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면도
대학생때까지는 수염이 빳빳하게 나지 않았었다.
연약한 모발에 듬성듬성 나는 식이였다.
나이를 먹고 20대 후반이 되자 이윽고 면도라는 행위를 제대로 필요할 만큼 뻣대를 세운 수염이 자라나기 시작했다.
남자들마다 수염나는 부위가 다르며 양도 다르다.
나는 언제나 박찬호같은 수염을 기를 수 있는 사람들이 부럽다. 코 밑과 턱에 조금씩 밖에 나지않는 나의 수염에 만족하지 못 한다. 마치 큰 키를 부러워하듯이 말이다.
내가 갖지 못한 걸 포장하기위해 되는대로 길러보았지만 수염의 밀도가 높지 못해 언제나 멋이 나질 않는다.
뻣뻣한 수염은 진짜 어른의 성징이자 숫컷의 뿔과 같은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가끔 해본다.
물론 뿔처럼 우월한 유전자를 나타내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남자들은 거울 앞에 섰을 때 자신의 수염을 손바닥으로 쓸어 까칠까칠한 거친 느낌을 느끼며 (소리도 난다. 사포로 긁어내리는...) 오늘도 빡셌네라는 생각을 한번쯤은 한다. 이 터프한 느낌은 묘하다. 테스토스테론이 자극받는 느낌이다.
나는 가끔 저녁 면도를 한다.
박찬호 같은 사람은 엄두도 못 낼것이다. 자는 동안 많이 자라나 있을 수염때문이다.
아침에 일어나 세수를 할 때 밋밋하고 매끄럽게 비누 거품이 얼굴에서 걷히는 느낌이 좋기 때문이다.
야근으로 피로가 느껴지는 날이면 저녁 면도를 하고 아침에 일어나면 상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