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함이 다시 고개를 내밀기까지
작년 7월부터 올해 1월까지 약 6개월간 뉴질랜드에 워홀을 다녀왔다.
대부분의 워홀러들은 어학원과 홈스테이 생활을 통해 초기 정착 및 적응 단계를 거친 후 개인적으로 독립하여 일자리와 집을 구한다.
그러나 어학원 비용이 상당하기도 했고, 영어는 현지에서 생활하면서 직접 체득하면 되지 않나 싶은 생각에 어학원은 고려 대상에서 아예 배제시켰다. 정말 내 몸뚱이 하나만 데리고 뉴질랜드로 떠났다.
9일 정도 단기숙소에서 지내며 세금&은행 관련 업무를 처리하고 집을 알아보러 다녔고, 내 기준 괜찮은 집을 찾아 이사를 했다. 앞으로 살아갈 나만의 보금자리가 생겼다는 사실에, 그리고 해결해야 할 것들 중 하나를 해치웠다는 생각에 안도감이 들었다.
단기숙소에서 지낼 당시 완성해 놨던 CV와 Cover Letter을 집 주변 동네의 거의 모든 카페와 음식점에 직접 다니면서 돌리고 다녔다. 하지만 면접 보러 오라고 연락 온 곳은 라멘집 단 한 곳뿐이었고, 심지어 떨어졌다.
이후 온라인으로도 지원을 해보고, 매장에 전화도 하고, 문자도 보내면서 일을 구하기 위해 애를 썼다.
8월 중순에 일주일 정도 또 다른 라멘집에서 일을 했지만, 새로운 직원을 쓰기에는 가게 매출이 갈수록 떨어져서 나를 임시적으로 잘라야 한다며 그렇게 잠정 해고를 당했다. 9월에 연락을 줄 수도 있다고 했지만 결국 받지 못했다.
9월에 접어들면서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서 CV와 Cover Letter를 더 프린트하여 동네를 벗어나 근처에 있는 다른 지역들을 다니며 다시 서류를 돌리러 다녔다. 구직 범위를 넓힐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카페 두 군데에서 트라이얼을 연락이 왔고, 그중 한 군데에서 결국 구직을 성공하여 그곳에서 귀국하기 전까지 일을 했다.
7월부터 9월까지 약 2개월 정도는 매일 가족과 친척들, 그리고 한참을 잊은 채 지냈던 어릴 적 동창들이 꿈에 나왔다. 그들이 너무 보고 싶었고, 그리웠다. 가족들과 연락을 하다가 그들이 보낸 메신저 활자를 보며 괜히 눈시울이 붉어지며 울기도 했다. 숙면을 취한 적이 없고, 거의 매일 새벽에 눈을 떴다가 다시 자고를 반복했다. 우울감이 나를 지배해 갔고, 하루하루가 빨리 지나갔으면 하는 바람에 일부러 최대한 늦게 기상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다가 더 자려고 해도 피곤함이 느껴지지 않아 도저히 더 이상 졸리지 않는 정도까지 갔다.
그래도 일을 시작하고 배우고, 새로운 환경에 놓임에 따라 정신없는 하루하루를 보내다 보니 전보다 우울함을 느낄 시간이 줄었고 확실히 하루하루가 빨리 갔다. 그렇게 조금씩 생각이 건강함을 되찾아 갔지만 여전히 하늘 위에 날아가는 비행기를 볼 때면 '나도 데려가'라고 속으로 외치곤 했다.
뉴질랜드 생활을 어떻게든 버티다가(즐기며 '살다가'라기보다는 '버티다가'라는 표현이 맞는 것 같다) 귀국하는 날이 다가왔다. 그동안 그렇게 돌아가고 싶어 했던 한국인데, 막상 그날이 코앞으로 다가오니 기분이 싱숭생숭했다. 좋기도 했지만, 이 나라에 있는 동안의 나를 온전히 즐기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들었다. 공항에 도착하고, 인천공항행 비행기를 타서 이륙을 할 때까지도 '드디어 돌아간다 크흡ㅠㅠ'과 같은 감격스러움은 거의 없었고 오히려 국내여행할 때보다도 더 무덤덤했다.
인천공항에 도착해서 마중을 온 가족들을 봤을 때는 당연히 반가웠고 더 애틋했고, 함께 깊은 포옹을 했다. 타지에 있는 동안 가족들의 소중함을 확실히 깨달았고, 그들에게 했던 후회스러운 말과 행동들을 반성하며 앞으로 어떻게 하겠다고 마음먹었던 것이 있기에 그것을 반드시. 가능한. 오래오래. 지키겠다는 다짐을 했다.
그러나 한국에 돌아온 당일날의 그 '감동+감격스러움+반가움+애틋함'은 그 유효기간이 3일~5일 정도였고 서서히 자연스럽게 사라져 갔다. 결국 6개월 전의 우리로, 그 '익숙함'이 다시 우리에게 스며들어왔다. 잊고 지냈던 부모님의 잔소리 아닌 잔소리(나를 향한 사랑이라는 것은 알지만 듣기에 거북함은 여전했다)가 나를 익숙하게 폭폭 찔러왔다. 그래도 이 측면에 있어서 바뀐 점이 있다면 스스로 했던 다짐을 바탕으로 워홀 가기 전보다 좀 더 유하고 차분하고 성숙한 태도로 나의 기분과 감정 혹은 생각을 그들에게 표현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이전이었다면 언성이 높아질 수도 있고 표정이 더 일그러질 수도 있는 상황에서, 그렇지 않고 어떻게 하면 서로의 기분이 덜 상하고 굳이 언성을 높일 필요 없이 부드러운 대화가 이어질 수 있는지를 약간은 터득한 것 같다.
타지에 있는 시간 동안 점점 커져만 갔던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반가움이 지속된 시간은 그들과 재회한 후 고작 3일~5일 정도에 불과했지만, 그토록 짧기에 그 감정들이 더 소중하게 느껴지는 게 아닐까 싶다. 이제 내가, 우리가 해야 할 것은 그 감정들이 지나가고 난 뒤에 찾아온 익숙함을 우리 관계 속에서 나름대로 좀 더 아름답고 성숙한 형태로 조각해 나가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