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비 Sep 15. 2019

첫 직장 두 달만에 퇴사하다

2달 수습 후 퇴사, 더 나은 삶을 위한 반성

 온실 속의 화초처럼 살아온 내게 사회의 문턱은 높았다. 학교는 인턴경험을 쌓게 도와주어 취업의 발판을 마련해 주었다. 그 덕에 졸업한지 두 달 만에 한 중소 무역상사에 연봉 3200만원이라는 비교적 괜찮은 여건으로 입사할 수 있었다. 그러나 나는 수습을 채 마치지 못하고 퇴사해야 했다. 주변에서는 이런저런 이유를 대며 위로해 주었지만 일하는 능력이 부족한 나에게 근본적인 원인이 있다고 해야할 것이다. 


 유명 대기업 출신인 팀장은 아랫 사람을 다룰 줄 알았다. 업무 적으로 질책해야 할 때에는 인신공격에 가까울 정도로 갈궈댔다. 그리고 나중에 사과하고 위로했다. 해외영업이 자기 적성에 잘 맞는 사람이었다. 자기 일을 사랑했고 책임감도 강해서 시간 외 근무를 마다하지 않았다. 내가 롤모델을 삼았던 드라마 슈츠에 나오는 하비스펙터와 비슷했다. 그리고 나는 하비스펙터를 보좌하는 마이크 로스로써의 역할을 하고 싶었다.


 그러나 나의 역량과 마음가짐은 턱없이 모자랐다. 이런 나를 단번에 알아본 팀장은 나보다 두 살 많은 입사동기에게 1순위 거래처를 맡기고 내겐 2순위 이하인 거래처들을 맡겼다. 내가 맡은 2순위 이하인 거래처들의 생산일정은 우선순위가 타 업체의 주문품목에 밀려 제때 이루어지지 않았다. 때문에 입사동기가 팀장과 소통하며 선적 업무를 알아갈 동안 나는 아무 일도 하지 못해 전전긍긍했다. 이후 팀장이 사무실에 합류하고 본격적인 업무를 맡게 되었다. 나는 선배와 팀장이 하는 말은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기 일수였고 내가 한 업무에는 실수가 많았다. 무역의 전반적인 흐름을 잡고있지 못한 탓이 컸다. 


  나는 Door order를 하여 컨테이너를 공장으로 가져와 적입하고 Shoring, Sealing 작업 등 선적준비 작업을 한 뒤 CY로 보내 선적준비를 마치고 선적일에 포워더로부터 Check B/L(=Draft B/L)을 받아 바이어로부터 확인받는 일련의 절차를 알지 못했다. 이 절차는 FM이라고 할 수 있는 이론 상 절차이고 실제로는 제조사 출하팀이 CFS로 생산된 제품을 보내면 CFS에서 차량을 수배하여 컨테이너를 싣고 와 적입작업을 한 뒤 CY로 보내고 있었다. (기억에 의존하여 확실하지는 않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관리하기 위해 나는 제조사 출고일에 맞춰 CFS측에 작업 가능여부를 확인하고 선적일정(서류마감 및 카고마감, 출항일)에 맞게 서류직원에게 P/I와 패킹리스트를 작성해 주어야 했다.


 나는 아무 일도 한번에 정확히 하는 일이 없었다. P/I에 있는 항목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 서류팀 측에서 원하는 패킹리스트 양식이 있었지만 그에 맞춰 주지 못했다. 서류팀 과장은 자신이 한 업무를 다섯번 다시 확인해본다고 했다. 나는 그러지 않았다. 동기가 부탁한 일마저 제대로 하지 못해 일을 복잡하게 만들었다. 아무도 내가한 업무를 믿지 못했다.


 담당자로써의 책임감이 부족했다. 팀장은 내가 맡아 진행하는 일에 대한 모든 내용이 머리에 있기를 바랬다. 어떤 부분이든 물어보면 바로바로 대답이 나오기를 원했다. 나는 그러지 못했다. 팀장은 이런 나를 애써 이해하며 알바생 처럼 일을 일일히 시켰다. 그러나 나는 말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해 시킨 일을 하지 못했다. 알아들어도 필요한 내용을 메모하고 이메일과 공유폴더에서 찾는 센스가 부족하여 제때 하지 못했다. 

 

면접에서 야근을 해서라도 3개월 내로 일을 마스터 하겠다고 했지만 막상 놀고 싶은 마음에 나는 칼퇴를 하기 바빴다. 다른 직원들은 책임감을 가지고 자기 일을 스스로 챙기는 반면 나는 그러한 책임감 없이 시킨 일만 하기 바빴다. 상사가 지적을 하면 고쳐야 하는데 나는 금새 잊고 같은 실수를 반복했다. 업무를 그저 과제처럼 생각하여 업무에 대한 파악을 제대로 하고 있지 않았다. 담당자로써의 역할을 하기 위해 나름 능동적으로 움직이고자 했다. 팀장이 사소한 것까지 하나하나 보고받기를 싫어하니 중요한 내용만 보고하려고 했다. 그러다가 모든 내용을 보고하지 않아 무척 혼이 났다. 전화통화로 이야기한 내용을 그대로 보고하면 되는 상황에서도 나는 듣자마자 까먹었다. 그대로 이야기 하지 못하고 이메일로 온 내용과 달라 혼이 났다. 


나는 잘하고 싶었다. 하지만 매번 반복되는 업무 진행 실패에 좌절했다. 무역 실무 흐름을 알지 못해 패킹리스트 작성을 늦게 하자 팀장과 이사가 CFS측에 컨테이너 픽업을 부탁하는 전화를 했다. 거의 빌고 조르는 수준이었다. CFS 담당자는 결국 해주었다. 서류팀 대리는 이런 나를 질책했다. 이 때 대리는 사장에게 날 쓰면 안된다고 얘기했다. 내게 일을 맡기면 안 된다고 했다. 나는 이사에게 그만 두겠다고 말하기 위해 면담을 신청했다. 하지만 이사는 이런 나를 피했다. 이후 이런 내가 2달 째가 되어도 나아지지 않자 대리는 업무가 적성에 맡냐고 넌지시 물어봤다. 그리고 팀장이 출장에 간 사이에도 내 업무가 나아지지 않자 팀장에게 내게 일을 맡기면 안된다고 얘기했다. 팀장은 돌아와서 내게 철강업무는 샘플링 작업만 시키고 케미컬과 부품 업무를 맡겼다. 담당을 시킨 것이 아니라 알바생처럼 일일히 시켰다. 매일같이 혼났다. 처음 10개 중 9개, 10개 다 틀렸다면 지금은 6~7개만 틀린다고 했다. 이것을 남은 수습 한 달 동안 3개 이하로 줄일 수 없다면 퇴사할 것을 생각해보라고 했다. 그 주말에 팀장한테 일 때문에 전화가 왔다. 팀장과 말이 맞지 않아 신규 업체에 보낸 메일 내용이 틀렸다. 말이 정말 안통한다고 했다. 나는 퇴사를 결심했다.


 부족한 부분을 채워 다시 시작하고 싶었다. 이미 업무 처리 능력의 전반적인 부족으로 철강 업무가 동기에게 넘어가고 케미컬은 업무 흐름조차 잡혀있지 않은 상황이었다. 엄청난 욕을 들어가며 버티고 버틴다면 언젠가 자리를 잡을 수 있겠지만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언젠가라는게 언젠지 모르는 상황에서 주변 사람들이 계속 힘들 것이라 생각했다. 이게 팀장이 우려한 부분이기도 했다. 따라서 나는 마음을 다잡고 심기일전하여 부족한 부분에 대한 공부와 연습을 한 뒤 다른 곳에서 다시 시작하기로 했다.


  사직서를 냈을 때 이사와 면담했다. 이사가 내게 3개월이면 일 다 마스터하지 않았냐고 반문했을 때 나는 사실 핑계밖에 댈 수 없었다. 나는 위선자로서의 덕목이 있는 듯 했다. 2개월간 수습으로 일하면서 나는 많은 것을 느끼고 배울 수 있었다. 어엿한 해외영업 담당자가 되기 위해서는 아래와 같은 개선이 필요하다는 점을 느꼈다. 이에 정리해보았다.


1. 자신감을 가지고 말하자.

 나는 회사에서도 일상에서도 자신감을 가지고 말하지 못하고 있다. 말에 힘이 없다. 나는 발음이 어눌한 편이다. 자신감없이 말할때 일부러 어눌하게 말하는 습관이 평소 말하는 습관이 되어 버렸다. 내 생각에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생각에 자신이 없는 이유는 그 생각이 정확한 내용이 아니기 때문이다. 알고 있는 내용에 자신이 없으면 말씀하신 부분은 확인 후 정확히 말씀드리겠다고 하자. 정확하지 않아도 되는 내용의 생각은 그대로 얘기하자. 잘못된 내용이면 고치면 된다. 자신감을 갖자. 


2. 마음을 편히 가지자.

 나는 항상 상대방의 생각에 대해 신경쓴다. 이걸 물어보면 이 사람이 날 우습게 생각하겠지, 혹은 싫어하겠지 등과 같은 고민이다. 속담에 열 길 물 속은 알아도 사람 속은 모른다고 했다. 다른 사람의 생각을 함부로 예단하지 말고 자기 업무에 충실하기 위해 노력하자. 신입은 모르는게 당연한 것이다. 맘 편히 갖고 물어보자.

 나는 항상 잘하고 싶다. 하지만 항상 잘할 수는 없는 법이다. 항상 보고 시 내가 업무 한 내용 혹은 생각 한 내용 그대로 이야기 하자.


3. 남의 말에 휘둘리지 말고 자기 중심을 잡고 나아가자.

 - 팀장은 내게 항상 빨리 할 것을 다그쳤고 나는 여기에 휘말려 허둥지둥 댔다. 그러다가 실수를 많이 했다. 신입사원이 단시간에 업무를 정확히 해내는 것은 어렵다. 단시간에 업무를 해내려다가 실수하면 다시해야한다. 그러면 시간이 더 걸린다. 때문에 시간이 더 걸리더라도 정확히 해내는 것에 심혈을 기울여야한다. 실수를 하면 업무 진행이 늦춰지고 동료와 선후배가 피해를 본다. 내 평판도 깎인다. 그러므로 상사가 빨리 하라고 다그치면 죄송하다고 하면서 지금 시간이 더 걸리는 만큼 정확히 해서 드리겠다고 하자.

- 해외영업 업무를 하다보면 본인이 결정권자일 때가 있다. 신입사원이라고 하더라도 직책이 있는 이상 스스로 결정을 내려야 할 때가 있다. 특정 사안에 대해 보고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특정 품목에 대한 생산량을 어느정도로 할지, 부킹 시 선적일을 몇 일로 해야할지 등 앞으로 스스로 결정해나가야 할 일이 많다. 다만 나는 습관적으로 숨기고 나만 알고 있으려고 한다. 이는 상사와 동료간 의사소통에 방해가 될 수 있다. 웬만한 사안은 일단 보고해보고 단순하고 반복적인 일인 경우 물어보고 내가 알아서 처리하도록 해야겠다.


4. 이해할 때 까지 물어보자

 어설프게 알면 사고로 이어진다. 내가 온전히 이해할 때 까지 설명을 요구하고 이해한 바를 다시 이야기 하면서 물어본 내용은 제대로 숙지하자.


5. 메모하는 습관을 들이자

 나는 기억력이 좋지 않다. 정신바짝차리고 경청해도 돌아서면 까먹는 경우도 있다. 반드시 최대한 듣는 대로 메모하자. 나는 결과만 생각하고 과정은 생략하는 습관이 있다. 결과를 만들어내는 과정 모두 적자.

 메모를 해도 다시보지않은 채 잊어버려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처음 메모했을 때에는 급하게 적느라 제대로 정리가 되어있지 않다. 최소한 날짜별로는 다시 보기좋게 정리해두자.

 오늘 업무한 내용도 최대한 자세히 카테고리화 하여 적어두고 내일 할 일을 정리 혹은 예측해보자.

작가의 이전글 에세이 : 지나간 삶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