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를 자책하는 시간을 훔치고 싶어 하는 이상한 사람도 한 명쯤 세상에 있다.
사실 나는 쉬었음 청년을 좋아한다. 내 소싯적 역시 쉬었음의 해가 꽤나 길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온라인에서 이따금 마주치는 그들의 막막함과 아득함이 느껴지는 글을 읽을때면 위로를 건네고 싶다가도, 섣부른 오지랖 같아 물러서 마음으로만 응원을 보내기도 했다.
그때는 봄이 그렇게 싫었다. 우주 만물이 소생하며 다 같이 파이팅을 넘치는, 봄 특유의 찬란한 따사로움이 너무나 부담스러웠다. 매해 봄이 돌아올 때 쯤이면 늘 알 수 없는 우울감에 시달렸다. 생각해 보면 그때의 정서적 허기짐으로 헤치우듯 소비했던 영화나 드라마, 책과 음악들은 지금의 소중한 자산이 되었다.
가끔 사회에서 만나는 사람들 중, 조금의 공백도 없이 소위 밀도 있게 삶을 일궈온 성공한 사람들을 만난다. 언젠가는 그들이 너무 부러워 흉내도 내보고, 나도 그들처럼 살아보려고 뭔 7분 단위로 하루를 계획한다든지…? (ㅋㅋ 떼잉(?)) 각종 이상한 시도를 해 봤지만, 사람의 눈코입이 다 제각각이듯, 그런 삶은 전혀 나의 것으로 소화시키지 못했다. 음식을 잘 못 먹기라도 하듯, 오히려 그런 하루는 탈만 났던 것 같다. 꼭 당장이 아니더라도, 몇 년이 지나서라도 몸이 아팠다.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위에 첫 문장에 이야기했듯,
나는 쉬었음을 지나온 혹은 겪고 있는 사람이 좋다.
내가 만나본 그들은 대개 섬세하고 여린 감수성을 지녔다. 본인과 타인의 복합적인 감정의 깊이를 이해하고, 공백의 시간동안 무언가를 천천히 읽어가는 지긋함을 배운다. “혹시 오래 쉬셨어요?” 라고 굳이 묻지 않아도 느껴지는 것, 그 시절을 지나온 사람에게서만 배어 나오는 무언가를 더 오래 버티고, 견뎌낼 수 있는 특유의 맷집 같은 것들 말이다.
요즘도 가끔 나는 어떤 통찰이 필요할 때면 백수로 지내는 친구에게 자문을 구하곤 한다. 정신없이 흘러가는 세상에, 멈춰 있는 시간 속에 살고 있는 이들에게만 허락되는 풍경이 필요할 때가 있기 때문이다.(이상하게 생활력이 생기면 그때 특유의 감수성이 사라지는 것 같다.) 왜 같은 영상도 0.5배속으로 보면 지나쳤던 장면이 보이고, 2배속으로 보면 쓱 하고 대충 훑고만 지나치듯, 느리면 더 자세히 그리고 깊이 보인다.
세상이 쉬었음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이들을 그저 한심하게만 바라보는 건 아니라는 말을 꼭 해주고 싶었다. 스스로를 자책하는 시간을 훔치고 싶어 하는 이상한 사람도 한 명쯤 세상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