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금자리가 어색해졌다

전혀 예상치 못한 변화

by 눈빛

지난 글에서도 말했듯 지난 6개월간 뉴질랜드에 워홀을 다녀왔다.

딱히 어떤 목표나 목적이 있어서 갔다기보다는 이왕 휴학한 김에 한 번쯤 해봐야겠다는 마음이었다.

지금 아니면 장기간 해외에서 살아볼 기회가 언제 또 올지, 오기는 할지 확신할 수 없었기 때문에 용기가 생겼던 것 같다.


혼자 낯선 땅에 떨어졌고, 부모님은 사람구경/세상구경을 하면서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넓혀오면 좋겠다고 말씀하셨다.

나름대로 생활 곳곳에서 우리나라와 이 나라의 문화적 차이, 사람들의 생각/말/행동의 차이, 도시 구조의 차이, 건축물의 차이 등등을 발견하면서 '이런 점이 다르구나' 생각을 하며 살기는 했다.

그러나 돌아오는 날까지 부모님이 말씀하시는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넓히는' 것이 무엇인지 감조차 잡지 못했다.


그런데 한국에 돌아오고 하루하루를 다시 이곳에 적응해 나가는 과정에서 나도 모르게 이상한 점들을 하나 둘 발견해 나가기 시작했다.

워홀을 떠나기 전부터 나는 부모님께 한국에서 정착하고 돈을 벌며 살아갈 거라고, 해외에서 정착할 생각은 없다고 말할 정도로 한국을 좋아했고 살기에 가장 편했고 나에게 가장 잘 맞는 최적의 환경이라고 생각했다.

여전히 그 생각은 변함이 없지만, 지난 6개월간 뉴질랜드의 생활/문화와 그곳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속도와 스타일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몸에 익숙해졌는지 한국을 떠나기 전에는 아무렇지 않게 여겼던 것들이('여긴다'라고 생각할 필요조차 못 느끼고 당연하게 함께 했던) 갑자기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새삼 사소한 것들, 사실은 변하지 않고 원래 그 상태였던 것들.. 예를 들어

1. 하늘을 가득 메운 미세먼지

2. 밖을 나가면 들리는 사람들의 사투리(해외 다녀오니까 더 심하게 느껴져서 초반에는 듣기에 어색했다)

3. 일시적으로 반짝 유행하여 길거리에 우후죽순 생겼다가 오래 못 가 임대딱지가 붙는 음식 가게들

4. 다 비슷비슷하고 획일적인 분위기의 인스타 감성 카페들, 그리고 거기에 목매는 일부 젊은이들과 산업

5. 마치 공장에서 찍어낸 듯, 누군가 공지를 해준 듯 똑같은 패션 아이템들을 장착하고 걸어 다니는 사람들

6. 도로 위를 미끄러지듯 질주하는 오토바이들

7. 몇 초를 못 기다리고 경적을 울리는 대부분의 자동차들

8. 모르는 사람에게는 먼저 말을 걸지 않는 대부분의 사람들(공동체라는 게 잘 안 느껴짐)

9. 등등


밖을 돌아다니면서 왠지 모를 어색함을 느끼면서 더 이상 내가 살아왔던 보금자리가 6개월 전만큼 아늑하고 편하게 느껴지지 않았다(그도 그럴 게 위에 나열한 모든 것들이 뉴질랜드에서는 완전히 반대다). 동시에 내가 살아왔던 이곳이 생각보다 작은 세상이었다는 사실을, 지금까지 나는 우물 안의 개구리였고 이래서 부모님 세대들이 가능하면 해외도 나가보고 다양한 경험을 해보라고 하시는 거라는 것을 깨달았다.


지금 생각나는 것들, 지금까지 느낀 한국의 어색함은 이것뿐이지만 앞으로 하루하루 지나면서 더 늘어날 수도 있다. 두 나라의 문화가 다른 것이기에 뭐가 더 좋은지 나눌 수는 없지만 다소 안타까운 부분들이 보일 뿐이다. 그러나 이곳에서 또 살아가다 보면 어느새 적응해서 언제 그랬냐는 듯 자연스럽게 살아가는 나를 발견하는 날이 올 것임이 분명하다.


워홀을 떠나기 전과 후에 변한 수많은 점들 중 한 가지는 '난 한국에서만 있을래. 굳이 해외 경험 해야 해?' 라는 생각이 조금은 약해졌다는 것이다. 다른 나라들을 다녀보면서 다양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과 그들이 만들어내는 그곳만의 문화와 시간을 체험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약간의 호기심이 생겼다.


거대하고 뚜렷한 이유도 없이 그저 해외에서 혼자 생활을 한 번쯤 해보고 싶다는 것 하나만으로 떠난 워홀이었지만, 떠나지 않았다면 평생 모른 채 살아갔을 것들에 대해 약간이나마 다른 시각으로 다시 바라볼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 것 같아 지난 6개월이 시간낭비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든다.


혹시라도 이 글을 읽는 분들 중에 모든 여건과 상황이 되는데 해외 경험을 망설이시는 분이 계신다면 지금 바로 비행기표를 끊으시라고 권해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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