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함과 친절함

진심에서 나오는

by 눈빛

오늘 꼭두새벽부터 일어나 태권도 사범 실기시험을 보러 다녀왔다. 평가항목에 미트발차기가 있어서 수험번호 순서대로 앞뒤 두 명씩 짝을 이루어 시험을 치렀다. 미트를 잡아줄 때는 지도능력을 보는 것이기에 템포조절/격려와 지도의 말 등도 허용되었고, 미트를 찰 때는 잡아주는 위치나 타이밍에 맞게 적절히 찰 수 있는 능력을 보는 것이다. 대부분의 응시자들이 그날 처음 본 사람과 호흡을 맞출 수밖에 없는 시스템인데, 나 또한 처.음. 뵙는 분과 연습이 아닌 실.전.에서 서로에게 파트너 역할을 수행하게 되었다.


2층 대기석에서 대기하는 동안 미트는 어느 정도 높이까지 들어주셨으면 한다와 같이 구두로 약속을 하고(관계자분이 대기석에서는 운동을 자제해 달라고 말씀하셔서 이렇게 대화로 맞추는 게 최선이었다.) 대학교 시범단 했었는지, 이번에 연습 많이 했는지 등 스몰토크를 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이제 우리가 1층 코트로 내려가 대기의자에 앉아있어야 할 차례가 되었다.

기본동작, 기본발차기, 품새 2가지(6장, 금강이 추첨되었다.)를 하고 마지막 미트발차기만 남겨두고 있었다. 파트너가 나보다 앞 번호라 먼저 미트를 잡아주고, 다음에 내가 잡아주는 차례가 왔다. 총 7가지의 발차기 조합을 각각 왼발 먼저, 오른발 먼저하는 순으로 해서 총 14번을 선보여야 했는데 5번째 조합에서 파트너가 한 번 타이밍을 놓쳤는지 첫 시작을 못했다. 그 순간 나도 모르게 "뒤로 빠졌다가"라고 말이 나왔고 상대도 "오케이"라고 하며 다시 차서 무사히 넘어갔다. 6번째 조합에서는 왼발과 오른발 순서를 바꿔서 차길래 잡아주는 나도 갑작스러워 제대로 못 해줬다. 그 후 반대 발로 시작할 차례에 "빠른 발하고 같은 발로 다시"라고 말을 해줬고 상대도 이미 기억이 났는지 "오케이"라고 하며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고 입 안이 바싹 마를 만큼 생각보다 힘이 들었다. 대기석으로 올라가 서로 수고했다고 말하며 헤어졌다. 호흡이 좀 가라앉자 내가 나도 모르게 뱉은 말과 그 행동이 나온 이유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가장 먼저 떠오른 단어는 '다정함'. 이어서 '친절함'이 한 세트인 것처럼 연달아 생각이 났다. 이 두 단어의 차이에 대해 알아보기 전에 '그 행동이 나온 이유'에 대해 깊게 생각해보았다.


나도 코트 위에서 실수를 여럿 했다. 내 코가 석자인데 상대를 걱정(?)하는 마음이 왜 들었을까. 걱정이라기보다 그 당시에는 상대가 더 잘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기저에 깔린 채 그저 도움을 주고 싶었던 것 같다. 내가 잘했냐 못했냐의 문제와는 독립적으로 상대를 위한 마음, 그 순간에는 그것뿐이었던 것 같다. 같이 잘 되면 좋으니까. 혹은 나는 어렵더라도 상대는 합격하길 바라니까.


사실 예전부터 평소에도 태도적인 면에서 다른 사람을 위하는 마음이 자연스럽게 들었고 그런 내 모습이 좋았다. 다른 이들에게 좋은 사람으로 보이기 위해서도, 특정한 대가를 바라고 하는 행동도 아니었다. 그저 심성 자체가 그러한 사람들 중 한 명이었다.

그런데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가면서 내 의도와 상관없이 오해가 생기는 일들이 발생했고, 어쩌다 한 번씩이지만 그런 일들을 겪으면서 어느 순간 그런 심성이 반감되었던 것 같다. 가슴 정중앙이 알루미늄이 된 것처럼 느껴졌다. 회색빛을 띠고 손을 가까이 대면 서늘한 감촉이 드는 개조인간이라고 할까. 감성적인 기능을 담당하는 조직 중 일부가 떨어져 나간 것 같았다. 물론 그렇다고 매사에 ' 내 알 바야?' 자세로 살았다는 말은 아니다, 그저 심성으로부터 나오는 순수한 마음을 주는 것이 일종의 '감정낭비'라는 회의적인 인식이 나도 모르게 머릿속에 장착되었던 것 같고 그렇게 조금씩 다른 이들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는 회색인간으로 살아가는 게 편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데 오늘 내가 했던 행동으로 인해 약간의 변화가 생겼다. 차가웠던 가슴에 핫팩 한 개가 올려진 느낌이다. 다른 사람을 위하는 마음이, 다른 이가 잘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그리고 그것이 어느 하나의 찝찝한 필터도 거치지 않은 채 진심에서 곧장 나오는 것을 안 좋게 생각하거나 조심스럽게 여기거나 아낄 필요가 없지 않을까 하는 어렴풋한 결론이 지어졌다. 계속 되새기면 되새길수록 그 결론은 그 상태 그대로 뚜렷해졌다.



그렇다면 이런 마음은 무엇이라 정의할 수 있을까. 어떤 단어로 표현할 수 있을까를 고민해보았다. 앞에서 언급했듯 '다정함'과 '친절함'이라는 단어가 그것이다. 일반적으로 사람의 성품이나 성격에 대해 말할 때 '다정하다'라고 하고, 서비스직의 한 사람의 태도에 대해 말할 때 '친절하다'라고 하는 경향이 있다. 심리적인 거리가 좀 더 느껴지는 상대에게 후자를 주로 쓰곤 하는 것 같다.

두 단어의 사전적 정의를 보면 아래와 같이 나온다.


'다정하다'- 정이 많다. 또는 정분이 두텁다.

('정'-사랑이나 친근감을 느끼는 마음, '정분'-사귀어서 정이 든 정도. 또는 사귀어서 든 정.)


'친절하다'- 대하는 태도가 매우 정겹고 고분고분하다.

('고분고분하다'-말이나 행동이 공손하고 부드럽다.)


두 정의를 비교해보면 '다정'이라는 것은 어느 정도 가까워지거나 그 사람에 대해 꽤 알고 있는 사이일 때 좀 더 적합한 표현인 것 같고, 오늘과 같이 처음 본 사람이나 잘 모르는 상대에게 보인 나의 태도는 아직은 표면적으로 다정하기 때문에 '친절'에 가깝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일상에서는 굳이 이렇게까지 제약을 두고 단어를 사용하지는 않지만, 초면이고 어색한 이에게 다정하다고 하는 것은 개념적인 차원에서는 약간 모순으로 보이기도 한다(※개인적인 견해).


사람으로 태어난 이상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가야 하는 숙명이기에 다른 이들에게 '친절'하게 다가가고 더 나아가 '다정'하게 느껴지는 사람이 되는 것은 당연히 좋은 것이다. 그러나 사람은 개인마다 성격에 개성이 있기에 모두가 이래야 된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러한 몇몇 사람이 특별하게 여겨지기보다 가능하면 서로가 서로에게 그러한 존재가 되고, 부디 따뜻한 시선과 태도로 먼저 다가가고 다가오는 것이 혹여 의심과 경계의 대상이 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24.02.17-0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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