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유튜브 채널 SeaPearl 의 물고기 책방 에 흘러나오는 노래를 들으며 신나게 작성했습니다.
파충류의 뇌 :
'파충류의 뇌'는 인간의 뇌가 가장 원초적인 생존 본능을 담당하는 부분의 비유적 표현으로, 위험에 직면했을 때 감정이나 이성보다 먼저 작동하는 생존 기제입니다.
회사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나는 내가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는 걸 느꼈다.
집 안에 있을 때의 나와 집 밖에 있는 '나'가 같은 사람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초반 1년은
정말 아무것도 모르고 다녔다.
회사생활에 대한 지식도,
누군가의 에피소드도,
어디서 어떻게 버텨야 하는지에 대한 요령도
찾아보지 않았고
물어보지도 못했다.
그냥
몸으로 받아냈다.
이곳은
일보다 분위기가 더 힘든 곳이었다.
팀장이 내뿜는
부정적인 류의 에너지는
지금에 와서는
왜 그랬는지 조금은 이해하게 되었지만,
HSP인 나에게는
가히 숨이 막히는 환경이었다.
11개월 차에는
과호흡증후군이 찾아왔다.
공황장애 전 단계라는 말을 들었다.
그런경험은 살면서 '처음' 해 보았다.
어떻게 돌아가는 쌍팔년도 분위긴지
정제되지 않은 언어의 날 선 공격들,
존중보다는 효율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날 선 공격들이 일상인 곳
당연한 듯 존재했다.
아,
그리고 인사하는 문화가 없었다.
아침마다 몇 번씩 인사를 했지만
돌아오는 건
받는 둥 마는 둥한 표정이었다.
환대를 잃어버린 차가운 얼굴들
의무처럼 고개만 까딱하는 정도.
그 장면을
몇 번 겪고 나서
나는 인사를 그만두었다.
상처받아서라기보다는
그 인사가
아무 의미도 남기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됐기 때문이다.
나는
당연히 그 가운데 한 명으로
살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그들도
내가 그 무리에 섞이는 걸
그다지 반기지 않았던 것 같다.
이런 걸
텃세라고 부르는 걸까.
이 환경에서
사수라는 존재는 없었다.
일을 가르쳐주지 않은 채
팀장은 일을 던졌고,
못하면
쪽을 주는 패턴이
매번 반복됐다.
그런 환경치고는
나는 꽤 잘 해오긴 했던 것 같다.
무조건 설명없이 목적도 모른채,
'일'을 시키고 여차저차 해 가면
당연히 틀린방식으로 일이 진행되었던 터라
'일' 하는 방식을 가르쳐준다는 명목하에
또 그 가운데서 아이러니하게
엄청난 마이크로 매니징을 했다.
무한 반복되는 사람 피 말리게 하는 방식에
“알려줘야 하는 거 아니냐”고
소리를 친 적도 있었다.
그러면서
내가 스스로 정해두었던
‘고분고분하겠다’는 캐릭터는
완전히 빠그러졌다.
파충류의 뇌가 가동되면서
나는 늘
건드리면 물 준비를 한 상태로
회사에 다녔다.
말수는 줄었고,
표정은 굳었고,
예전처럼 쉽게 넘기지 않았다.
이런 모습은
누군가의 눈에는
불편한 태도로 보였을지도 모른다.
특히
나보다 어린 상사나 선배들에게는
더 그랬을 것이다.
그들은
이런 변화를
좋게 보지 않았고,
변화된 나의 태도는 누군가에게는
낯설고 불편한 신호로 읽혔을 것이다.
돌이켜보면
그건 싸움이라기보다
경계선이 생긴 결과에 가까웠다.
나는 더 이상
아무 일도 아닌 척
모든 걸 받아들이는 사람이
아니게 되었고,
그 변화는
누군가에게는
위협처럼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이런 반응은
회사에 와서
처음 생긴 건 아니었다.
연기를 하던 시절의 나는
늘 새로운 현장,
늘 새로운 사람들이었다.
프로젝트가 끝나면
다시 언제 볼지 모르는 관계들이라
이상하게 자유로웠고,
조금 불편해도
“이 정도쯤이야” 하며
참을 수 있었다.
매번 처음 가는 곳에 서다 보니
자연스럽게
지도를 잘 보게 됐고,
길을 잘 찾게 됐고,
현장이 돌아가는 판을
빠르게 읽게 됐다.
극강의 I였지만
현장에만 서면
이상하게 E가 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건 성격이 아니라
적응 방식에 가까웠다.
조금 다쳐도,
조금 아파도
잘 말하지 않았고,
밥도 잘 참고,
추위와 더위도 잘 참았다.
그건 무모함이 아니라
다음 현장을 위해
내 몸을 조정하는 방법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곳에는
레벨 차이는 있을지언정
열정이 가득한 사람들이 있었다.
모두가 같은 목표를 보고 있었고,
한곳에 잠시 모였을 뿐이지만
분명히
한마음이라는 느낌이 있었다.
회사에서 흘러가는 시간과는
차원이 달랐다.
현장에서는
시간이 흐른다기보다
압축되는 느낌에 가까웠다.
짧은 순간 안에
집중이 몰리고,
감정이 쏟아지고,
결과가 만들어졌다.
그 시간은
길지 않았지만
묘하게 오래 남았고,
그래서 더 또렷했다.
지금 돌아보면
그때의 나는
자유로웠다기보다
밀도 높은 시간 속에 있었다.
회사에 들어오고 나서
나는
그때의 방식을
다른 방식으로 쓰기 시작했다.
참는 법을 알고 있었고,
버티는 데 익숙했고,
말하지 않는 것도
하나의 기술처럼 여겼다.
하지만 회사의 시간은
이상하게도
오래 머무를수록
얇아졌다.
밀도는 낮아지고,
집중은 흩어지고,
대신
방어만 남았다.
그래서 나는
파충류의 뇌를
없애기보다
계속 쓰게 되었다.
무너지지 않기 위해,
버티기 위해,
그리고
여기서 살아남기 위해.
이제는 안다.
이건 내가 약해서가 아니라
너무 오래
이 모드로 살아왔기 때문이라는 걸.
그렇게 나의 첫 1년은
정리되지 않은
배우로 살았던 시간들과
완전히 새로운 일 사이의
마찰로 가득 차 있었다.
어느 쪽도
제대로 놓지 못한 채,
어느 쪽에도
완전히 속하지 못한 상태였다.
나는 여전히
사람의 감정을 먼저 읽고,
공기의 흐름을 먼저 감지했지만,
그 능력을
어디에 써야 하는지는
아직 알지 못했다.
연기하듯 버티고,
현장처럼 눈치를 보며,
대본 없는 장면을
매일 반복해서 연기했다.
그게
적응인지,
도망인지,
성장인지도 모른 채.
그래서 번아웃은
예고 없이 찾아왔다.
지쳐 있었다기보다는
계속 깨어 있는 상태에
더 가까웠다.
몸은 출근을 했고,
손은 일을 했지만,
머리는
늘 다음 상황을 대비하고 있었다.
쉬고 있어도 쉬는 게 아니었고,
괜찮다고 말하면서도
괜찮지 않았다.
그때의 나는
무너졌다고 말하기엔
아직 너무 바빴고,
버티고 있다고 말하기엔
이미 너무 닳아 있었다.
아마 그 1년은
내가 회사에 적응한 시간이 아니라,
내가 나를 잃지 않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방어를 배우던 시간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지금에 와서야
알겠다.
그 시기의 나는
약했던 게 아니라,
아무런 준비 없이
너무 다른 세계에
던져졌을 뿐이라는 걸
그렇게 싸우고, 버티고, 연기하던 시간이
조금 지나고 나서야
나는 비로소
회의라는 감정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가 찾은 건
침대와 베개,
잠이었다.
아무것도 해결해주지 않지만,
그날을
조금 덜 망가진 상태로
넘길 수 있게 해주는 것.
회사에서의 하루는
정리되지 않은 채로 끝났고,
나는 그걸
매번 잠으로 덮었다.
생각을 멈추기 위해서가 아니라,
생각할 힘이
더 이상 남아 있지 않아서.
침대에 눕는 순간만큼은
누구의 표정도 읽지 않아도 됐고,
어떤 말에도
즉각 반응하지 않아도 됐다.
그 몇 시간 동안은
아무 역할도 하지 않아도 되는
유일한 시간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건 회피라기보다는
회복에 가까운 선택이었다.
적어도 다음 날을
다시 시작할 수 있을 만큼은
나를 살려두는 방식.
그래서 그 시기의 나는
앞으로 나아가지는 못했지만,
완전히 무너지지도 않았다.
아마
그때의 침대와 베개는
나에게
쉼이 아니라
최소한의 생존이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