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기억이 남기 시작했던 나이부터 지금까지의 시간을 처음, 중간, 끝으로 나눈다면 중간까지의 나라는 사람은 내게 주어지는 거의 대부분의 일들과 그 결과에 대해 좋은 평가만을 받아왔던 것 같다.
중학생 때까지 태권도 품새 선수로 운동하면서 그 당시에는 꽤 실력이 좋아서 인정도 받았고,
초등학교와 중학교에서도 반장이나 부반장을 종종 했었으며 성실히 학교생활을 했다.
중학교 생활 막바지 즈음에는 3년간의 최종 성적을 받아보고는 전교 10등이라는 숫자에 놀라기도, 한편으로는 스스로가 뿌듯하기도 했다.
그렇게 고등학교를 갔다. 줄곧 살던 동네에서 벗어나 내 출신 중학교에서는 나 혼자 이곳에 입학을 했는데,
3년간 공부를 하면서 아마 이때 처음으로 '잘하지 못함'이라는 느낌이 나에게 닿았던 것 같다.
어떤 한 집단에서 1등을 해왔던, 혹은 감사하게도 항상 인정받아왔던 사람들 중 한 명으로서,
아무리 열심히 해도 내 앞에 있는 실력자들을 넘어서지 못한다는 사실이 생각보다 힘들었다.
물론 공부는 그들 자체를 바라보고 하는 것이 아니었다. 성적은 석차, 즉 숫자로서 나를 나타내기 때문에 1등급, 2등급의 커트라인에 들기 위한 그 숫자들과의 싸움이었던 것 같다.
그렇기에 결국 그들이 부럽기도, 동경하기도 하면서 그만큼 그들의 재능과 노력에 대해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고등학교를 어찌어찌 졸업을 하고, 더 큰 세상에 나왔다. 대학교 수업부터 아르바이트까지 처음 해보는 일 투성이었다.
이 세상에 나와보니 그 어릴 적의 나는, 칭찬받고 1등을 해왔던 내가 있던 곳은 너무나 작고 약한 세계에 불과했음을 다시 한번 뼈저리게 느꼈다.
동시에 그동안 내가 쌓아왔던 나 스스로에 대한 인식에 일부 확대해석된 착각이 있었다는 사실이 상당히 아파왔다.
조금씩 내가 잘하지 못하는 일들이 발견될 때마다 나의 몸이 한 군데 한 군데씩 물어뜯겨 육체와 영혼이 조금씩 작아지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러나 알고 있다.
나는 이런 세상에 적응해야 하고, 처음부터 안 그런 사람은 없다는 것을.
내가 잘못된 것이 아니고, 서툰 것은 잘할 때까지 열심히 하면 된다는 것을.
다만, 혹시 나처럼 어려서부터 어떤 것을 잘하고 인정받고 잘한다는 말을 자주 들으며 자란 아이들이 나중에 시간이 흐른 후 새로운 세상에 놓였을 때, 그 충격이 조금 크게 느껴지거나 적응하기까지의 시간이 좀 더 오래 걸리는 경향이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높은 자존감으로 잘 헤쳐나가는 아이들도 많겠지만 말이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어떤 과거를 살아온 사람이든 누구나 공평하게 똑같은 세상(말 그대로 같은 지구. 같은 나라. 같은 땅)에 놓이기에,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자신이 갖고 있는 능력으로 나름대로 살아가면 된다는 것이다.
지금 나도 그렇고 당연히 주변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보고 싶지 않아도 보게 되고, 동시에 나의 처지를 비교할 수밖에 없게 된다. (예외로,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에 확신이 있는 사람이라면 앞만 보고 직진하면 된다.)
어느 정도 자리를 잡지 못한 사람이라면 조바심이 날 수도 있다. 괜찮다.
그 조바심이 잘못된 것이 아니다. 급하다면 나의 템포 안에서 그만큼 더 열심히 발을 굴려 자신의 능력을 키우면 된다.
다만 주의할 것은, 나만의 템포를 벗어나 달리다 보면 나를 발전시키는커녕 다른 이들을 흉내내기에 지나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어려운 일이지만, 안정적인 궤도에 오르기 전까지는 다른 이들과 나의 삶의 속도 간의 적절한 균형을 항상 인식하고 의식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물론, 어느 정도여야 안정적이라고 할 수 있느냐 하는 만족도의 기준은 개인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그러한 세상 속에서 내가 만족하고 보람을 느끼는 삶을 찾기 위해 지금도 살아가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