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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비 May 17. 2016

학원과 시험

학원과 시험

2016년 2월 22일 (월)


학원 아르바이트 면접을 보았다. 확실치는 않지만 왠지 그곳에서 알바하게 될 것 같다.





전날 술을 조금 마신지라 아침에 늦잠을 잤다. 눈이 일찍 떠졌지만 물한잔 마시고 다시 전기담요에 몸을 뉘었다. 그러던 순간 이력서를 냈던 학원에서 면접을 오라고 전화가 왔고 늦잠은 물건너 가게 되었다.


강남에 위치한 작은 전문직 자격증 시험을 위한 학원이였다. 5층짜리 건물 하나를 독차지했으니 작다고만은 할 수 없었다. 15분을 기달리게한 채용담당자는 상담이 길어졌다는 핑계를 대며 면접을 시작했다. 알바 면접이 다 그렇듯이 별 의미없는 잡담이 오갔고 필요한 이야기를 짧게 했다.  그래도 알바비 나오는 날이나 시급, 근무시간 등 요건이 잘 맞던지라 가급적 채용담당자와 라포를 형성하려 노력했다. 채용담당자도 무뚝뚝한 사람은 아닌지라 어렵지는 않았다.

다만 한 마디가 기억에 남는다.

'시험을 오래준비하다보니 사람들이 가끔 이상하게 굴곤 합니다'




아직 다른 나라에서 오래 살아본 경험이 없어서 단정짓긴 어렵지만

우리나라에는 시험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참 많다.


대학 입시부터 시작해서 토익,토스 등의 영어시험, 제2외국어시험, 직무적성검사시험 등등......

일자리를 혹은 학교진학을 원하는 사람은 많은데 그에 걸맞는 자리는 한정되있으니 인사담당자는 일일히 면접을 모두 볼수 없게 되었다. 그랬다간 1년 365일 야근해도 모자를 것이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을 골라내기위해 온갖 시험이 생겨났다.  SSAT니 하는 대기업에서 구직자들을 걸러내기 위한 시험. 사람들은 대기업에 들어가고자 사활을 걸고 문제풀이를 연습한다. 그러나 그들도, 인사담당자도 알 것이다. 시험을 잘 보는거랑 일잘하는건 별개의 문제라는 것을.



그러나 일할 사람을 뽑기위해 도입된 시험 제도는 상당히 오래된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지금 우리에겐 너무나 당연한 것처럼 보이나 혁신적인 인사제도로 자리매김해왔다.


근정전에 나아가서 생원시(生員試)의 합격자의 증서(證書)를 수여(授與)하였다. 임금이 좌우의 신하들에게 말하기를, "번번이 생원(生員)을 시취(試取)한 뒤에는 반드시 말하기를, ‘금년에는 제술(製述)을 잘하였으니 비록 한두 명의 합격자를 더 뽑더라도 부족할 것이 없다. ’고 하였는데, 금년은 어째서 이러한 말을 들을 수가 없는가. 경서(經書)를 강습(講習)하지 않고 오로지 제술(製述)만을 힘썼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닌가. 허조가 일찍이 말하기를, ‘생도들이 경서를 깊이 연구하지 않기 때문에 문장(文章)이 깊이가 없어서 수년 뒤에는 비록 교관(敎官)·훈도(訓導)의 직책이나마 능히 감당할 만한 자가 드물 것이니, 모름지기 강경 시험을 시행해야 한다. ’고 하였다.
 -세종실록 55권, 세종 14년 3월 13일 임신 2번째기사


요컨대, 생도들이 유교경전에 대한 이해(경서를 강습)보단 논술 실력(제술)을 기르는데 힘쓰다보니 글의 깊이가 앝다는 점을 짚으니 다음에는 이를 보완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교관이나 훈도의 직책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유교경전의 이해가 바탕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시험 자체는 업무수행능력 연관성 갖는다.



시험 제도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바와 같이 매우 공정하고 합리적이면서도 혁신적인 시스템이다. 이러한 시험제도가 없었던 시절엔 지금으로썬 상상도할수없는 인사제도가 일반적이였고 그 부작용은 치명적이였다. 예를들어 일반적으로 사회적 병폐가 심할때 나오는 현상인 매관 매직은 유럽에선 아예 공식적 시스템인 경우가 많았다. 가장 유명한 공식적 매관매직 제도는 근세 유럽의 군 특히 육군 전투병과의 임관 및 진급 제도로 임관 진급하기 위해서는 일정 근속 년수를 채운 뒤 돈으로 계급을 샀다. 원래는 정부의 지원 부족을 육군 장교들이 자기 돈으로 해결하던 게 공식적인 제도가 됐던 것. 특히 영국 육군의 사례가 유명한데, 얘네들은 크림전쟁 때까지도 이 시스템을 유지했기 때문이다. 발라클라바 전투로 대표되는 크림전쟁에서의 영국 육군 기병대의 삽질의 가장 큰 원인이 바로 이거다.

 이러한 이유에서인지 중국 조선의 과거 시험 제도는 서구의 정치 이론가들에게 대단히 강렬한 영감을 주었다.  당시 서구의 관료 채용 제도는 위와 같이 문벌이나 재력보다 능력이 중시되는 시스템이 아니었으며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대안이 요구되고 있었다. 당시 개혁적인 이론가들은 보편적으로 모든 사회 구성원들을 대상으로하여 그 능력을 시험하고 채용하는 과거 제도의 개념에 상당히 호의적인 관심을 드러내고 있다. 그리고 이 아이디어는 서구 국가들에 의해서 실행되었는데, 처음으로 영국은 Northcote-Trevelyan Report에 따라서 영국령 인도에서의 공무원 제도를 개혁하는데 착수하였다. (나무위키 '과거제도'일부 발췌)



그러나 제도가 아무리 완전무결하다고 할 지라도 뭐든지 지나치면 부작용이 있는 법이니


지금 국가에서는 시속의 글솜씨로 인재를 뽑고 있다.

 각종 이권과 녹봉이 이것에 달렸고, 성공과 명예가 이것으로부터 나온다.

 이 세상에 태어나 이 길이 아니면 더불어 할 일이 없다고 생각한다.

박제가, <과거 제도에 대하여>에서



과거제도는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걸쳐 보완을 거듭해와 공정성과 합리성을 적어도 제도적으로는 갖출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공직=출세 라는 공식이 만연한 사회에서 다른 대안을 찾지 못한 사람들은 심한경우 한평생 과거시험에만 매달리기도 했다.



그리고 이는 똑같이 우리 사회에서 재현되고 있다.

누구는 공무원이 되고자, 누구는 전문직 종사자가 되고자, 누구는 좋은 학교에 가고자 누구는 대기업에 입사하고자 시험에 매달린다.

하지만 시험을 통해 원하는 것을 성취하는 사람은 준비생의 규모에 비해 터무니없이 적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노력하면 될 것이라고 믿고 기꺼이 미래를 위해 현재를 바친다.


그래, 이것도 이 나름 의미가 있다고 하자. 열심히 해서 성공하면 장땡이니깐. 실패하면 될때까지 하면 되니깐.




그러나 생각해보자

뽑는 인원(T.O)는 적은 반면 응시자의 수는 날로 늘어만 간다. 누구는 단번에 합격하는 호사를 누리고 누구는 몇번을 해도 안돼는 불운을 겪는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걸까. 공부 방법과 습관이 잘못되어서인걸까.


나는 시험의 기능이 위에서 언급했던 본래의 의미와는 달리 사람들을 떨어뜨리려는 용도로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하고 싶다.

예를들어 사회복지사 1급 자격증 시험의 경우 합격률이 회차마다 천차 만별이다. 어떤 해는 50%에 육박하는 아주 쉬운 시험이 되고(컴활2급 필기의 합격률이 이정도..거의 기출문제 몇회만 풀어보고 봐도 붙는다는 소리) 어떤 해는 10%까지 떨어지기도 한다. 이러한 급격한 변동의 이유에는 사회복지사의 수요에 있다. 사회복지사자격을 수요에 무관하게 일정한 비율로 준다면 피고용인인 사회복지사의 처우는 급격히 나빠질 것이다. 인력 공급이 과잉하면 일자리 경쟁이 치열해질 것이고 그렇게 되면 사람들이 낮은 처우로도 일을 해야만하는 상황이 오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시험을 보지 말아야 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현실적으로 어쩔 수 없다. 나이는 먹어가는데 시험은 계속 떨어지면 정말 미쳐만 갈 것이다.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포기하고 다른 길을 찾아나서기도한다.


나는 결고 시험을 못 보았다고 절망하고 주눅들 필요는 없다라고 이 글을 결론맺고싶다.

앞서 기술했듯이 어디까지나 실무능력을 평가하기위한 것 혹은 단순히 시험을 덜 붙이기 위한 시험이므로 사람을 온전히 평가하는 잣대가 될 순 없다. 그러니 시험 잘 본 사람에게 위화감을 느낄 필요도 없다. 각자 다른 자기만의 길이 있으니 시험을 잘 보면 잘된 것이고 못보면 다른것을 잘하면 된다고 생각하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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