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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O연구소 May 04. 2023

최저선이 최전선이다

홈리스행동 2부_안희제

홈리스행동

홈리스행동은 현장에서 함께 호흡하며 홈리스 당사자들과 함께 싸우는 현장 중심 단체다. 홈리스들과 함께, 홈리스들의 관점에서 사회를 바꾸고자 하는 이들에게 공공성이란 어떤 의미일까. 연구자는 안형진 활동가에게 홈리스행동의 사회적 기여와 공적 역할을 물었는데, 그는 이 단어들이 “저희 용어가 아닌 것 같다”고 대답했다. 


이 현장에서 ‘사회적 기여’라는 말은 어떤 의미에서 상당히 오염된 용어였다. 특히 거리홈리스들이나 쪽방 주민들을 대상으로 봉사를 하며 사진을 찍고 가는 것과 같은 사건들은 굉장히 많다. 안형진 활동가는 영부인이 쪽방촌에 봉사를 왔던 일을 떠올리며, 사회적 기여라는 이름으로 이루어지는 이미지 정치를 꼬집었다. ‘공적 역할’이라는 것도 홈리스행동이 직접 실천하는 것이기보다는 공공기간, 공기업, 국가기구 등에 역할을 제대로 하라고 요구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두 언어는 아무래도 홈리스행동의 활동과 가까운 언어는 아니었다.



홈리스 복지라는 최저선


2021년 11월 9일, 중구청 앞에서 열린 ‘중구청 규탄 및 구청장 면담 촉구 기자회견’. (출처: 홈리스행동)


안형진 활동가는 현장에서 만나는 홈리스들이 한국 사회뿐 아니라 전 지구적으로 봤을 때도 최빈층에 속하는 사람들이라고 이야기하며, 수급 신청할 때 재산과 소득을 적는 부분에 모두 ‘0’만 쓰면 된다는 일화를 들려주었다. 물론 폐지나 고철을 줍거나, 일용직 같은 불안정 일자리에서 일하는 분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재산이든 소득이든 그냥 없다고 보면 된다. 


안형진: 수급 신청이나 이런 것들 할 때 보면 재산 소득 신고서가 있어요. 항상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개는 0만 쓰면 되거든요. 굉장히 편해요. ‘선박이 있으세요?’ 선박 이런 거 왜 물어보는지 모르겠어. 어 선박이 있으면 수급자 안 되는데, 항공기 이런 걸 물어봐. 뭐 별 거 다 있어요. ‘소, 돼지 이런 거 있으세요?’ 당사자분도 웃죠. 다 0만 써도 돼서 편한데. 정말 아무것도 없어요.


안형진 활동가의 생각은 다음과 같다. 홈리스 복지는 사회보장의 최저선이며, 최저선을 올리는 것이 사회 전체가 함께해야 하는 고민이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 재산 소득 신고서에 0만 적으면 되는 이들의 삶이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사회의 합의를 보여주기 때문일 것이다. 거리 노숙 상태에서는 행정상 주소지가 없다는 이유로 기초생활보장제도 신청도 못하는데, 이 지원 체계에서도 떨어지면 내가 존엄을 지키기 위해 아무것도 기대할 수가 없는 상태가 된다. 


안형진: 어떤 면에서는 인간의 최소한의 존엄이라는, 어떻게 보면 상투적인 규정이기도 하지만, 그 최저선을 계속 올리는 것은 그 존엄의 정도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척도라고 생각하면, 홈리스 복지가 그런 면에서 그런 면에서 굉장히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고요.


최저선을 올린다는 것은 그런 의미에서 존엄의 수준을 조정하는 일이다.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이 어떤 모습인지 보여주는 것이 바로 사회의 최저선이다. 거리홈리스들은 예전에 임금 노동에 종사했든 아니면 임금노동시장에 아예 들어갈 수 없는 조건에 있든,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폐기된 노동”의 상태에 있다. 그런 상태에 이르기까지 이들이 어떤 삶의 과정을 거쳤는지 알기 어렵다. 주민등록이 말소되어서, 지적장애나 정신질환으로 기억이 명료하지 않아서  언제부터 언제까지 어디서 살아왔는지 알기 어려운 경우가 더러 있다. 빈곤은 그런 방식으로 삶 전체에 걸쳐 쌓여 온다. 안형진 활동가가 빈곤이 “과정적”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그런 의미일 테다. 홈리스들은 적정하지 못한 거처들 사이에서 흐르고, 빈곤은 그들에게 고인다. 



싸울 수 있는 조건을 만들다


2022년 12월 22일 2022 홈리스추모제. 상가가 가득한 서울역 안에서 활동가들과 당사자들이 행진한다. (출처: 홈리스행동)


함께 사회의 최저선을 고민해야 할 시간에도 사회 운동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안형진 활동가는 노동 운동이 갈수록 취약해지고, 꼭 자본과의 관계가 아니더라도 다른 사회 세력들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굉장히 고립되어가고 있는 과정이라고 생각했다. 싸우기가 어려워지는 현실이다. ‘갑질’이라고 자주 불리는 부당한 대우나 착취 문제는 기업 구조와 같은 체계 안에서 해결되기가 어렵다. 모욕당하거나 차별을 경험해도, 임금 노동에 계속 종사해야만 삶이 계속되기 때문에 거기에 대응하기가 어려워진다. 싸우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안형진반빈곤 운동이라고 하는 것이 한편으로는 싸울 수 있는 조건을 만든다는 것도 있는 거죠. 영혼 팔면서 일한다 이런 얘기도 많이 하잖아요. 제 친구들 만나면 그런 얘기 하거든요. 영혼 팔면서 일하지 않아도 내 존엄을 지킬 수 있는, 혹시 내가 그런 싸움의 과정에서 부적절한 대우를 받거나 착취에 저항하려고 하는 과정에서 밀려나게 됐을 때, 완전히 떨어지지 않고 거기서 방패막이 돼서 다시 싸울 수 있는 조건들이 있다면 그 싸움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질 거라는 기대도 있어요. 노동 바깥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바깥이 아닌 거죠.


안형진 활동가는 반빈곤 운동이 싸울 수 있는 조건이라고 생각한다. 노동 바깥으로 밀려났을 때도 우리가 존엄을 지키며 살아갈 수 있다면, 노동 안에서의 싸움도 시도해 볼 만하다. 노동이 내 삶을 보호해주는 최후의 보루가 아니라면, 해고가 절벽 끝의 낭떠러지가 아니라면, 우리는 부당한 일에 한 번쯤 목소리를 높여볼 수 있다. 그리고 그런 경험은 몸에 쌓인다. 그래서 반빈곤 운동은 임금노동체계 안에서 싸움의 조건을 만드는 투쟁이다. 그런 싸움들이 쌓이고, 그렇게 싸우는 이들이 모이면, 더 집합적인 목소리를 낼 수 있다. 내 존엄을 상실하지는 않는다는 확신만 있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싸움에 함께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회의 최빈층인 사람을 가리키며 ‘너 저렇게 살래?’라고 말하는 사회를 바꿔야 한다. 홈리스의 삶이 나아진다는 것은 노동자의 뒷배가 든든해진다는 의미이기도 한 것이다. 


2022년 7월 7일, ‘“거리 홈리스의 짐은 쓰레기가 아니다” 홈리스 물품 무단 폐기한 한국철도공사 등 공권력 규탄 기자회견’. (출처: 홈리스행동)


안형진 활동가가 생각하기에 공공성이란 ‘이윤의 사사화와 비용의 사회화’라는 현재의 반대 방향이다. 홈리스행동이 공공장소를 지켜내는 싸움들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꺼내면서, “공공장소라고 하는 곳의 공공성의 척도는 홈리스”라고 말했다. 그는 서울역, 용산역과 같은 지하철역들을 언급하며, 그러한 장소들이 더는 ‘공공장소’가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고 말했다.


안형진: 이게 되게 흔한 비유지만 서울역, 용산역 하면 완전 백화점 같잖아요. 용산역이 저 처음 갔을 때랑 지금 너무나 다른 공간이기도 해요. 너무 놀랐어요. 그 변화들이 누구를 위한 것이냐, 누구에게 좋은 것이냐, 이걸 자꾸 질문해야 되는 거죠. 용산역과 그 주변 개발을 민간자본인 HDC(현대산업개발)가 전적으로 주도해 왔어요. 그러면서 이윤을 위한 공간으로 변모해 왔죠. 이런 것들이 뭔가 많은 경우에 시민 대 홈리스 이런 식으로 마치 동료 시민과 배제된 집단이라는 틀을 만들고, 홈리스를 전체 사회에 손해를 끼치는 집단으로 상정하고, 그 손해는 이들의 여집합인 ‘시민’들로 상정하는 경우가 많은데 실제로는 그런 대치구도 속에서 놓치고 있는 것은 ‘그럼 이득은 누가 편취하고 있는 거냐, 그 여집합의 시민들이 가져가는 거냐?’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거든요.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지하철 투쟁 당시에도 ‘장애인 대 시민’이라는 구도가 있었다. 집회를 하며 ‘일반 시민에게 피해를 주는 장애인’이라는 프레임은 전장연이 집회를 하게 된 역사와 배경을 효과적으로 감춘다. 공공장소에서 ‘일반 시민에게 피해를 주는 홈리스’라는 프레임도 비슷한 역할을 한다. 홈리스는 언제나 공원 등에서 술을 마시고 큰 소리를 내며 다른 시민들에게 피해를 주는 존재로 재현되고, 홈리스의 존재는 그 자체로 ‘위험’, ‘오염’으로 여겨진다. 


그런데 홈리스를 쫓아낼 때 정말 안전해지는 건 시민이 맞는가? 시민은 여기서 이익을 보고 있는가? 용산의 구름다리는 그 프레임이 무엇을 감추는지 보여준다. 안형진 활동가는 2015~2016년을 떠올린다. 당시 용산역에서 전자상가로 나가는 통로라는 단순한 기능을 하던 구름다리에는 저녁에 박스 깔고 자는 홈리스들부터 왈왈 짖는 강아지 모형 장난감을 파는 좌판 노점들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지내고 있었다. 그런데 호텔이 들어서고, 많은 것들이 바뀌기 시작했다. 



홈리스가 들어갈 수 있는 곳만이 공공의 장소다


철거되고 있는 용산역 텐트촌. (출처: 홈리스행동)


안형진: 거기 앞에 면세점 들어서고, 6성급 호텔 들어서고, 그래서 텐트촌에 좀 문제가 생기겠다. 그런 것들 들어서면 주변에 이제 또 편의시설도 진짜 인프라 갖추려고 그러면 가장 먼저 쓸려가는 사람 누군지 아니까. 그래서 용산역 활동을 저희가 시작했던 거였어요. 거기에 호텔이 지어지면서 구름다리가 계속 바뀌었어요. 어느 날 벽이 새 걸로 칠해져 있고, 어느 날은 바닥이 막 우레탄 새로 깔고, 이 변화들이 당사자분은 굉장히 불안해 하셨거든요. 이러다가 결국에는 호텔이 개장되면서 호텔이랑 연결이 된 거예요. 호텔을 통하지 않으면 외부로 나갈 수가 없게 된 겁니다.


원래 철도 시설공단에서 관리하던 구름다리에는 호텔에서 배치한 경비원들이 상주하기 시작했다. 노숙하던 사람들은 쫓겨났다. 이들 중 일부는 용산역 텐트촌으로 내려와서 지내기 시작했다. 1부에서 언급한 용산역 텐트촌 투쟁의 바로 그 장소다. 구름다리가 호텔이랑 연결되더니, 이제는 시공사에서 구름다리가 꺾이는 모양 때문에 보행상의 안전으로 옆에 새 구름다리를 지어야 한다는 공익적인 목적으로 도시계획을 세웠다. 그런데 옆에 새로 짓는 데 보니까 구름다리를 받쳐주는 기둥 설치되는 일부 구간이 그 텐트촌 일부에 걸렸다. 


이때부터 당사자들, 그리고 활동가들은 느끼기 시작했다. 아, 문제가 생기겠구나. 홈리스행동 활동가들은 도시계획과 공무원들을 만났을 때 말했다. ‘우리가 이 경험 모르는 줄 아냐.’ 도시에서 쫓겨나고 밀려나는 경험은 쌓이고 쌓인다. 유·무형의 퇴거 위협이 전혀 없어야 한다는 홈리스행동의 요구에 시행사에서는 다시 한 번 ‘시민 대 노숙인’의 구도를 꺼내 들었다. 


안형진: 사실은 굉장히 전도된 표현인 거죠. 그러니까 왜곡인 거죠. 본질의 왜곡인 거죠. 어떻게 보면 자본과 연결되는 통로로 성격의 변화들을 마치, 그 결과로서 나타난 추방들을 시민과 비시민의 구도로서 환원해 버리는.


안형진 활동가는 이런 맥락들을 드러내고 싸워나가는 것이 공공성을 확보하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홈리스가 가장 편하게 있을 수 있는 곳들만 공공장소라고 저는 생각해요.”라는 말은 실제로 어떤 장소를 누가 관리하고 통제하는지 봐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홈리스행동에서 2017년 실시한 실태조사에 따르면, 당시 기준으로 10년 전과 비교했을 때 출입 제지, 강제 퇴거 등의 주체가 완전히 바뀌었다. 원래는 역무원, 경찰, 철도경찰처럼 공무를 맡는 이들이 그 주체였다면, 이제는 민간 경비원이다. 민간 주체들이 홈리스의 존재, 홈리스의 일상 자체를 불법으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이들과 홈리스들 사이에 충돌이 생기면 민간 경비원들은 경찰에 전화하고, 경찰은 홈리스를 데리고 나간다. 매일 불심검문하고 딱지 떼는 경찰들과 자신을 퇴거시키는 민간 경비원들 사이에서 홈리스들은 갈 곳을 잃는다. 이는 예전에 공공이 소유하고 공공이 관리하고 있던 장소들과 역할들이 민간으로 이전되는 현실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그렇게 공공장소는 공공성을 지닌 장소가 아니라, 자본의 이익을 위한 공간으로 재편된다. 홈리스가 들어갈 수 있는 곳만이 모두의 공간일 수 있다는 말의 의미는 그런 것이다. 


2022년 5월 6일, ‘용산역 텐트촌 주민 이주대책 협의 중 강제철거 강행한 용산구청 규탄 기자회견’ (출처: 홈리스행동)


홈리스행동에서는 국가의 복지 제도 등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며 국가가 공적 역할을 다하길 요구한다. 국가는 점점 더 많은 것을 민간에 연계시키고, 위탁하고 있다. 이를테면, 국가는 임대주택 공급을 민간의 임대시장과 연결해서 해결하려 하고, 그러한 방식에서 탈락하는 홈리스들은 민간 위탁된 시설로 갈 수밖에 없도록 만든다. 홈리스행동은 이처럼 공공성을 민간화·외주화·시설화하는 흐름에 맞서 싸우며 구청, LH주택공사 앞에서 마이크를 들었다. 


그리고 이들의 외침은 임대주택, 지하철역, 구름다리, 지하보도, 공원과 같은 구체적인 장소들에서 터져 나온다. 여기서 공공성은 단지 ‘시민’ 혹은 ‘국민’에게 이익이 돌아가는 원리 혹은 성격을 지시하는 단어가 아니다. 공공성은 ‘시민’ 혹은 ‘국민’이라는 범주 자체를 질문하고, 정말로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물리적 공간들을 확보하며, 제도에 질문을 던지며 존엄의 최저선을 아래에서부터 밀어 올리는 하나의 추진력이자 무기다. 홈리스 당사자의 관점에서 기존의 세상에 균열을 만들어 내고, 무엇이 우리를 인간 바깥으로 밀어내는지 계속해서 추적하는 힘이다. 최저선이 최전선이다. 


고층 빌딩 사이의 양동 쪽방촌. 이곳은 재개발을 앞두고 있다. (출처: 홈리스행동)





홈리스행동 활동에 참여하고 싶다면


1. 야학, 인권지킴이 활동하기

홈리스 인권 지킴이는 매주 고정적으로 서울역 등 거리홈리스들이 주로 지내는 지역에 찾아가서 그들과 꾸준히 만나며 관계를 쌓아나가는 활동이다. 여기에는 홈리스들과 서로를 알아 나가는 과정일 뿐 아니라, 현장에서 인권침해를 감시하고, 목격하고, 거기에 대응하며, 필요한 경우 복지 지원으로 연계하기도 하고, 병원이나 구청에 동행하는 등의 활동까지도 포함한다.

홈리스야학은 홈리스 당사자들이 빈곤 상태에서 꼭 필요한 것들을 배워가는 공간이다. 야학에서는 한글뿐 아니라 생활에 필요한 영어도 가르치고, 컴퓨터 활용 기술도 가르친다. 무엇보다도 권리 교실에서 홈리스 당사자들이 자신의 삶에 필요한 것을 국가에 요구하는 것이 자신의 ‘권리’라는 사실을 배워나간다. 이는 단지 홈리스들이 몰랐던 지식을 추가로 학습 하는 과정을 넘어, 홈리스들의 삶을 통해 ‘권리’ 자체를 새로 쓰는 과정이다.

홈리스행동의 다양한 활동은 이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2. 정기, 일시 후원으로 함께하기

연대와 후원은 홈리스행동이 활동을 지속할 수 있는 힘을 준다. 후원 방식은 일시/정기 모두 가능하다. 단, 기업 후원은 받지 않는다. 홈리스행동 회원이 되면 매달 발행되는 홈리스뉴스를 종이신문으로 받아 볼 수 있다. 

홈리스행동의 후원 신청은 이곳에서 할 수 있다. 


3. 홈리스행동이 발행하는 자료 함께 읽기

홈리스행동은 매달 홈리스뉴스를 발행하고, 쪽방신문 또한 발행하고 있다. 또한 홈리스 정책과 관련된 해외의 자료를 번역하거나, 홈리스 정책과 관련된 의견서를 작성하여 제출하고, 토론회에 참여하기도 하고, 관련된 자료들을 아카이브하기도 한다. 

이러한 자료들은 이곳의 '홈리스뉴스' 섹션과 '자료실' 섹션에서 읽을 수 있다. 


이전 13화 “말도 안 되는 일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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