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세상을 오래 살고 다양하고 많은 경험을 하며 상처 입고 아물고를 반복하더라도 완벽하게 매끈하고 둥근 구(球)는 되지 못한다.
어머니가 일을 마치고 집에 들어오셨다.
아버지는 평소와 같이 방에서 유튜브를 보고 계셨다. 집과 거래처를 왔다 갔다 하는 자영업을 하시는 아버지는 휴대폰이 조용할 때면 공부를 하시거나 정치, 경제 쪽 유튜브를 시청하시곤 하신다. 그런 모습을 어머니가 보실 때면, 남의 조회수나 올려주지 말고 다른 생산적인 일을 하라고 입이 닳도록 매번 말씀하신다. 어머니 마음도 이해가 된다. 본인은 밖에서 하루종일 일하다 왔는데 남편이 집에서 태평하게(어머니 눈에는 그렇게 보일 것이다) 컴퓨터나 보고 있으니 답답할 만도 하다. 그런데 요즘 들어 일이 줄어든 것은 아버지 탓이라기보다는 경기 상황이 안 좋아진 부분이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친 것이고, 사실 그것은 아버지의 취미 혹은 혼자 보내는 자유 시간이기도 하다. 매번 어머니의 한소리를 듣는 아버지도 스트레스를 받으셨을 것 같다.
오늘은 어머니가 평소 하시는 말씀 후, 추가로 약간 수위 높은 말을 하셨다.
"나는 돈이나 벌어오지, 당신은 유튜브나 보고 있을래?"
듣는 순간, 주방에서 양치를 하고 있던 나는 두 손, 두발이 제자리에 멈추었다. 내 귀를 의심했다.
'이건 아니지 않나'
곧바로 아버지의 멘탈이 염려되었고, 부디 어머니가 아차 싶으시길 바랐다. 시야밖에 있는 아버지의 방에서 언성 높은 목소리가 들리지 않기를 바라면서, 동시에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그곳이 오히려 위태롭게 느껴졌다.
내가 생각하기에 그 발언은 지금까지 뼈 빠지게 가정을 위해서 경제활동을 해 온 가장의 자존심을 한번에 무너뜨릴 수 있는 힘을 가진 말이었다. 내가 남편이었다면 겉으로 티는 안 내도 속으로는 자존심, 자존감의 벽에 금이 생겼을 것 같다.
양치를 마저 다 하고 거실로 나왔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이곳에서 저곳으로 움직이고 계셨다. 사실 그 짧은 사이에 두 분의 마음속이 그저 그런 날의 파도처럼 잔잔했는지, 흐린 날의 파도처럼 부서졌다 사그라들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내가 보기에는 두 분 다 크게 개의치 않아 하신 것 같아 내심 안심하고 그날 잠이 들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