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주거권네트워크 온 1부_안희제
2022년 8월, 두 명의 자립준비청년이 세상을 떠났다. 이들의 이야기를 다룬 기사들은 대체로 두 가지에 집중했다. 경제적 문제와 심리적 문제. 이는 자연스레 두 가지 결론으로 나아갔다. 하나, 보육원에서 퇴소할 때 받는 자립준비금이 턱없이 부족하니 더 많은 금전적 지원이 필요하다. 둘, 보육원 퇴소 이후 심리적 문제도 국가가 관리해야 한다. 물론, 이러한 조치들은 분명 자립준비청년들의 현재를 조금은 나아지게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과연 이것만으로 충분한가? 그들의 죽음은 경제적 문제와 심리적 문제만 해결되면 막을 수 있는 죽음들이었는가?
정찬송: 이런 거죠. 시설에서 살다가 나오게 만드는 이 사회 구조 자체가 만든 죽음으로 봐야 한다. 지금은 자립준비청년에게 ‘자립 지원을 더 붙이면 괜찮아질 거야’라는 생각들을 많이 하지만 저희는 ‘사실은 그게 아니라’는 이야기를 사회에 던지고 싶어요.
‘청소년주거권네트워크 온’(이하 온) 활동가들의 대답은 조금 달랐다. 이들은 그보다 더 큰 범주에서 문제를 제기하고 있었다. 통상적으로 제안되는 경제적, 심리적 개입은 국가의 지원을 바탕으로 할지언정 청년 개인이 자신의 문제를 극복해야 한다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반면에 온은 그 이전의 이야기, 그 이면의 이야기에 주목한다. 2022년 8월에 세상을 떠난 이들은 애초에 왜 보육원에서 살아야 했는가? 무엇이 이들로 하여금 보육원 이후의 삶을 상상할 수 없게 만들었는가? 자립준비청년이 되기 이전의 단계부터 우리는 돌아봐야 한다.
온은 단체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청소년의 주거권을 주장한다. 학교 바깥의 청소년은 없는 존재 혹은 ‘탈선한’ 존재로만 이해된다. 사회는 이들을 그저 학교로 돌려보내야 하는 존재로만 취급한다. 동시에 사방에서는 학생인권조례를 폐지하려는 이들이 기회를 노린다. 이런 모습들은 지금의 한국 사회가 청소년에게 ‘인권’ 혹은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노골적으로 보여준다. 그런 상황에 청소년의 인권을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도 급진적인데, 그중에서도 이 단체는 ‘주거권’을 이야기한다. 청소년에게도 집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아니, 청소년이면 부모님 집에서 살고 있겠지, 근데 웬 주거권?’
2021년, 온은 아직 ‘청소년주거권네트워크’라는 이름만 갖고 있던 시기에 진보적 장애인 언론 <비마이너>에 여섯 편의 글을 기고했는데, 당시 <비마이너>의 객원기자였던 나는 그 연속 기고의 편집을 담당했었다. 이 단체의 이름은 나에게도 인상적으로 남아 있었다. ‘청소년’과 ‘주거권’이라는 단어의 조합이 너무 생소했기 때문이었다. 탈시설을 외치는 진보적 장애인 언론에서 청소년들과 활동가들이 청소년의 탈시설을 이야기하는 것은 분명 새로운 장면이었다. ‘탈가정 청소년’이라는 용어도 생소하긴 마찬가지였다. 주거 위기를 겪는 청소년을 도덕적으로 비난할 때 사용되는 ‘가출 청소년’과 같은 말 대신, 온은 이들의 상황을 좀 더 정확히 묘사하는 ‘탈가정 청소년’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이들은 어떤 배경에서 청소년의 주거권을 이야기하게 되었을까. 그 이야기를 듣기 위해 2023년 4월 3일, 사무실을 찾았다. 서울시 관악구 신림역에서 마을버스를 타고 굽이굽이 들어가 도착한 그곳은 3층짜리 가정집처럼 생긴 건물의 2층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이는 들꽃청소년세상의 건물인데, 들꽃청소년세상은 ‘움직이는청소년센터 EXIT’(이하 엑시트)와 ‘청소년자립팸 이상한나라’(이하 자립팸)를 지원하는 기관이었다.
엑시트는 신림역 근처에서 버스를 기반으로 거리의 청소년들을 만나는 단체로, 2011년에 처음 만들어졌다. 자립팸은 18세~24세 여성 청소년들이 사는 주거공간으로, 2013년에 만들어졌다. 두 단체 모두 청소년들이 거리에서 처한 혹은 처할 수 있는 위기 상황을 안전하게 넘어서 각자의 다양한 삶으로 자립하고 존엄한 삶을 유지하려면, 그리고 청소년들이 사회적 구성원으로서 존중받으며 살아갈 수 있으려면 무엇이 필요한지 고민하는 단체였다.
엑시트가 재정 문제로 운영을 종료하고, 비슷한 시기에 자립팸도 사업이 종료되면서 들꽃청소년세상은 이 두 단체의 활동을 이어나가면서도 새로운 방향을 잡은 온에 공간을 내어주었다. 사무실 근처의 편의점에서 과일주스를 사서 들고 간 우리에게 온의 김시연 활동가, 정찬송 활동가는 과자를 접시 가득 준비해 놓고서는 ‘빈손으로 오셔도 되는데…’라고 말하고 있었다. 청소년주거권네트워크에서 2021년에 만들어서 배포한 캐리어 모양의 황금색 뱃지가 2년째 꽂혀 있는 내 가방에도 시선이 집중되었다. 처음 만나서 반갑다고 인사를 나누며 우리는 글자가 덜 지워진 화이트보드가 걸린 넓은 공간 중앙에 있는 책상에 둘러앉아 이야기를 시작했다.
정찬송: 저희는 2019년도에 청소년 지원기관과 인권활동가, 그리고 법률 활동가들이 함께 모여서 청소년 주거 관련해서 연구를 하면서 시작한 단체이고요. 현장에서 청소년분들이 탈가정을 한 이후에 거리에서 생활을 하시면서 주거의 빈곤에 놓여 있는 현실을 마주하고 그 삶을 지원하다 보니까, 우리가 현장 단위에서 몇몇의 청소년들을 열심히 지원하는 건 당연히 의미 있지만 이것을 넘어서 사회적인 지원을 확대하고, 이 사회 청소년의 주거의 권리를 안착시키는 것들이 필요하겠다는 그런 마음들이 좀 모아져서 저희가 청소년 주거권을 걸고 운동을 시작하게 되었어요.
단체의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이 단체는 그 자체로 하나의 네트워크이기도 하다. 작년까지는 17개 단체들이 네트워크로 함께하는 방식이었는데, 본격적으로 청소년주거권 운동에 박차를 가하고자 2월에 창립식을 올렸다. ‘청소년주거권네트워크’ 뒤에는 ‘온’이라는 단체 이름이 붙었다. 딱 정해진 하나의 의미는 없지만, 어디에든 어울리는 ‘온(On)’이라는 이름은 청소년주거권 논의를 복지, 탈시설, 빈곤 등의 수많은 의제와 연결하여 더욱 활성화시키겠다는 이들의 취지에 잘 맞는 듯하다.
이들은 청소년 복지와 주거 복지, 이와 관련된 해외 사례에 대한 조사와 같은 정책과 제도 연구 활동에서 시작한 만큼, 엑시트나 자립팸과 같은 현장 지원 단체와는 다른 성격을 지닌다. 그러나 이들의 문제의식은 현장으로부터 나오고, 이는 두 활동가의 활동 배경과도 관련된다. 김시연 활동가는 온 창립 이전 청소년주거권네트워크의 소속 현장단체였던 청년맞춤제작소에서 활동했고, 정찬송 활동가는 자립팸에서 활동한 경험이 있다. 여기서 청년맞춤제작소는 엑시트에서 만난 청소년의 삶이 청년이 되어서도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는 문제의식에서 시작한 사업이었고, 엑시트, 자립팸과 비슷한 시기에 사업을 종료했다. 이처럼 이들이 온에서 상근을 하게 된 데에는 각자의 활동에서 갖게 된 고민이 있었다.
청소년들이 집을 만들자고 먼저 제안하면서 자립팸이 처음 만들어진 것을 구성원들은 “건국”이라고 표현했다고 한다. 쉼터가 집이 될 수는 없다는 생각에서 쉼터 바깥을 상상하기 위해 이들은 무려 ‘건국’을 해야 했다. 이들이 만든 새로운 ‘나라’의 이념은 청소년 주거권이었다. 청소년 주거권을 작게나마 실현해 보기 위해 이들에게 새로운 나라까지 필요했던 이유는 주거 복지에는 청소년이 없고, 청소년 복지에는 주거가 없는 대한민국의 시설과 가정 중심적 복지 때문이었다. 온은 이러한 방향성을 계승하고 있다.
왜 이들은 쉼터가, 시설이 집이 될 수 없다고 말할까? 시설은 한국 사회에서 굉장히 논쟁적인 공간 중 하나다. 장애인 운동에서도 탈시설을, 홈리스 운동에서도 탈시설을 이야기한다. 모든 시설에서 공통적으로 제기되는 문제는 ‘규칙’이다. 시설에는 규칙이 있다. 정작 그곳에 들어오는 이들은 합의한 적 없는 규칙. 그리고 그 규칙을 어기면 나가야 한다. 규칙은 질서를 넘어 사생활에 대한 통제로도 이어진다.
정찬송: 규칙이라고 표현되지만 사실은 사람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와 그런 것들을 다 컨트롤하는 방식으로 시설이 운영되고 있는 것이 좀 문제로 많이 드러나는 것 같아요. 청소년들이 실제로 느끼실 때는 결국에 자신의 자율성이 보장되지 않는 거죠.
김시연: 전 방문이 없다 이런 것도 되게 충격적이었어요. 어쨌든 여러 가지 사건 사고들을 걱정하는 차원에서 방문을 아예 만들어놓지 않는다거나, 방문이 있어도 언제든지 외부인 사람이 볼 수 있는 창문을 뚫어놓는다든지.
정찬송: CCTV에 대한 이야기는 진짜 많이 나오는 것 같아요. 이건 거의 모든 시설에서 그런 것 같기는 한데, 그래서 남성 실무자가 있는데 여성 청소년들이 옷을 갈아입을 데가 없는 거예요. 왜냐하면 문이 열려 있잖아요. 언제든 볼 수 있는 공간이잖아요. 그러니까 그것에 대한 스트레스를 호소하기도 하고.
김시연: 그런 것들이 굉장히 문제적이죠. 그리고 사실 이 청소년들이 이렇게 같은 지역에서 돌아다니다 보면 한 다리 건너면 다 아는 사이일 수 있어요. 근데 사이가 좋은 사람도 있고 나쁜 사람도 있을 수 있잖아요? 그런데 누구와 함께 지낼지 선택할 수 없는 거죠. 쟤랑 내가 엄청 사이가 나쁜데도 같은 공간에 있어야 돼요. 그리고 문제가 일어나면 누군가 한 명은 쫓겨나는 상황이 되는 거죠. 그런 것들을 스스로 전혀 컨트롤할 수 없는 공간인 거예요.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핸드폰을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이 정해져 있다. 방에 문이 없거나, 문에 창문이 뚫려 있어서 편하게 옷도 갈아입을 수 없다. 개개인의 문제를 넘어 관계의 문제도 있다. 사이가 안 좋은 사람과도 그저 함께 지내야 한다. 그리고 관계에서 문제가 생기면 누군가는 퇴소당한다. 관계의 문제는 주거의 문제가 된다. 나만의 시공간도, 타인과의 관계도 내 뜻대로 선택할 수 있는 게 없다. 하지만 이런 규칙을 지키지 않으면 나는 내 삶의 기본 조건인 주거를 빼앗긴다. 사람이 살아가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인 주거는 인질이 된다. 주거를 지키기 위해 나를 포기해야 한다.
문제가 생기면 정부 지원이 끊기는 입장에서 시설 직원들도 별다른 선택지가 없다. 더 나은 직원들, 더 나은 시설을 만든다고 되는 문제가 아니라, 아예 시설 바깥을 상상해야 하는 것이다.
자기 자신의 일상에 대한 통제권이 없는 공간을 집이라고 할 수 있을까. 사생활을 무시하고, 폭력을 휘두르고,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 주지 않는 가정에서 나와서도 내가 합의한 적 없는, 문도 없는 방으로 들어가 CCTV의 감시를 받아야 한다면, 이걸 일상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러니 이들이 주거권을 외치는 것은 자신의 일상을 지키기 위해서다. ‘내가 나온 건 집이지, 일상이 아니야’라는 말에는 그런 절박한 싸움이 담겨 있다.
가정 바깥의, 시설 바깥의 삶을 상상하기 위한 온의 활동은 지금부터 시작이다. 이들은 2019년에 처음 모여 청소년 주거권 개념을 연구하기 시작하고, 반빈곤 운동과 장애인 운동에서의 주거권 담론과의 연결성을 모색했다. 국내외의 청소년 주거 정책과 법, 제도를 조사하고, 연구보고서를 발간했다. 다양한 토론회를 열고, 청소년 당사자들이 주거권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수다회 자리를 만들었다. 지방선거 등의 국면에서도 수많은 목소리 안에 ‘청소년 주거권’이라는 여섯 글자를 새겨 넣고, 새로운 이야기를 시작해보려고 하고 있다.
김시연: 이 청소년 주거권이라는 것을 시민 분들이 보고 접했을 때 사실 되게 낯설잖아요. 이게 내가 평소에 생각해보지 않은 것일 때, 옛날에는 ‘왜 애들이 집을 나온대’ 이렇게 말했다면, 청소년 주거권을 한번 접하고 난 다음에는 뭔가 다른 이야기를 그분들이 조금 더 하실 수 있는 거죠. 그런 사람들이 계속 늘어날 때 또 이 사회가 어쨌든 바뀔 수 있는 거 아닌가.
온의 활동에는 후원과 활동으로 함께할 수 있다. 후원만 할 수도 있지만, 팀별로 이루어지는 연구나 캠페인 활동으로도 함께할 수 있다. 현재 온에는 정책팀, 수다회팀, 그리고 캠페인팀이 있고, 교육팀도 있다. 현장의 관점에서 연구와 정책에 개입하고자 하는 단체의 성격에 따라 정책 제안을 위한 자료 조사와 함께 청소년 당사자들의 이야기를 직접 듣는 수다회가 이루어진다.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기 위한 캠페인과 교육도 이루어진다. 앞으로는 현장 아웃리치도 이루어질 예정이다. 현재 이 활동에는 청소년 당사자들도 함께하고 있다. 이제 막 시작하는 단체인 만큼, 함께 만들어 나갈 수 있는 것은 더욱 많다. “여기 안에서 답을 찾을 수 없는 거죠”라고 말하는 활동가들은 안에서 답을 찾는 대신 바깥을 상상했다. 답이 없다면 만들면 된다. 2023년에 이들은 막 발돋움하는 청소년주거권네트워크 온을 주목해 달라고 했다.
인터뷰를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새삼 공간이 휑했다. 우리가 인터뷰를 한 이 공간은 조만간 청소년들이 지낼 수 있는 공간으로 리모델링될 것이라고 활동가들은 말했다. 누군가가 새롭게 지낼 수 있는 공간을 만들려면 일단 그곳을 깨끗이 비워야 한다. 그 공간을 아예 다시 쓰는 것이다. 청소년 주거권을 말하는 것은 단지 기존의 인권에 청소년 주거권을 덧붙이는 것이 아니라, 인권을 다시 쓰는 일이다. 주거를 다시 쓰는 일이고, 동시에 청소년을 다시 쓰는 일이다. 이 사회를 다시 쓰는 일이다. 오늘 우리가 둘러앉아 이야기하던 자리에 청소년들이 앉을 것이다.
1. 활동회원으로 함께하기
정책팀, 수다회팀, 캠페인팀, 교육팀이 있다. 팀은 유동적이라 바뀔 수 있다. 정책 제안을 위한 자료 조사와 함께 청소년 당사자들의 이야기를 직접 듣는 수다회,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기 위한 캠페인과 교육도 이루어진다. 앞으로는 현장 아웃리치도 이루어질 예정이다. 현재 이 활동에는 청소년 당사자들도 함께하고 있다. 이제 막 시작하는 단체인 만큼, 함께 만들어 나갈 수 있는 것은 더욱 많다.
온의 구체적인 활동 방향성은 이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2. 정기, 일시 후원으로 함께하기
연대와 후원은 청소년주거권네트워크 온이 활동을 지속할 수 있는 힘을 준다. 후원 방식은 일시/정기 모두 가능하다.
정기 후원 신청은 이곳에서 할 수 있다.
3. 관련 연구 자료 읽기
청소년주거권네트워크 온은 막 출범한 단체이지만, 관련된 자료들을 꼼꼼히 정리해 두었다. 여성가족부나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과 같은 정부 부처나 기관들에서 발행한 보고서부터 청소년성소수자위기지원센터 띵동 등의 시민단체에서 발행한 보고서까지. 온의 연구와 활동을 실시간으로 함께하기 힘들다면 이런 보고서들을 읽으며 청소년 주거권 담론에 익숙해지는 것도 중요하다.
이들이 정리한 자료는 이곳에서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