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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누누 Oct 11. 2020

산티아고 순례길에 다녀오니

속도내지 마세요, 질투하지 마세요





 모든 일에 시작과 끝이 정해져 있다면 좋겠습니다. 살면서 대부분의 일은 그렇지 않잖아요. 일도, 사랑도, 관계도... 과연 내가 제대로 가고 있는 걸까 도무지 알 수 없을 때가 많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삶에 비하면, 여태까지의 여행에 비하면) 산티아고 순례길은 무난한 난이도의 여행일 것이라고 예상했습니다. 800km에 달하는 긴 여정이지만 프랑스 국경을 넘어 스페인 산티아고까지, 출발지와 목적지가 명확한 여행이니 마음 편히 완주할 수 있을 것 같았거든요. 그런데 딱 하루만 지나 보면요. 글쎄... '집에서 그냥 쉴걸'하는 생각이 절로 든답니다.


 고행 후에 깨달음을 얻는다는 옛 사제나 스님들의 말처럼, 순례길이 제겐 그런 수행이 되길 바랐습니다만 감히 평생으로도 해결하지 못한 고민을 한 달 만에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제 욕심은 과했나 봅니다. 깨달음이라면 깨달음일지 모르는 이런 소소한 생각들, 순례길을 걸으며 보고 느끼고 들었던 것들을 오늘부터 두 번 혹은 세 번에 걸쳐 편지로 부치려 합니다. 가능하다면 근사한 경치가 담긴 사진들도 몇 개 추려 보내드리겠습니다.




 순례길 여행을 준비할 때의 저는 늘 그렇듯 준비만 빨랐습니다. 퇴사 결정을 내린 후 하루가 채 지나지 않아 비행기와 모든 이동수단의 예약을 끝냈거든요. 숙소는 시작 마을과 도착 마을만 잡아두기로 하고요. (걷는 길에 좋은 사람이라도 만나버리면 어떻게 해요. 이런저런 변수들도 잘 생각해두어야죠) 떠나기 며칠 전이 되어서야 가족들에게 이야기하니 걱정이 많은 눈치였습니다. 통보하는 방식이 누구 하나는 꼭 상처받게 하는 일이란 걸 알면서도 쉽게 고쳐지진 않네요.



 경비를 줄이려다 보니 제가 끊은 항공권은 38만 원짜리 경유 티켓이었습니다. 첫날부터 보란 듯이 베이징 공항에 갇혀버렸죠. 저녁 여덟 시가 되어 도착한 베이징 공항엔 밤 열두 시가 되어도 환승할 비행기가 오지 않고, 지연 시간도 도무지 줄어들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SNS도 안 되고 와이파이는 연결을 해도 자꾸만 끊기고... 대학생 때 하던 여행과는 다르게 돈도 넉넉하니 마음껏 먹고 쇼핑이라도 하면 될 텐데 어두워진 공항에선 갈 곳이 없었고요. 괜히 두려운 마음에 경계심이 생기고 (경계하는 일에는 꽤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더라고요.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집에 돌아오는 날마다 그렇듯) 이러다 순례길에 도착하기도 전에 기운이 다 빠져버릴 것 같았습니다. 


 현지 시각으로 다음 날 오전 7시, 드디어 환승 비행기를 타고 파리에 도착하니 다리는 퉁퉁 부어있고 입가에는 졸면서 흘린 침 자국이 말라붙어 있었습니다. 15시간을 날아오는 내내 펜을 잡고 졸고 깨기를 반복하면서 무언가 끄적였던 것 같은데, 펼쳐보니 무슨 기괴한 1인극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다 그만두고 떠나야지. 그래도 돌아와서 무얼 할지는 정해두고 가야지.

그게 뭐람. 다 그만둔 게 아닌걸?

왜 이 길을 시작했을까? 살아 돌아올 수 있겠지?

25번 게이트 앞 파리행 비행기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혹시 나와 같은 길을 가는 건 아니었을까? (게이트의 숫자가 커진다는 건 가난하다는 증거다...)

아니 벌써 동료를 찾는 거야? 그렇게 홀로 있고 싶었으면서?

춥다. 아까 벗은 내피가 아쉽다. 분명 그때는 정신없이 돌아다니느라 더웠는데... 짐 부칠 때 넣지 말 걸 그랬나 봐.



 파리에 도착한 후에도 총 세 번 버스와 기차를 타야 했습니다. 공항에서 르버스를 타고 몽파르나스로 이동, 다시 TGV 기차를 갈아타고 바욘 역까지 이동, 바욘을 떠나 생장(출발지)으로 전철을 타고 이동. 800km가 넘는 거리를 달려와 드디어 마지막 전철에 올랐고, 등산복을 입은 사람들을 줄줄이 만나다 보니 이제야 좀 실감이 나더군요. 좌석 자리에 앉지 못한 사람들과 바닥에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누며 저는 크게 웃고 있었는데, 사실 그건 약간의 긴장감과 초조함을 숨기고 싶어 연기한 것이었습니다. 


 이렇다 할 계획 없이 여행하는 걸 좋아했지요. 우연히 걷다 들어간 식당이 현지 주민들의 맛집이었다는 기쁨, 길을 잃었다가도 지도에 없는 지름길을 만나 행복했었습니다. 전형적인 낙관형 인간... 그러나 순례길 여행은 조금 달라야 했습니다. 명확한 일일 계획이 있어야만 했지요. 출발지에서 목적지까지, 거리와 시간을 일일 단위로 정해놓지 않으면 정해진 시간 내에 산티아고까지 걸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계획은 언제든지 변할 수 있는 유동적인 것이었습니다. 몸이 따라주지 않으면 차도 탈 것이고 열차도 탈 것이고, 지나가다 물도 얻어 마실 테고 목적지까지 가는 길에 다양한 변수들을 염두에 두며 필요하다면 도움도 받을 것이라는 다짐. 변수를 예상하는 것도 능력, 누군가에게 손을 내미는 것도 능력일 텐데 여태 그런 건 모르고 살았던 것 같아서요.



 열차에 내려 여정을 시작하는 마을에 도착했습니다. 슬슬 조개 껍데기(순례자의 상징인 조개껍데기는 걷는 길 어디에나 상징처럼 새겨져 있습니다)가 보이기 시작할 무렵 전철역부터 함께 걸어오던 영국 아저씨가 헤어질 무렵 건넨 말이 여전히 생생합니다. 


- "No Speed, No Jealous" (속도 내지 마요, 질투하지 마요)


명심하면 멀리 갈 수 있다던 그 말. 무릎과 발목이 다 부어올라서야 무슨 말인지 알 것 같던 그 말을 당신도 편지를 읽으며 꼭 한 번 되뇌어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속도 내지 마세요. 질투하지 마세요. 되뇌이다보면 일상에서도 꼭 필요한 말이더라고요.





 본격적인 순례길 이야기를 편지에 옮겨 쓸 다음 주엔 눈물이 찔끔 날 것 같아 벌써 무섭습니다. 순례자의 길 여행이 유쾌한 사건인 척하며 오늘의 편지를 쓰긴 했지만, 알고보면 출발부터 도착까지 진 빠지는 일들의 연속이었거든요. 그래도 몇 해가 지나 그 길을 돌이켜보는 지금 가슴이 쿡쿡거리는 건 역시나 사람 때문이었던 것 같네요. 왼발이 나가는지 오른발이 나가는지 모를 때쯤 양손에 스틱이 주어진 건, 무릎의 염증이 너무 심해져 더 이상 걸을 수 없을 때쯤 약국을 만났던 건... 다 사람이 있는 길이어서 그랬던 걸 겁니다. (아마 모든 여행을 통째로 체에 거르면 사람만 남지 않겠나 하는 유치한 비유도 함께)


 왼발과 오른발이 서로에게 해를 끼치지 않도록 설계된 우리의 걸음걸이처럼. 울음의 왼발도 웃음의 오른발도 모두 우리를 나아가게 만들었던 것처럼. 모든 걸음에게 감사한 마음으로 힘차게 걷다가 또 편지하겠습니다. 다음 주도 부엔 까미노! 



-


나는 당신의 우울을 사랑해


울음의 왼발도
웃음의 오른발도 


모두 나를 나아가게 만들었단다. 




- 순례길 위에서 쓴 메모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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