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 파충류의 뇌 대신 질문을 쓰기 시작했다

어느 날이었다.

특별한 사건이 있었던 날은 아니었다.


평소처럼 파일을 열고,

평소처럼 수정 요청을 받고,

평소처럼 “일단 이렇게 해보자”는 말을 들었다.


예전 같았으면

이쯤에서 감정이 먼저 반응했을 것이다.


이게 맞는지, 틀린 건지,

왜 매번 기준이 바뀌는지에 대한

답답함이 앞섰을 것이다.

그런데 그날은 조금 달랐다.


파충류의 뇌가 가동이 되기 보다

이상하게 질문이 먼저 떠올랐다.


이 일의 목적은 뭘까.

지금 요구되는 결과는 뭘까.


‘잘했다’는 건

어떤 상태를 말하는 걸까.

화가 나지 않았던 건 아니다.


다만 그 감정을

그대로 밖으로 내보내지 않고

잠시 옆에 두게 되었다.


대신

머릿속에서 떠오른 질문들을

하나씩 붙잡기 시작했다.


이건 개인의 문제가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예민해서가 아니라,

이 구조 자체가

사람을 계속 반응하게 만드는 방식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그때부터였다.

감정 대신 질문을

머릿속에만 두지 않게 된 게.


메모장에 적었고,

노션에 옮겼고,

정리되지 않은 문장으로라도

밖으로 꺼내두기 시작했다.


답을 찾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적어도

무엇이 문제인지라도

알아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질문을 적는다고 해서

상황이 바로 나아지지는 않았다.


일의 방식이 바뀌지도 않았고,

조직이 달라지지도 않았다.


하지만 분명한 건

그전과는 달라졌다는 점이다.


반응하고 나서 후회하는 대신,

질문을 남기고

다음 장면을 바라보게 되었다.


그때는 몰랐다.

이 질문들이

어디까지 이어질지.


다만 확실한 건,

그날 이후로

나는 파충류의 뇌 대신

질문을 쓰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이 질문들 중 몇 개는

숫자로 확인해볼 수 있다는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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