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서비의 그림 에세이
01.
“눈서바, 사람들이 밥 먹고 커피 마시자 그러면
같이 마시고 그래, 안 먹는다고 하지 말고.
알겠지?”
첫 직장을 다니게 될 무렵
출근 전 엄마에게 들었던 말이다.
커피 맛도 잘 모르고 가까운 친구하나 없는
이불 알맹이 같은 딸의 사회생활이 걱정됐나 보다.
처음 다니게 된 회사는 유아동 수입 원서를 파는
쇼핑몰이었다. 두 차례의 면접을 보고 운 좋게
신입 막내 웹 디자이너로 입사했다.
건물 2층 입구는 책들이 나열되어 있고 안쪽에는
사무 공간이 있었는데, 서로의 업무 공간이 제법
가까웠다. 지하 1층에는 물류 창고가 있었는데
1층과 연결된 컨베이어 벨트로 책이 가득한
박스가 들어왔다.
형광등 밑에는 먼지가 폴폴 날리고
햇빛이 닿지 않는 물류의 공간에 들어섰을 때
왠지 일반 사무실보다 긴장됐고
거친 사람들이 있을까 하고 겁을 먹었다.
그런 마음이 무색하게 나는 그곳에서
처음으로 아름다운 중년 남성을 보았다.
눈이 맑고 유쾌한 물류 팀장님은 지하 창고를
성실한 땀으로 일구는 책 밭처럼
먼지와 박스보다 책이 더 잘 보이는 곳으로
느껴지게 했다.
02.
회사에서 막내라는 사실은
가족 내에서 막둥이인 것과는 다르다.
유선 전화 앞에서의 비슷한 역할이 있다면
전화 당겨 받기가 있고 달라진 점은
엄마가 있는지 묻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기 싫은 설거지도 하다 보면 별것 아닌
일상처럼 느껴지듯이 전화도 익숙해지고
심지어 어느 날은 대충 받게 된다.
"어제 코엑스에서 b급 도서로 샀는데 소리가 안
들려요."
"네 고객님 그럼 저희 쪽에서 확인 절차가 있어서
혹시 사진을 찍어서 보내주실 수 있으실까요?"
늘 하던 멘트를 날리고 통화 속에서 바보가 된다.
"네? 소리가 안 들린다니까요?"
그 순간 잠시 통화 속에서만 바보가 될지,
사무실로 확장된 바보가 될지
내 멘트를 생각해 보다가
배터리 교체 유무에 대해 화제를 돌려
황급히 해결한다.
그러던 내게 전화에 대한 태도가 바뀐 계기는
옆자리 차장님의 지적 사항 때문이었다.
전화받으며 '그거'라는 지칭어로 뭉뚱그리면
안 되고 '문의하신 ㅇㅇ 내용은~' 식으로
의사소통을 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그것은 납득이 되는 지침이자 프로페셔널한
멋이 있었다. 당신의 말을 내가 이만큼 잘 들었고,
자 지금부터 리슨! 프리스타일 랩의 시작 같았다.
03.
커피를 안 마셨던 나도 출근길에 있는 편의점
직영점에 들러 거품이 살아있는 아메리카노를
즐겨 마시고 점심을 먹고는 동료들과 모여
카페나 놀이터에서 지쳐 널브러진 채
스몰토크를 하게 됐다.
새로운 사람이 오면 생기는 환영 회식 자리에서
아 맥주 거품이 넘치지 않으려면 잔을 기울여야
하는구나 깨닫기도 하고 내가 장난칠 때 눈이
반짝인다는 말을 듣고 깜짝 놀라기도 했다.
누군가를 뒷담화하는 것에 참여하지 않았다가
빌런은 욕해도 된다는 가치관이 생기기도 하고
일을 잘 쳐내고 해내면 월급은 똑같은 채로
새로운 일만 더 늘어난다는 오래된 경험담을
듣기도 했다.
혼자서 애를 써보고 싶을 때
마음이란 것이 진짜 내 몸 안에 있는 것처럼
내려 앉히고 집중하면 더 낫고
누군가 끙끙 앓을 때 함께 야근하려는 사수가
있어서 다행이라고도 느꼈다.
긴장감이 높고 불안을 잘 느끼지만
나와는 상반된 성격을 가진 도서 행사를
자주 겪으니 풀어지기도 하고
수많은 인파 속에서 주목 경제를 실현시키는
커다란 목소리에 대한 동경을 갖게 되었다.
일로 만난 사이에 조금 더 사심이 담긴 친절함을
주었으나 그저 친절한 사람이 되기도 했고
과묵하기 짝이 없는 내가 마음 하나로 느린 말을
주워 모아 편지로 작별 인사를 하기도 했다.
직장을 다닐 때 중요하게 보는 것이 있냐던
첫 면접에서의 질문에 어떤 기대감 없이
사람이라 답했으나 제일 예상치 못한 깨달음은
회사에서도 친구를 사귈 수 있구나 하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