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주변에 친한 사람들, 꽤 오래 알고 지냈다고 여겨지는 사람들 중 그들이 당신을 마음대로 판단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 적이 있는가.
오늘 사람1과 나의 소통의 오류로 어떤 일의 결과가 좋지 못했다. 그 사실을 사람2와 3이 함께 있는 곳에서 알게 되었고, 이 3명은 그 핵심적인 원인이 나인 것처럼 동시에 나를 질책했다. 물론 그들이 지적한 부분에 대해서 내 잘못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1이 놓쳤던 부분도 확실히 있었다. 2와3은 이것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 채 평소 나의 모습을 바탕으로 같은 맥락에서 나를 향해서만 나무랐다. 억울하기도 했지만 그들이 앞뒤 상황을 묻지도 않은 채 한 대상을 꾸짖고 있는 것을 보며 참 안타깝고 슬펐다.
'당사자도 본인 스스로에 대해 한평생 탐구하고 알아가다가 미처 다 알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나는데, 어떻게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을 다 안다는 듯 멋대로 판단할 수 있을까. 그런 사람이 되지는 말아야지'
이번 일을 통해 이런 생각을 처음으로 하게 되었다기보다는 지난 과거를 살아오며 여러 차례 겪었던 경험들이 거듭되며 형성된 하나의 가치관이며, 어른의 모습으로서의 이상향 중에 한 부분을 차지하게 된 것 같다. 간혹 가다가 나의 말과 행동에 대해 어렴풋이 혹은 거의 확신에 차서 '너 아까 이래서 이랬지?', '반응 보니까 별로구나?' 등과 같은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정말 순수하게 상대를 향한 관심으로 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일부는 관심+상대를 존중하지 않는 태도를 바탕으로 대하는 경우가 있다. 그 일부가 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이러한 사고방식에서 나오는 말투의 특징에 대해서 고민해 보았고 알아내었다.
위에서 든 두 가지 예시에서도 알 수 있듯이 문장의 형식은 의문문이나 사실은 궁금해서 하는 '질문'이 아니다. 본인 스스로 어느 정도 답을 내놓고 그것을 확인하는 차원에서 문장 끝에 물음표만 빌려 쓴 형태이다. 이 부분을 상대를 향한 순수한 '질문'으로 바꾸어보자면 '너 아까 혹시 이랬어?', '어때? 괜찮아?' 정도가 될 것 같다. 물론 내가 정답은 아니지만 최소한 이렇게 물어보면 최대한 나의 판단을 배제시키고 온전히 상대를 향한 진실된 물음표에 가까워지는 것 같다.
사람과 사람이 소통하는 데에는 너무 높지 않은 돌담이 있다고 생각하려고 한다. 아침에 만나면 인사하고 특별한 날에는 만나서 같이 파티도 하는 가까운 이웃 사이라고 해도 집 앞에는 문이, 집과 집 사이에는 담이 있듯이, 그리고 설령 그 문이 잠겨있지 않다 해도 함부로 열거나 담을 넘어가지는 않듯이 존중과 배려, 예의를 사이에 두고 살아가고 싶다. 특히 이와 같은 자세로 먼저 다가오는 이들에게는 더욱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