대신 모든 병원에 갈 수 있는 권리를 외친다. 적절한 집과 적절한 의료 제도가 있었더라면, 차별이 없었더라면 죽지 않을 수도 있었던 이들을 추모하고 애도할 권리를 외친다.
안형진: 주거권에서 문제 되는 게 쪽방 공공주택사업의 추진을 소유주들이 반대하면서 엄청 싸움이 길어지고 있잖아요. 그 와중에 계속 열악한 거처에서 돌아가시는 분들도 계시고, 버티면서 살아가시는 분들도 있는 거거든요. 건강권 관련해서는 일단 다른 의료급여 수급자와 달리 노숙인 의료급여 수급자들은 딱 지정된 병원만 가게 하는 굉장히 오래된 제도적인 차별인데요. 여기에도 집중하고 있습니다. 요새는 또 홈리스 명의 범죄가 얼마 전에 뉴스에서 유통된 돈만 12조 원이라고 나왔는데, 이게 사실 복지보다 범죄가 가까운 홈리스 당사자들의 현실인 것 같아요.
취약한 사람일수록 범죄에도, 치안에도 더 쉽게 포획된다. 신뢰 관계가 없으면 위기 상황에 개입하기도 어렵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상시적인 활동을 통해 축적되는 관계다. 안형진 활동가가 현장에서 만난 홈리스의 80~90%는 채무불이행이며, 그중 대부분은 명의 도용이나 명의 대여다. 이러한 명의 범죄에 대응하려면 평상시에 알고 지내야 한다. 그래서 정책 대응과 현장 활동은 무 자르듯 나뉘지 않는다. 현장 활동은 정책 현안들에 개입하는 근거가 된다.
2022년, 홈리스행동에서는 많은 이야기를 했다. 대선 정국에는 기초생활수급제도 도입 이후 계속 반빈곤 운동의 주요한 요구였던 부양의무자기준 완전 폐지를 이어갔고, 주택 소유주들의 거센 반대로 진척되지 못하고 있는 동자동 공공주택 사업의 진행을 촉구했다. 공공임대주택 예산을 대폭 삭감한 윤석열 정부에 맞서 빈곤사회연대와 함께 <내놔라 공공임대> 농성을 했고, 용산역 텐트촌을 철거하려는 이들, 그리고 ‘약자와의 동행’을 말하면서도 근본적인 주거환경 개선책은 마련하지 않는 서울시에 맞섰다. 진료시설 지정 제도 폐지 1인 시위도 이어갔고, 연말에는 서울역 앞 광장에서 여성 홈리스들의 증언을 전시하는 증언 대회도 있었다.
안형진 활동가는 모든 활동이 중요했지만, 그 중에서도 건물 소유주들의 반대로 2년 넘게 진척되지 못하고 있는 동자동 쪽방촌 공공주택사업과 진료시설 지정제도 폐지 시위, 그리고 용산역 텐트촌 철거 대응을 2022년 가장 중요한 활동으로 기억했다. 특히 그는 코로나19가 홈리스 의료 공백의 원인이 아니라 하나의 계기일 뿐이며, 진짜 문제는 노숙인 진료시설 지정제도와 열악한 홈리스 의료보장체계라고 강조했다.
안형진: 코로나19 끝나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다시 똑같이 열악한 그런 여러 의료보장이나 제도적인 차별들이 횡행하는 일이 없도록 계속 시끌벅적하게 싸움을 끌어가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진료시설 지정제도는 굉장히 중요한 이슈라고 생각하고요. 코로나19 대응활동을 결산하는 의미도 있는 거죠. 홈리스행동 입장에서는 그것만큼은 끝장낸다.
용산역 텐트촌 철거의 발단은 다음과 같다. 보행안전을 이유로 용산역 구름다리 일부 구간에 새로 공사를 시작하는데, 그 구간이 텐트촌에 겹쳤고, 도시계획을 세운 구청과 시공사 측은 텐트촌 주민들에게 자리를 비키라고 요구했다. 싸움은 그렇게 시작됐다. 용산 텐트촌 철거 대응은 그 시작과 끝, 그리고 그 이후까지 홈리스행동의 성격을 잘 보여주는 사안이다. 그것은 당사자들과 함께 호흡하면서 만들어진 계기, 관계로서 같이 싸우게 되고, 같이 싸우는 과정에서 동료가 되는 과정이었다.
2015년부터 용산역 활동을 시작한 안형진 활동가는 7~8년 동안 쌓아 온 관계를 바탕으로 철거 시도에 대응할 수 있었고, 주요 요구 중 하나였던 ‘주거취약계층 주거지원’을 관철시켰다. 이것은 쪽방, 고시원, 노숙인 시설, 여관, 여인숙 등 취약 거처에서 3개월 이상 거주하면 굉장히 저렴한 보증금에 저렴한 월세로 공공임대주택에 입주할 수 있는 신청권을 주는 사업이다. 그런데 거리홈리스들은 이 제도의 지원을 받기가 어렵다. 3개월 이상 지속 거처를 알 수가 없다는 것이다.
안형진: 저는 임대주택 입주자격 여부를 두고 이렇게까지 다툴 거라고 생각을 못했거든요. 여기서 이분들이 1년, 심하게는 20년도 사셨거든요. 그리고 매일 서울시 지원기관에서 와서 관리를 또 해왔단 말이에요. 면담도 하고 심지어 배치표도 만들어져 있고 서울시에서 그렇게 했던 곳인데, 구청에서 계속 실거주 확인이 안 돼서 안 된다, 주민등록이 안 돼 있어서 안 된다, 이런 지엽적인 거 가지고 싸웠던 거라서요. 정말 두 달이나 다투게 될 줄은 몰랐는데. 나중에는 구청도 감정이 상했는지 텐트촌 주민들을 마치 개발이익 노리고 무단점유한 사람들인 것처럼 보도자료를 내더라고요. 굉장히 분노했죠.
이렇게 홈리스행동은 정부보다, 서울시보다, 구청이나 지원기관의 실무자들보다 현장에 밀착해서 당사자들과 관계를 이어나가고, 터져 나오는 현안들에 당사자의 관점에서 대응하고 있다. 홈리스행동은 2023년에 특히 홈리스를 자기 필요에 따라 이용하는 이미지 정치와 코로나19 사태에서 드러난 홈리스 복지의 허울에 초점을 맞추고자 한다.
안형진: 저희로서는 좀 끔찍한 시기기도 했었고요. 돌아가신 분들도 있으니까요. 누가 봐도 말도 안 되는 일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어요. 확진이 됐는데 화장실 없는 두 평짜리 방에서 자가 격리를 할 수 있느냐, 환기를 하려면 오히려 복도 쪽으로 문을 열어야 되는 상황에서 집단감염 계속 되고, 갈 수 있는 병원이 없어 가지고 치료도 못 받고, 2년 동안 병원은 아예 급성 질환 치료도 안 되고, 응급실 후송도 안 됐고. 그런데 작년부터 단계적 일상회복 이런 얘기들이 나오고 있고. 올해는 코로나19 이전으로 더 강하게 회귀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홈리스행동의 입장에서 코로나19의 종식은 코로나19 이전 일상으로의 ‘회복’이 아니라, 코로나19에서 드러난 온갖 허울들을 붙들어 바꿔내는 사회의 변화와 재구성일 수밖에 없다. 코로나19에서 수많은 참담한 사건이 발생했지만, 그것은 이미 존재하던 열악한 홈리스 복지에 따른 것이었다. 코로나19는 방아쇠에 불과하다. 어떻게 하면 홈리스행동과 함께할 수 있냐는 질문에 안형진 활동가는 홈리스 당사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달라고 답했다.
안형진: 사실 이런 구체적인 홈리스 현실에서 오는 당사자들이 느끼는 문제들, 정돈되지 않은 말일지어도 고통의 근원을 얘기하는 목소리들이 사실은 주의 깊게 들으려고 하지 않으면 안 들리거든요. 들리는 거는 다 동행식당, 약자와의 동행, 아름다운 이야기들밖에 없으니까요. 그래서 좀 주의 깊게 들어주십사, 그게 가장 큰 거죠. 거기에서 시작된다고 생각해요.
1. 야학, 인권지킴이 활동하기
홈리스 인권 지킴이는 매주 고정적으로 서울역 등 거리홈리스들이 주로 지내는 지역에 찾아가서 그들과 꾸준히 만나며 관계를 쌓아나가는 활동이다. 여기에는 홈리스들과 서로를 알아 나가는 과정일 뿐 아니라, 현장에서 인권침해를 감시하고, 목격하고, 거기에 대응하며, 필요한 경우 복지 지원으로 연계하기도 하고, 병원이나 구청에 동행하는 등의 활동까지도 포함한다.
홈리스야학은 홈리스 당사자들이 빈곤 상태에서 꼭 필요한 것들을 배워가는 공간이다. 야학에서는 한글뿐 아니라 생활에 필요한 영어도 가르치고, 컴퓨터 활용 기술도 가르친다. 무엇보다도 권리 교실에서 홈리스 당사자들이 자신의 삶에 필요한 것을 국가에 요구하는 것이 자신의 ‘권리’라는 사실을 배워나간다. 이는 단지 홈리스들이 몰랐던 지식을 추가로 학습 하는 과정을 넘어, 홈리스들의 삶을 통해 ‘권리’ 자체를 새로 쓰는 과정이다.
홈리스행동의 다양한 활동은 이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2. 정기, 일시 후원으로 함께하기
연대와 후원은 홈리스행동이 활동을 지속할 수 있는 힘을 준다. 후원 방식은 일시/정기 모두 가능하다. 단, 기업 후원은 받지 않는다. 홈리스행동 회원이 되면 매달 발행되는 홈리스뉴스를 종이신문으로 받아 볼 수 있다.
홈리스행동의 후원 신청은 이곳에서 할 수 있다.
3. 홈리스행동이 발행하는 자료 함께 읽기
홈리스행동은 매달 홈리스뉴스를 발행하고, 쪽방신문 또한 발행하고 있다. 또한 홈리스 정책과 관련된 해외의 자료를 번역하거나, 홈리스 정책과 관련된 의견서를 작성하여 제출하고, 토론회에 참여하기도 하고, 관련된 자료들을 아카이브하기도 한다.
이러한 자료들은 이곳의 '홈리스뉴스' 섹션과 '자료실' 섹션에서 읽을 수 있다.
참고자료
이동현, 2012, “홈리스운동의 진행과정과 주요 쟁점,”『도시와 빈곤』 97, 한국도시연구소, 74-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