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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평강 Apr 18. 2023

[바이블클래스]예수님은 날 위해 뭐라고 기도할까

중보자 예수의 기도 제목 취업? 돈? 배우자? 성공?

교회에서 설교 좀 들었다 하는 사람들이라면 이런 문장을 많이 들어봤을 것이다.

중보자 예수.

매일 듣던 말이라 새롭지도, 관심이 가지도 않았던 문장인데, 몇 주 전부터 이 문장이 귀에서 맴돌았다.

중보자 예수.

궁금해졌다. 예수님은 지금 날 위해 무엇을 기도하고 계실까? 나의 건강? 직업? 미래? 배우자? 사업적 성공?

예수님이 날 위해 뭐라고 기도하고 계신지 알면, 하나님이 원하시는 기도가 무엇인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기도를 시작했다.

"예수님, 당신은 날 위해 뭐라고 기도하십니까?"


평소 기도의 응답이 올 때와 비슷하게 마음에 어떤 감동이 있길 바랐다. 아니면 상황으로 깨닫게 하시길 기대했다. 하지만 내 기대와는 전혀 다른 전개가 펼쳐졌다. 누가복음 통독 중에 그 답을 알려주셨다.


누가복음 22장에는 예수님이 유다에게 배반당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때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베드로가 닭 울기 전 세 번 부인할 것'이라고 미리 예고하신다.


22:31 <베드로가 부인할 것을 말씀하심> “시몬아, 시몬아! 사탄이 너를 마치 밀 까부르듯 하는 것을 허락해 달라고 요청하였다.

22:32 그러나 나는 네가 믿음이 꺾이지 않도록 기도하였다. 네가 돌아온 후에 네 형제들을 굳게 하여라.”


"나는 네가 믿음이 꺾이지 않도록 기도하였다."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마태복음은 신약 젤 앞에 나와서.  요한복음은 문체나 스토리 구성이 아름다워서. 마가복음은 좀 짧아서. 읽을 이유가 있었는데 누가복음은 담백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어서 손이 안 가던 복음서였다.

그런데 이런 중요한 한 문장을 품고 있었다니..


예수님은 우리의 믿음이 꺾이지 않도록 기도하고 계신다니. 너무 의외였다. 예상도 못한 답변에 혼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우리의 눈앞에 중요한 것들은 당장의 취업이나 이직, 갚아야 하는 빚, 사이가 틀어진 친구 관계나 부부관계, 미래의 내 성공 같은 것인데, 예수님께서 고작 기도하시는 게 '믿음'?


하지만 이 말은 아주 어마무시한 말이었다. 중보자 예수를 묵상하며, 처음엔 중보자를 단순히 중보기도자의 줄임말 정도로 이해했다. 당장에 무식한 게 들통났다.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중보자에 해당하는 헬라어 '메시테스'는 중개인, 화해자란 뜻으로 두 당사자 사이에서 계약을 맺을 수 있도록 중개하는 역할을 하는 사람을 일컫는다고 한다. [크리스천 라이프 인용]


그러니까, 중보자란 단순히 기도하는 사람이 아니라, A와 B를 연결해 주는 일종의 다리다.

예수는 무엇을 연결하는 다리인가? 하나님과 우리이다. 예수님은 죄로 단절된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관계를 다시 이으신다. 다리는 오직 하나다. 예수. 우리는 이 다리 위로 걸어가야 하나님께로 간다. '믿음' 외에 다른 길은 없다.


팀켈러는 [당신을 위한 갈라디아서]라는 주석에서 율법과 믿음의 관계에 대해 말하며 단호하게 믿음을 변호한다. 팀켈러는 '예수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것은 진리 거나 혹은 거짓 둘 중 하나다. 그러므로 예수를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것에 무엇이라도 하나를 더하면 자체로 거짓이 된다'라고 설명한다.


이 말씀이 파격적인 이유는 대부분의 크리스천들이 구원을 받았지만 반복되는 죄로 인하여 낙망하는 자신을 괴로워하며 찾는 길이 '율법'이기 때문이다. 크리스천들이 감정적으로 죄책감을 떨쳐내지 못하는 (예수님께서 바라시는 바가 전혀 아님에도 불구하고.) 경우 율법으로 돌아간다. 그 돌아간 자가 나였다.


어쩐지 기도를 더하고, 헌금을 더하고, 하루 1시간은 꼬박꼬박 말씀을 읽고, 교회에서 2-3가지씩 봉사를 맡아하고, 사람을 미워하지 않을 수 있을 때에야 구원을 이룬 자가 될 것 같았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마음 한편에 이런 생각이 든다. '율법을 지키기가 힘들고 고단한걸 보니 나는 구원받은 자가 아니구나.' 구원에 대한 확신이 사라지고. 하나님을 만났던 순간의 기쁨은 소멸된다. 그럴 수밖에.


구원은 사람인 우리가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구원은 오직 하나님이 정하신 한 길,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을 믿음으로만 가능하다.

'믿음' 그게 전부다. 믿음 and 선한 일이 아니다. 실을 말하면 우리가 구원을 이루는 길이라고 오해해했던 모든 노력들이 구원에 1도 보탬이 되지 않는다.

'오직 믿음'이 전부다. 팀 켈러는 믿음의 진리 위에 무엇인가를 더한다면 자력구원을 이루고자 하는 타 종교와 다름이 없음이라고 못 박는다. 바울의 말도 다르지 않다. '오직 믿음'이란 진리에 무얼 더하여 가르친다면 '거짓 교사'가 된다.


바울도, 팀켈러도 왜 이토록 단호하게 '믿음'을 말하는가. 믿음이야 말로 모든 것을 해결하는 능력이기 때문이다. 죄책감? 그것도 믿음을 통해서만 해결된다. 반복되는 죄의 중단? 그것도 믿음으로만 가능하다. 믿음을 가졌다는 것, 그것은 우리가 땅과 하늘의 소유주! 가장 완전한 지혜자이자 권력자이자 권능자인 왕! 하나님을 가졌다는 말이다. 놀랍지 않은가? 

예수를 믿음으로 하나님과 연결되는 순간 우리는 즉시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 자녀의 특권은 무엇인가? 아버지의 것을 유업으로 받는다. 아버지의 성품도, 능력도 다 내 것이 된다.


'믿음'을 잃으면 우린 전부를 잃은 것과 다름없다.

그래서 오늘도 예수님은 하늘 보좌에서 우리의 믿음을 위해 기도하신다.


자신을 배신할 베드로에게. 이미 죄라는 다음 스텝이 예고된 베드로에게 "나는 네가 믿음이 꺾이지 않도록 기도하였다"라는 예수님의 말이 너무 따듯하다.


예수님은 베드로와의 일화를 통해 우리에게 이렇게 전하고 싶으셨던 것 같다.


"나의 딸아(아들아). 나는 너에게 내 전부를 주고 싶다. 그래서 나는 네가 믿음이 꺾이지 않기를 기도하였다."


그러니 담대하자!

예수를 믿는 우리는 이미 필요한 모든 것을 가졌다. 우리는 이미 하나님을 얻었다.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뭐라고 기도하시냐고? 전부를 위해 하신다.

다만, 그 전부를 얻을 수 있는 비밀을 놓치지 않기 위해 진력을 다해 하신다.


예수님의 말씀이 들린다.

"나는 네가 믿음이 꺾이지 않도록 (이미) 기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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