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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평강 May 01. 2023

[바이블클래스] 하나님 제 인생에서 뭐하셨어요?

우린 일기장에도 거짓말을 쓴다. 거짓말을 벗어나 진짜 믿음으로 가는 길

'하나님 제 인생에서 뭐 하셨어요?'라고 묻고 싶은 너에게

사람은 일기장에도 거짓말을 쓴다. 부끄러운 것, 부정적인 것은 감추고 싶은 것이 인간이다. 나에게조차도.


YWAM(국제 예수전도단) 텍사스 지부에서 DTS(Discipleship Training School)를 받을 때, 신앙생활 최대의 위기가 찾아왔다. DTS 리더였던 Mr. Han 선교사님과 첫 일대일 대화를 나누는 날이었다. 한 사람씩 개인 대화를 나누는 자리, 한국으로 치면 일종의 상견례 자리였다. 상견례가 뭔가 적당히 내숭도 떨고, 좋은 이미지를 심는 자리가 아니던가. 


평범한 주제로 대화를 텄다. 여기에 어떻게 오게 됐는지로 이야기가 시작됐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대화는 내 신앙의 민낯이 까발려지는 자리가 됐다. 


Mr. Han 이 내게 질문 하나를 던졌다. 


"성경을 믿어요?"


내가 대답했다. "믿죠..." 


"예수님이 성경에 아버지 이름으로 구하는 자에게 무엇이든 주시겠다고 하신 말 믿어요?" 


"음.. 잘 모르겠어요.." 내가 다시 대답했다. 


"혹시 노아가 방주 만든 건 믿어요?" 


"믿죠..." 


"노아의 방주는 믿는데, 하나님이 기도하는 자에게 무엇이든 주시겠다고 한 말은 안 믿는다는 게 말이 돼요?" 


"아니.. 그러니까 그게... 방주는 실제 있었던 일인데.." 


나는 말을 더 잇지 못했다. 내가 생각해도 어이없고 앞뒤가 안 맞는 믿음의 체계였다.


구약 시대에 노아가 하나님이 알려주신 대로 방주를 만들어 심판을 피하고, 히브리인들이 홍해를 가르신 하나님을 따라 애굽에서 탈출한 건 믿는데.. 정작 내 삶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은 믿지 않는다는 게 말이 될까? 


Mr. Han이 말했다. 


"믿음이 이렇게 없는데 교회는 어떻게 다녔어요?"


순간 내 얼굴에 얄궂은 미소가 번졌다. 


'들. 켰. 다'


그 말에 화가 나지 않았던 건 하나님의 은혜 같다. 

엄마 뱃속에서부터 30살까지 크리스천으로 살았던 나에게 돌아온 말이 '믿지 않으면서 교회는 왜 다녀요?'였다. 그런데 화가 나지 않았다. 안도했다. 아, 더는 믿음 좋은 척하지 않아도 된다. 


살면서 내 본질을 꿰뚫어 본 이를 만나는 건 처음이었다. 아니 내 밑바닥을 본이야 있다 하더라도, 나에게 솔직하게 내 처참하고 비참한 상태를 말해준 건 Mr. Han이 처음이었다. 


첩첩산중.. 대화가 깊어질수록 Mr. Han의 한마디 한마디가 가슴으로 날아와 꽂혔다. 


"참 예쁘게 포장이 돼 있다." 


"네?" (지금 와서 하는 말이지만 처음엔 칭찬인 줄 알았다...)


"정말 예쁜 포장지로 겹겹이 잘 포장되어 있어. 8겹 9겹쯤 쌓여 있는 것 같은데."


황당했고, 얼굴이 조금 화끈 거렸지만 그 상황이 너무 안심이 됐다. 


'들켰다. 어차피 내 밑바닥을 다 아는 사람이다. 이제 거짓말을 할 필요가 없다.' 이게 나의 진심이었다. 


거짓말을 하는 사람에게 가장 큰 해방은 무얼까. 더는 거짓말을 하지 않아도 될 때가 아닐까? 

거짓말이 탈로날까봐 매 순간 가슴 졸이며 사는 삶을 내려놓아도 될 때, 그때가 거짓말하는 자의 가장 큰 해방의 순간이 아닐까. 


적어도 나에겐 그랬다. 적당히 내 신앙의 연수에 맞게 믿음 있는 척, 신앙 있는 척 살았던 내게 처음으로 불경스러운 생각과 말들을 허심탄회하게 내뱉을 수 있는 사람이 생긴 것이다. 


'저 사실은 하나님 못 믿겠습니다. 천국은 다 헛소리 같아요. 신앙이란 게 결국 그냥 고통스러운 인간이 만들어낸 자기 위안 아닌가요? 믿음이란 게 가난하고 병든 자들이 잘 나고 똑똑한 사람들 보면서 느끼는 박탈감을 지워보려 정신승리 하는 것 아닌가요?' 


턱끝까지 찼고, 머릿속에 빙글빙글 돌던 무수한 질문들을 꺼낼 수 있다니, 마음이 시원했다. 

그렇다고 바로 솔직하게 모든 생각을 말할 수 있던 것은 아니다. 


어느 날은 별빛만 총총한 텍사스 허허벌판에 누워 한참을 울며 아무말이나 해댔다. 기도인지 원망인지, 애원인지 비난인지 모를 말들.


"믿음 없는 게 제 탓입니까? 믿음도 하나님이 주시는 거라면서요? 믿음 없는 게, 죄지으며 산 게 제 잘못이에요? 죄짓지 않고 살만큼의 믿음을 주셨으면 됐잖아요. 말 좀 해보세요. 제가 이 모양 이 꼴로 사는 게 대체 왜 제 탓이에요? 절 사랑한다면서요? 사랑한다면서 왜 죄짓게 놔두셨어요. 왜 제가 비참해질 때까지 보고만 계셨어요? 도대체 하나님 제 인생에서 뭐 하셨어요? 제가 죽고 당신이 살아야 한다고요? 전 죽기 싫어요. 아니 죽고 싶은데 못 죽겠어요. 뭐 어떻게 하라는 거예요?  내가 태어나고 싶다고 한 거 아니잖아요. 만드셨으면 책임을 져야죠? 말 좀 해봐요!!!!!!!!!! "


그렇게 몇 시간을 어둠 속에 누워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날 하나님이 날 살려주신 것 같다. 텍사스 벌판에는 뱀이며, 스퀑크며 인간에게 해를 끼칠 수 있는 야생동물이 가득하다. 더군다나 늑대과의 야생동물이 밤에 많이 출몰해서 위험천만하다.)


무튼 이렇게 하고도 하나님과 인간 앞에 솔직해지기까지 지난한 여정을 거쳤다. 


'하나님한테 이런 말까지 고해도 될까? 이런 생각을 가져도 될까? 이런 부탁까지 드려도 될까?'

보이지 않는 하나님한테도 못하는데, 사람에겐 더 말할 필요도 없었다. 


'내가 이런 말을 하면 사람들이 이렇게 생각할 텐데 솔직해져도 될까? 이런 부끄러운 모습을 보여도 될까?' 끝없이 되물었다. 


나는 어디서든지 숨기고 포장하고 꾸미는 데 익숙했다. 그게 사랑받고, 존중받고, 존경받을 수 있는 길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하나님 앞에서나 사람 앞에서나 있는 모습 그대로를 보여줘도 사랑받고, 존중받고, 존경받을 수 있다는 걸 알기까지 참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다. 


그리고 오늘 비로소 알게 되었다. 하나님은 거짓말을 정말 싫어하신다. 

자신을 비난하는 소리보다 거짓말을 더 싫어하신다. 


"하나님이 참으실 수 없는 사람은, 그럴듯한 연기를 하긴 하지만 자신이 맡은 배역의 감정을 결코 이해하지 못하는 공손하지만 가식적인 그리스도인이다. 하나님은 싸우기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일하기를 더 좋아하신다. " 제럴드 싯처의『하나님의 침묵』中


제럴드 싯처는 목사다. 9년 만에 어렵게 4명의 아이를 낳았는데, 자동차 사고로 아내와 1명의 자녀를 잃는다. 두 살이었던 아들은 사고로 전신 깁스를 하고 병상에 누웠다. 믿을 수 없는, 영혼을 파괴하는 고통 앞에 싯처는 이렇게 기도했다. "하나님 전 하나님과 아무 관계도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나는 그의 고통을 만 분의 1만큼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아직 사랑하는 가족 중 누구도 잃어보지 않았으니. 하지만 그와는 다르게 지옥 같은 우울증의 늪에서 늘 죽음을 희망하던 나는 "하나님과 아무 관계도 없길" 바라는 그 마음이 무엇인지 안다. 싯처도 나도, 어떤 희망도 보이지 않는 절망의 늪에 서있긴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 암흑에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 묵묵히 비난을 받으셨다. 아니, 오히려 그 순간을 기다리셨다. 당신은 선하지 않다는 오해 가득한 말 앞에, 당신은 가장 무능력한 신 같다는 조롱의 말 앞에, 당신과 나는 아무 관계도 아니길 바란다는 차가운 말 앞에, 하나님은 자신의 선한 능력을 드러내셨다. 


불경스럽고, 가시돋힌 말 한가운데에서 나를 지켜보시며 응답을 준비하고 계셨다. 

하나님의 따듯한 사랑을 느낄 수 있는 부드러운 마음을 주셨고, 그 시간을 지나 내가 정말 하고 싶어 했던 공부의 길을 열어주셨다. 심지어 그 공부를 위해 돈도 마련해 주셨다. 


위에서 언급한 선물들도 무척 좋았다. 

하지만 지금 가장 감사한 선물은 내가 더는 일기장에 거짓말을 쓰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다. 

하나님을 믿는 척, 괜찮은 척, 안 괴로운 척, 안 아픈 척, 안 외로운 척, 지금 매우 잘 살고 있는 척, 화 안나는 척, 질투 안나는 척, 모든 척에서 해방시켜 주셨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더 놀라운 변화는 내가 가면을 쓰고 사람들을 대하지 않아도 사랑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믿게 됐다는 것이다. 


사랑이 느껴지지 않아 한기만 돌던 가슴에 따듯한 이불이 덮였다. 

이 공허함이 채워지긴 하는 걸까 신음하던 내게 사랑에 대한 만족이 찾아왔다. 


거짓말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만큼 큰 선물이 없다. 거짓말에서 해방되면 완전한 평안이 온다. 

그리고 내 뒤에 있는 아버지의 실체를 알게 된다. 

변명하지 않아도 용서하는 아버지. 

내 모진 말에도 끌어안고 사랑한다고 말하는 아버지.

병들고 실패해도 내가 자랑스럽다고 말하는 아버지.

위험한 세상에서 나를 모든 순간에 안전하게 지키시는 아버지. 

이 모든 것이 사실임을 알게 하시는 아버지.

나의 하나님 아버지.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I love you, Lord, my strength.


나의 고백이 당신의 고백이 되는 날이 오길 기도한다. 

전심으로 거짓말의 무게를 덜어 당신의 영혼이 훨훨 날아다니는 날이 오길. 


하나님은 오늘도 당신을 기다리신다. 

비난과 조롱이라도 좋으니 당신이 자신을 찾아주길 기다리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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