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주거권네트워크 온 2부_안희제
청소년 복지에는 주거가 없고, 주거 복지에는 청소년이 없는 현실은 청소년 주거의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다. 현장의 관점에서 정책과 연구에 개입하며 청소년주거권을 사회적 논의의 장에 올리려는 청소년주거권네트워크 온(이하 온)의 두 활동가는 공통적으로 혈연을 중심으로 하는 정상가족 중심주의를 지적했다. 지금 한국 사회에서는 혈연으로 이어진 이들만이 정상적인 가족이고, 바로 그 가족을 중심으로 복지와 행정 체계가 설계되어 있기 때문에 거기서 벗어난 이는 체계 밖으로 튕겨져 나간다는 뜻이다.
이 체계 안에서는 누군가를 양육하거나 부양할 수 있는 혈연이 존재한다면, 양육과 부양은 그들의 몫이지 공공의 몫이 아니다. 청소년주거권은 필연적으로 이 명제와 싸우게 된다. 1999년 만들어지고 2000년 시행된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에는 ‘부양의무자기준’이라는 것이 있다. 이는 1촌의 직계혈족이나 그들의 배우자 등을 부양할 의무가 있는 사람, 즉 부양의무자로 규정하고, 부양의무자가 있을 경우 생계급여, 의료급여 등을 지원하지 않는 것이다. 장애 운동과 반빈곤 운동은 부양의무자기준을 폐지하라고 수십 년째 외쳐 오고 있다.
이 지점에서 청소년주거권 운동은 반빈곤 운동, 장애 운동이 정상가족 중심의 복지 체계에 맞서 싸워 온 역사를 공유한다. 청소년 주거권이 너무도 많은 분야에 걸쳐 있어서 모든 문제를 함께 다뤄야 할 것만 같다는 활동가들의 말은 이러한 맥락에서 나온다.
지방선거에서 청소년의 존재를 알리고, 주거의 날에 진행된 주거권 대행진에 청소년 주거권을 등장시키고, 차별금지법 농성장에서 다른 청소년 인권 단체들과 함께 기자회견도 하는 등 온은 독립된 단체로 출범하기 전부터 열심히 달려왔다. 단체를 출범시키기 위해서는 사안이나 가치에 대한 합의들이 필요하기에, 이들은 지난 1년 동안 내부적으로 그러한 합의들을 만들어나가는 과정을 거쳤다. 그렇게 만들어진 청소년 주거권 보장 원칙 아홉 개에는 온의 방향성이 명료하게 압축되어 있다.
보편적 권리로서의 주거권
주체성과 자기결정권
차별과 혐오, 폭력으로부터 안전한 주거
조건 없는 주거
다양한 주거
적절한 주거
권리로서의 보호
삶을 위한 지원이 함께 가는 주거
동등하고 존엄한 시민으로서 지역, 사회와 연결되기
이 아홉 가지 원칙은 한국이라는 시설사회를 바꾸는 하나의 시작점이다. 쉼터와 같은 시설은 집이 될 수 없다. 어쩔 수 없이 잠시 머무르는 것이라면 몰라도, 내가 합의한 적 없는 규칙들이 강제되고 사생활도 보장되지 않는 곳에서 몇 년씩 지낼 수는 없다. 그러나 쉼터 퇴소 이후 자립지원수당을 받으려면 쉼터를 2년 이상 이용해야 하는데, 사용 기간이 한 달 단위로 계산되기 때문에 한 달보다 짧은 기간은 아예 계산에서 제외된다. 이처럼 사생활의 자유도, 타인과의 관계도 자신의 선택권 바깥에 있는 공간에서 폭력적인 규칙에 순응하며 한 달 이상씩 총 2년을 넘게 살아야만 지원 체계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 시설화되어야만 지원받을 수 있다.
정찬송: 더 자원이 없는 이들은 지원받지 못하는 이런 문제들을 현장에서 보게 되는 것 같고요. 그래서 이런 것들이 결국에 청소년들이 시설사회 안에서 살고 있다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마주하게 되는 거죠. 그래서 저희는 ‘청소년에게 가장 기본이 되는 주거를 모든 청소년에게 보장한다면 그걸 시작으로 그분들이 이제 다양한 삶의 방향들로 뻗어나갈 수 있지 않을까. 왜 자격을 자꾸 검증하려고 하지, 주거에 대해서? 주거는 모두가 필요한 건데.’ 이런 당연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 같아요 지금은.
정찬송 활동가는 ‘크리밍 효과’를 지적했다. 크리밍 효과란 효과가 크게 나타날 집단만을 선정하여 정책 대상으로 포섭하는 것으로, 이는 다양한 현장에서 발견된다. 정신질환이나 장애를 겪고 있거나 여성인 홈리스가 다른 홈리스들에 비해 지원을 더 받기 어려운 것도 크리밍 효과의 한 사례다. 청소년들도 마찬가지다. ‘문제를 일으키지 않을 만한’ 청소년들만 시설에 애초에 들어갈 수 있고(규칙을 어겨 퇴소당하면 블랙리스트에 오르기 때문이다), 시설에서 퇴소당해서 주거가 더욱 불안정해진 이들은 점점 더 지원으로부터 멀어진다. 그래서 자원이 없을수록 더 지원받지 못한다.
이 상황에서 온이 던지게 되는 물음은 ‘자격’을 향한다. 주거에 자격이 필요해선 안 된다. 주거 위기를 겪으면 모든 제도적 지원으로부터 멀어지기 때문이다. 주거가 불분명하면 온갖 수급 신청 등에도 어려움을 겪으며, 학교에 다닐 수도 없게 된다. 주거에 자격이 필요하다면, 주거에서 출발하는 모든 복지 체계에 들어가는 것에도 자격이 필요해지는 셈이다.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사라진 이들은 지원 체계뿐 아니라 사람들의 시야 바깥으로 사라져 버린다. 이들을 다시 시야 안으로 들여오는 것, 이들을 책임져야 할 공공이 제 기능을 하도록 하는 것. 이 두 가지가 김시연 활동가가 생각하는 공적인 역할이었다.
김시연: 우리가 보지 못하는 어떠한 장면들에 존재하는 삶도 있고 이들을 계속해서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이 공적인 역할인 것 같아요. 그리고 어쨌든 그런 것들을 공적인 시스템이 계속해서 책임져야 한다는 이야기를 계속 많이 하는 것 같아요.
정찬송 활동가는 우리 사회가 계속해서 시민과 시민 아닌 자를 분리하고, 시민 아닌 자를 배제하는 방식으로 작동해 왔다고 말했다. 그는 탈가정 청소년을 장애인, 홈리스, 여성에 연달아 언급했다. 온을 통해 “배제되었던 시민을 다시 한 번 호명하고” 그럼으로써 “청소년을 동료 시민으로 만나는 자리를 만드는 역할”을 하고 싶다는 것이 그가 온을 통해 앞으로 사회에 기여하고 싶은 바였다. 시혜적 관점의 복지에서 벗어나서 청소년을 권리의 주체로 이해하는 지원 체계가 필요하다고 말하는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일 테다.
정찬송: 그냥 네트 없이 바닥으로 떨어지게 되는 사회의 구조 안에 있는 거죠. 그러니까 실패를 용납하지 않는 거죠. 근데 실패할 수 있는, 안전하게 실패할 수 있는 기회들을 좀 많이 열어줘야지 되는 게 아닐까, 그래야 정말 안전하게 되는 거 아닐까. 그냥 무조건 ‘한 번 나와서 살았으니까 너 무조건 자립해야 돼’ 이런 사회는 과연 안전한가.
청소년을 권리의 주체로 이해하지 않고, 단지 ‘도움이 필요한’ 존재 정도로만 취급하는 시혜적 관점의 복지는 성과 중심의 복지로도 이어진다. 두 활동가는 모두 ‘자립’을 취업과 같은 성과로 계산해내는 사회의 문제를 지적했다. 지원 체계는 기본적으로 어떤 학원에 다니면 끝까지 수료해서 취업까지 하는 것을 기본값으로 설정하는데, 이는 자신을 알아가는 기회를 박탈한다. 레진 학원을 등록해서 다니다가 적성이 맞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될 수도 있고, 그러면 다른 걸 시도해 볼 수 있어야 한다. 미용 학원도 등록해 보고, 영어 학원도 등록해 보고, 바리스타 자격증도 따 볼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의 지원 체계에서 하나의 길을 끝까지 따라가지 않는 것은 그저 실패가 된다. 이처럼 다양한 경험을 안전하게 시도해볼 수 있는 기회가 보장되지 않을 때, 청소년들은 취업으로 직행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폭력의 피해자가 되기 쉽다. 취업 관련 학원에 다니는 청소년이 당장 성과를 내지 못하는 데에도, 불법 행위 등에 연루되는 데에는 개개인의 상황이 존재한다. 이를 고려하지 않으면 결국 규칙을 지키지 않아서 퇴소당하고 다시 주거 불안정을 겪게 되는 청소년들처럼, 불법 행위나 불안정 노동으로 다시 빨려 들어갈 수밖에 없다.
차별은 확증편향처럼 작동한다. 장애인은 집에만 있는 존재라는 인식은 장애인이 이동할 수 있도록 하는 인프라를 만들지 않아서 정말 장애인이 집에만 있게 되는 현실로 이어진다. 홈리스는 무능하고 게으르다는 인식은 이들에게 적절한 지원을 하기 이전에 무작정 자활부터 요구하는 정책으로 이어져 홈리스가 더욱 자립하기 어렵게 만든다. 마찬가지로, ‘가출’과 ‘범죄’가 같은 말인 것처럼 붙어 다니는 사회에서 탈가정 청소년들은 정말로 범죄에 가까워진다. 인식이 현실을 만드는 것이다.
그렇다면 주거 불안정의 상태에 있는 청소년에게 필요한 것은 ‘가출 청소년을 계도하는’ 엄격한 자립 기준이 아닐 것이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실패할 기회다. 실패 한 번에 “네트 없이 바닥으로 떨어지게 되는 사회”에서는 어떤 도전도 안전하지 않다. 그렇기에 안전은 ‘실패할 기회’이기도 하다.
김시연: 제가 상상하는 안전은 내가 이렇게 살고 싶을 수도 있고 저렇게 살고 싶을 수도 있고 내 선택은 어제와 오늘이 다를 수도 있고, 왜냐하면 어제 생각한 나와 내일을 꿈꾸는 나는 또 다르니까요. 경험한 것도 다르고 그랬을 때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가 다양해야 이 사회는 안전한 거 아닐까, 상상하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안전하다는 건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가 좀 다양하다는 의미 아닐까.
김시연 활동가는 가정에서 살기 어려운 상황에서 사실상 지금 가능한 선택지는 시설, 아니면 거리, 찜질방, 상가 계단, 아니면 나를 폭력적으로 대하는 가해자뿐이라고 말한다. 생존하기 위해 가능한 선택지는 이렇게나 제한적이다. 지금은 병원비를 대줄 수 있는 보호자가 있어야만 안전하게 치료받을 수 있다. ‘보호자’로부터 나의 일상을 지켜내기 위해 집에서 나온 이들에게는 병원도 멀어진다. 온의 청소년 주거권 보장 원칙에서 ‘삶을 위한 지원이 함께 가는 주거’는 이와 관련된다. 주거만으로는 부족하다. 한 사람이 삶을 살아나가는 데에는 수없이 많은 요소가 필요하다. 주거를 시작으로 의료, 교육, 일자리 등의 통합지원이 필요한 것이다.
정찬송: 쉼터나 시설을 한 번 나오면, 선생님들이 유일하진 않지만 거의 몇 안 되는 안전한 관계였을 가능성이 높은데, 그 관계가 끊어지다시피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제 돌아갈 곳이 없다고 느끼게 되는 거죠. 내가 이 시설에 있었을 때, 쉼터에 있었을 때는 그래도 힘들면 찾아갈 사람이 있었는데 이제 없고. 나를 좀 알아주는 사람들 곁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느껴지는 순간에도 돌아갈 곳이 없다고 느끼는 게 청소년을 더 취약하게 만드는 지점인 것 같아요.
제대로 된 지원이 없는 상황에서 청소년들은 사회적 관계의 단절 또한 경험하게 된다. 사실상 가정과 학교가 지속적인 사회적 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인 사회에서 주거 불안정은 관계의 불안정으로도 이어진다. 이는 다시 심리적 취약성으로 이어진다. 그 와중에 시설 중심으로 짜여 있는 지원 체계 속에서 친밀성과 신뢰 또한 시설의 경계 안으로 제한된다. 시설 선생님들이 몇 안 되는 안전한 관계가 된다는 것은 시설에 머무르는 일도, 시설에서 나오는 일도 고통스러워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원 체계는 경제적 측면에만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니라, 한 개인의 삶 전체를 파고든다.
2022년에서 주목할 만한 사안이 무엇이 있었냐는 질문에 이들은 두 활동가는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청소년들이 겪는 위기 상황은 너무도 일상적이라는 것이다. 게다가 그것은 그저 일상이고, 어떤 ‘탈선한 애들’의 문제로만 여겨지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중요하게 다뤄지지도 않는다. 온의 목표는 이를 사회 전체의 고민으로 만드는 것이다. 시설 중심의 지원 체계, 가정과 학교 바깥의 청소년을 상상하지 않는 사회에서 철저히 사각지대에 놓이는 이들의 삶. 이러한 위기의 만성화에 맞서 다양한 기회와 선택의 가능성으로서의 안전을 구성해내는 것. 이것이 온이 실현해내고 있는 공공성이었다.
김시연: 사회에서도 청소년 상상하면 뭔가 학교에서 공부 되게 잘해가지고 이 사회에 엄청난 이바지를 할 것 같고 뭔가 대단한, 꿈과 희망이 가득한 그런 기준들, 그런 ‘새싹’이 되지 않으면 안 되잖아요. 그런데 사실 그런 존재가 되어야 하는 게 아니라 그냥 이 사회에 누구나 잘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으려면, 내가 사람들이 바라는 상으로 애써서 가야 되는 게 아니라, 그냥 이 존재 자체로 잘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는 것이어야 하는데.
사회는 청소년을 ‘국가의 미래’라고 호명하곤 한다. 그러나 청소년들은 ‘그들의 현재’를 살아나가는 존재들이다. 모두가 그렇듯, 청소년은 국가의 부흥을 위한 도구가 아니다. 공부를 잘해서 국가의 미래를 책임질 수 있는 청소년들만이 인간 대접을 받는 사회는 인간이 되기 위한 자격을 부여하는 사회다. 그러나 이 사회에서 존엄을 지키며 인간으로서 살아가는 데에 자격이 필요하다면, 우리는 그야말로 끝없이 추락하지 않기 위해 죽도록 애쓰며 살아가야 한다.
청소년 주거권의 이름으로 삶의 자격 자체에 질문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는 것은 청소년 주거권이 단지 청소년만의 문제가 아니라, 죽도록 애쓰며 살아가는 나와 당신의 문제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누구나 있는 그대로의 모습대로 일상을, 존엄을 지키며 살아갈 수 있어야 한다. 누가 인간이고, 무엇이 인간다운 삶인가. 가장 치열하게 질문하는 것은 언제나 ‘자격 없는’ 이들이었다. 이번에도 자격 없는 이들이 모여 말하기 시작한다. 자격 같은 건 애초에 없는 거라고.
1. 활동회원으로 함께하기
정책팀, 수다회팀, 캠페인팀, 교육팀이 있다. 팀은 유동적이라 바뀔 수 있다. 정책 제안을 위한 자료 조사와 함께 청소년 당사자들의 이야기를 직접 듣는 수다회,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기 위한 캠페인과 교육도 이루어진다. 앞으로는 현장 아웃리치도 이루어질 예정이다. 현재 이 활동에는 청소년 당사자들도 함께하고 있다. 이제 막 시작하는 단체인 만큼, 함께 만들어 나갈 수 있는 것은 더욱 많다.
온의 구체적인 활동 방향성은 이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2. 정기, 일시 후원으로 함께하기
연대와 후원은 청소년주거권네트워크 온이 활동을 지속할 수 있는 힘을 준다. 후원 방식은 일시/정기 모두 가능하다.
정기 후원 신청은 이곳에서 할 수 있다.
3. 관련 연구 자료 읽기
청소년주거권네트워크 온은 막 출범한 단체이지만, 관련된 자료들을 꼼꼼히 정리해 두었다. 여성가족부나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과 같은 정부 부처나 기관들에서 발행한 보고서부터 청소년성소수자위기지원센터 띵동 등의 시민단체에서 발행한 보고서까지. 온의 연구와 활동을 실시간으로 함께하기 힘들다면 이런 보고서들을 읽으며 청소년 주거권 담론에 익숙해지는 것도 중요하다.
이들이 정리한 자료는 이곳에서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