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컨의 '동굴의 우상'을 통해 본 인간
* 생각 좀 하고 살자는 마음으로 쓰는 철학 매거진
종족의 우상에 이어 베이컨이 말한 두 번째 우상인 '동굴의 우상'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동굴의 우상(idola specus)'이란 개인이 가진 편애와 혐오, 아니면 관습과 속견 등 각자가 중요하다고 여기는 관념이나 스스로 따르는 지적 권위 등을 가리킵니다. 인간이 세계에 대해 정확히 알고자 한다면 그 탐구자는 자신이 한 '개인'으로서 주관적이고 특수하다는 입장을 고려하여 사물을 바라보아야 한다는 주장이죠. 자기의 입장에서 보고 싶은 대로 보고 믿고 싶은 대로 믿는 잘못된 인간의 인식이 바로 '동굴'에 해당합니다.
동굴=개인의 믿음과 견해
동굴의 우상=자기를 떠받드는 우상
'동굴의 우상'은 고대 그리스 철학자인 '플라톤'이 제시했던 '동굴의 비유'를 따다 재해석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플라톤은 인간은 어두컴컴한 동굴 속에 죄수처럼 발이 묶여 동굴 안쪽을 바라보고 있는 것과 같다고 했습니다. 동굴 안쪽 벽면에는 동굴 바깥에 위치한 태양의 빛에 비친 '이데아(Idea)의 그림자 '가 비추고 있는데, 사람들은 이를 '진짜' 또는 '진실'이라 여긴다고 보았죠. 고개를 돌려 사슬을 끊고 동굴을 빠져 나와야 그곳에 이데아, 즉 세계의 진실과 만물의 본질을 담은 진짜 세상이 펼쳐진다 비유적으로 말했습니다.
일상에서 우리는 각자 살아오면서 생각하고 행동하며 내린 여러 가지 결론들을 바탕에 두어 삶의 기준들을 세우게 됩니다. 그리고 다시 그 기준에 따라 생각과 행동을 반복하는 시행착오를 통해 얻은 정보들을 바탕으로 자기 기준이 가진 오류를 수정하고 부족함을 채워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 합니다. 문제는 자기의 결론이나 기준이 늘 통용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죠. 늘 통용되는 것을 '보편성'이라 부르는데, 철학에서 '보편적'이다 말하는 것은 엄밀하게 '언제, 어디서나, 누구에게나' 참일 수 있는 사실들을 가리킵니다.
보편성=언제, 어디서나, 누구에게나
보편적이기보단 보편적일 수 있도록
사람들이 흔히 저지르는 실수 중 하나는 그동안 살아왔던 방식을 쉽게 놓치 않는다는 점이죠. 그렇게 살아와도 잘 살아왔고, 그렇게 생각하고 행동해도 큰 문제가 없었으니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가도 괜찮을 것이라 여깁니다. 더군다나 나이가 들면서 자기의 그름과 잘못을 인정하려 들지 않게 되고 설령 안다 해도 고치거나 보완하려 하지 않는 경향도 심해지죠. 사실 아무리 오랜 경험과 연륜을 쌓는다 하더라도 한 개인이 가진 믿음과 견해가 보편성을 가지기 어렵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내가 옳다 여기고 바르다 여기는 믿음들을 따져보면 세상 사람들이 그렇게 알고 있는 것들이나 스스로 의심해보지 않은 채 교육 받아온 관념들이 많습니다. 나의 관점이 너무 편협하지는 않은지, 나의 사고와 행동 방식에 부족함은 없는지 스스로 돌아보아야 합니다. 타인의 관점과 방식을 배척하고 무시하는 것은 옹졸한 행동입니다. 자존심 때문에 타인을 인정하고 싶지 않고 자기의 부족함을 드러내고 싶지 않은 거죠. '뭐 어쩌라고' 또는 '니가 먼데?'라는 말이 너무나 당당한 자기 방어의 수단으로 용인되어서는 안 됩니다.
뭐 어쩌라고?
이건 내 취향인데?
개인주의가 너무나 개인적으로 사용되다 보니 선뜻 타인에게 도덕적 원칙을 들이대는 것이 간섭으로 느껴지고, 서로 간에 도덕적 평가를 내리는 것이 주제 넘게 보이는 요상한 세상이라 더욱 그렇죠. 내 맘이고 내 취향인데 무슨 상관이냐고요? 문제제기를 하는 상대방도 똑같이 되물을 수 있습니다. 내 지적에 니가 왜? 자기 식대로 사는 것을 막 사는 것과 혼동해서는 안 됩니다. 인간이라면, 그리고 생각할 수 있다면 '자기만'의 방식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도' 용인할 수 있는 만한 방식으로 삶의 기준을 세워야 하지 않을까요?
인간에게 가장 가까운 존재는 '자기 자신'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자주 자기 자신에게 지나치게 '관대'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생각하는 인간은 관대하기 보다 차라리 '엄격'하고자 합니다.
생각을 생각하다 - 바스락 https://www.basoloc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