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극단주의로 치닫는 사람들
무슨 해이던 마찬가지이겠지만 작년과 올해에 걸쳐 유난히 우리사회에는 가슴아픈 일이 많았고 갈등또한 많았다. 경제는 날로 악화되면서 실업률이높아지고 그나마 경쟁 끝에 직장을 잡은 사람들은 저임금과 과로에 시달리게되었다. 그러다가 억울하게 죽어간이들도 있었다. 이에 어떤 이들은 이게 다 꽉 막힌 기성 세대의 탓이라며 비난한다. 기성 세대는 이에 노력 부족을 탓한다. 이른바 그 노력이 부족했던탓인지 경쟁에 뒤쳐진 사람들은 반사회적으로 변해가 범죄자로 전락하기에 이르렀다. 어떤 사람들은 이를 이성혐오에 의한 범죄라 여겨 이성을 비난해 성별갈등을 공론화하였다. 갈등이 꼬리를 물고 연이어 생겨난다.
캐스 선스타인의 극단주의 이론에에 의하면 갈등을 해결하는 데에 있어서 합리성은 그다지 역할을 하지 못한다고 한다. 보통 논리적으로 타당한 주장을하게되면 상대방은 이를 인정하고 한 발 물러서기 마련이라고 생각하나 실제로는 도리어 자기 생각을 더욱더 고집하게된다는 것이다. 그 이유에는 크게 두가지가 있는데, 첫째로 사람들은 사람들은 큰 문제일수록 기존에 갖고 있는 의견에 대한 애착과 선호는 고정되있으므로 아무리 논리적으로반박하는 증거가 나와도 무시하게 된다는 심리적 요인과, 둘째로 자신과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 서로의 의견을 지지하면서 듣고싶은 것만 듣게되어 기존의 믿음을 강화한다는 것이 있다.
다양한 형태의 토론회를 보면 이 같은 이론이 틀리지 않았음을 가히 깨닫게 된다. 보통 TV토론회라 하면 사회자의 중재아래 서로 다른 입장을 가진 양 측이 나와 토론을 하게 된다. 토론의 취지라 하면 양측의 입장 차이를 조율해 나가는 것이다. 그러나 대개 입장 차이만을 확인한 채 별다른 결론 없이 제한 시간이 다 되어 끝나게 된다. 온라인 상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사람들은 기사 혹은 SNS에 댓글을 달며 토론을한다. 상당수가 실명제임에도 온갖 쌍욕이 난무하니 서로 입장차이만 굳어진다. 사람들은 자신의 입장만을 고수하고자하는 심리적 요인 그리고 비슷한 생각에 동조하며 자신의 이견을 뒷받침하고자할 뿐이다. 결국 갈등은 결론없이 끝나고 다른 이슈에 의해 덮히기 마련이다. 서로 다른 견해를 지닌 사람들간의 관계는 어색해지고 남보다도 못한 사이가 되버린다.
어느새부턴가 갈등을 일으킬만한 민감한 주제가 너무 많아졌다. 대학생인 필자의 입장에서, 어느새부턴가 낯선 대학생끼리 만났을 때 피해야할 대화주제가 너무 많아졌음을 느낀다. 대학이 서열화된 탓에 학교이름을 물어보는 것은 실례가 되었다. 강남역살인사건 이후 온라인상 성별 갈등이 급부상해 이야기가 젠더 이슈로 흘러가지 안게끔 말조심을 해야한다. 특정커뮤니티에서 올라온 자료를 모르고 잘못 쓰면 이용자로 몰려 인간말종으로 낙인찍히게 된다. 아무리 잘설명해도 한번 실수하면 낙인이 찍혀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아도 이내 사이가 갈라지게 되었다.
인간관계가 가벼워졌다는 것을 느낀다.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공동체 문화가 발달하여 이른바 ‘함께 하는’ 문화가-흔히 정 문화로도 알려져있는-아직도 곳곳에 남아있다. 개인주의가 발달한 서구사회에서 찾아볼 수 없는 뭐든지 함께 하려는 문화는 존속할 가치가 있다. 인간은 본래 사회적 동물인지라 다른 사람과의 유대가 없으면 외로움을 느끼고 심해지면 우울해지기도 한다. '함께 하는' 문화는 이 같은 인간 본성에서 우러나온 것으로써 삭막한 개인주의에지친 외국인들이 한국에 정을 붙이고 눌러사는 이유가 바로 이런 ‘함께하는’ 문화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최근 우리사회에서는 점차 이 같은 정 문화가 각박한 현실 속에 점차 사라지고 ‘나홀로’ 문화가 발달하기 시작했다. ‘나홀로’ 문화는 말 그래로 기존에 누군가와 같이 하던 것, 예컨대 음주나 영화관람, 식사 등을 혼자하는 생활을 말한다. 누군가에게 방해받기 싫어하는 개인주의적 가치관이 청년층을 중심으로 확산된 탓이다. 한 설문조사에 의하면 이러한 나홀로 문화의 확산에 대해 긍정적으로 답한 비율이 86%에 달했다.
‘나홀로’문화는 어쩌면 자신의 삶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낭만적으로 보일수 있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나홀로 문화에는 어두운 단면이 존재한다. 나홀로 문화가 성장하는 데에는 우선 취업난과 질낮은 일자리, 높은 주거비 등으로인해 누군가와 무엇을 한다는 것 자체가 부담스러워졌다는 원인이 있다. 충격적이게도 서울시 복지재단의 조사에 의하면 서울에서만 2013년 한해 20-30대 고독사 사건이 328건이나 발생했다. 노인층은 병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20-30대의 고독사는 자살률과 일치한다. 혼자가 되는 것이 좋다고여기는 생각과 혼자하는 문화가 퍼지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또한 이를 뒷받침하는 전자기기의 발달로 의사소통과정보교류가 더욱 쉬워진 사회임에도, 과거보다 고독사의 사례가 더욱 늘어났다는 것은 아이러니한 일이다.
나는 한국의 깊어가는갈등과 이 같은 비극을 풀어나가기 위한 열쇠는 한국 사회가 가진 본연의 정 문화에 있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최근에 있었던 필리핀 아태청년교류프로그램에서의 경험은 필자가 이 같은 생각을 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이 프로그램의 목적은 국제개발협력 프로젝트를 고안해내는 것이였다. 특성상 동남아 학생들과 한국 학생들이팀을 이뤄 필리핀의 저개발지역에서 스마트폰도 안터지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 함께 고생했다. 그 과정에서견해 차이로 인한 갈등이 잦았다. 모두가 열심인 나머지 여러 의견이 난립했다. 뿐만아니라 프로젝트를 소홀히 하고 노는데 열중인 이른바 무임승차자들이 동남아 학생들 사이에서도 있어 이들에대한 비난도 나돌았다. 하지만 놀랍게도 그 동안의 구설수에도 불구하고 막상 프로그램이 끝나 헤어질 시간이되자 아쉬움에 울기까지 하는 학생들이 다수 나왔다. 뿐만 아니라 프로그램이 끝나고 몇몇 학생들이 필리핀친구들이 보고싶다며 수십만원의 항공료를 자비로 부담하여 필리핀 특유의 악천후를 뚫고 마닐라에 돌아가기도 했다. 사람들간의‘정’은 해묵은 갈등을 뛰어넘고도 한참 남는 인간의 보편적정서였던 것이다. 이 같은 모습을 보며 나는 우리 사회의 격해지는 갈등을 풀어나가는 방안 또한 이 같은 공동체의 ‘정’문화에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슈에 대한 의견은다를 수 있다. 모두가 각자의 가치관이 있고 이는 당연히 존중받아야한다. 하지만 한국 사회에서 어떤 방식으로든자기 삶을 개척해나간다는 점에서 알고보면 모두 다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보면 우리는남이 아니며 같은 공동체에 있는 친구이다. 더욱이 누구나 잘 몰랐던 사람이 한 두다리만 건너면 아는사이나 다름없어 세상은 생각보다 좁다는 것을 느낀 경험이 있을 것이다. 모두가 힘든 이 저성장 시대에서옳고 그림을 따지며 싸우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생각한다. 모두가 상생 협력하여 어떻게 삶을 지켜나갈수있을지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야할 시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