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서비의 그림 에세이
"눈서바, 퇴근 후에 예전 집으로 가지 말고
새 집으로 잘 찾아와"
이사 직후 내 방엔 블라인드도 창살도 없는
창문이 있고 그 옆엔 없던 침대가 생겼다.
저녁엔 골목 가로등 불빛이 은은하게 방까지
비쳐 조명이 필요 없었다.
드러눕는 행복이 주말까지 이어져
가만히 침대를 누리고 있었는데 문자가 왔다.
직장 동료 솟짜가 지금 한강에 있는데
나오지 않겠냐는 물음이었다.
차를 타고 30분이면 갈 수 있는 거리였지만
왜 그랬을까 3시간 정도 걸릴 수 있다고
마음의 준비를 포함한 소요 시간을 말해버렸다.
그 친구는 아랑곳 않고 그림을 그리며
기다리겠다고 했다. 그게 가능한 일인가
놀라면서도 30분이 3시간으로 늦춰져 생긴
여유만큼이나 편한 마음으로 나가
한강에서 같이 감자칩과 뭔가를 먹었다.
기다림을 자기 시간으로 채울 수 있고
그것이 자연스러운 사람이라 궁금했다.
솟짜가 스쳐 지나간 친구들과 달랐던 점은
일종의 골디락스 친구였기 때문이 아닐까
보통의 친구 관계에서처럼 맞춰주려는
상대의 편안을 바라는 마음의 정도가
어떠한 노력 없이도 적당하다고 느껴졌다.
비슷한 면도 다른 면도 알아갈수록 많았다.
모든 것에 우선 마음을 닫아두는 나와는 달리
모든 생명들에 활짝 열려있었다.
길을 지나다가도 언뜻 술에 취해 길가에
누워있는 듯한 사람을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무심히 지나쳐왔으나 옆에 같이 있을 때면
아저씨가 멀쩡한지 확인하고 갈 길을 가야 했다.
다만 흔들어 깨우려는 친구를 말리고
나는 아저씨 귀에 대고 열심히 소리를 쳐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