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아침에 잠에서 깨어났는데 코 안 쪽이 너무 건조했다. 목은 부었고, 몸에는 힘이 없었다. 실내공기가 건조할 때 종종 나타나는 일종의 감기 증상이다. 한두 번 있던 일도 아니라 따뜻한 물을 마시고, 옷도 일부러 따뜻하게 입고 집에 있었다.
몸에서 열정, 의지라는 결정체가 원래부터 내 안에 없었던 것처럼 정말 하룻밤 사이에 그것이 하나도 느껴지지 않는 상태가 되었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오늘이 되었다.
어제보다 좀 더 증상은 심해졌다. 밥 먹고 30분 있다가 타이레놀을 먹으려고 뜯어놓았는데 자꾸 쉴 새 없이 음식을 입에 넣는 바람에 밤이 된 지금까지 타이레놀은 뜯긴 상태 그대로 식탁 위에 놓여있다.
아플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사람이 육체에 힘이 없으면 정신에도 그 파동이 전이가 되나 보다. 해가 지평선과 조금씩 가까워지면서 내 기분도 서서히 우울해져 갔다.
그러다가 뭐라도 해야겠다 싶어서 오늘은 거의 2년 만에 토익 청해를 하나 풀었는데 아직 감은 살아있다는 것을 알고 조금 기분이 좋아졌으나 이내 다시 우울모드로 돌아갔다.
자기 전에는 책을 읽어볼까 싶어서 예전에 한창 심리에 관심이 있었을 때 사놓고 제대로 읽어본 적은 없는 책을 골라서 목차를 펼쳤다.
1번부터 차례대로 훑다가 '어떻게 행복해질 수 있을까'라는 마지막 13번째 목차에서 눈길이 멈췄다.
알려주는 대로 318 쪽 페이지를 펼쳤다. 눈동자가 첫 한 문장도 채 따라가기 전에 나는 한 가지 생각에 잠겼다.
이렇게 우울해하는 순간에, 세상이 2차원으로 보이고 색깔들이 살아 움직이지 않는 세계 속에 있는 듯한 이 순간에서도 나는 왜 '행복하게 사는 것'에 대해 관심이 갔던 것일까.
행복이 대체 뭐길래. 왜 '사람'이란 '행복'해지지 못해서 안달일까. 어떤 유명한 학자, 내로라하는 강연자들이 다양한 관점을 통해 행복이라고 주장하며 TV에 나와서 말하는 것을 듣고 있으면 그때는 그 견해가 납득이 가서 고개를 끄덕거리고는 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잊어버리고 하루하루에 치여 살다가 어느 날 밤 또다시 자신만의 '행복'을 고민하고 다시 출발점으로 돌아와 그것을 좇기 시작하는 나를 발견한다. '정말 잘 살고 있는 건가', '이게 내가 원하는 삶인가', '내가 원하는 삶은 뭐지?'와 같이 전혀 해결되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질문을 다시금 하게 된다.
그런데 우리는, 예전에 행복에 대해서 고민해 본 적이 있고 불명확하지만 나름대로 설정한 방향으로 나아가고자 노력했던 사람은 그 오랜 시간 동안 제자리에 있었던 것이 결코 아니다.
자신의 주위를 돌아보면 처음에는 커다란 변화로 느껴졌던 것들이 어느새 당연하고 익숙한 것들이 되어있을 것이다.
318쪽의 첫 문장은 이것이었다.
"모든 나쁜 일은 우리가 그것이 나쁘다고 생각하는 경우에만 진짜 나쁜 일이 된다".
당신은 스스로가 지난 세월 동안 변한 점이 하나도 없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잠깐 시간을 내어 본인이 갖고 있는, 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해 생각해 보라. 분명 과거의 나보다 조금은 나아진 자신을 발견할 것이고, 못 이룬 부분보다 자신이 이룬 그 '조금'의 의미에 집중하여 당신만의 삶의 속도대로 찬찬히 살아가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