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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누누 Nov 01. 2020

요리를 좋아하시나요?

편지 왔어요, ep 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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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아침부터 가을비가 오네요. 어릴 때 아빠와 함께하던 아침이 기억나요. 한쪽은 한두 숟가락 더 먹이고 싶어서, 다른 한쪽은 그게 싫어서 매일 아침 전쟁이었는데요. (아침마당 소리가 나오면 지각) 딱 이 계절쯤이면 옷을 골라주시면서 가을비가 끝나면 추워진다는 말을 자주 하셨지요. 그 후로 가을에 내리는 비만 보면 저도 모르게 옷장 앞에서 더 시간을 보내게 되는 것 같더라고요. 가을비=추운 날씨라는 나만의 공식. 그런 공식을 만들어주는 사람들이 있어요. 사랑했던 사람, 사랑하는 사람, 다시는 볼 수 없는 사람. 아무쪼록 계신 그곳에도 감기 조심하시길 바라요. 사랑하는 사람들에겐 추워질 거다, 문자도 한 통 해주면 좋고요.




혹시 요리를 좋아하세요? 몇 년 전 봉사활동을 하며 해외에 살 때가 있었지요. 장애인 아이들과 함께 사는 마을이었는데, 요리는 제가 배정받은 일이었고요. 빵을 구우러, 소 젖을 짜러, 상추를 따러 배정된 일터로 나간 아이들이 돌아왔을 때 '식탁 위를 맛있는 음식으로 가득 채워두는 일' 이라고나 할까요.


카레, 라자냐, 수프... 그리 대단한 음식은 아니었을 텐데 늘 맛있게 먹어준 사람들을 떠올리면 지금도 고마워요. (단순히 배가 고파서였을지도 모르지만) 요리를 할 때 자꾸만 눈시울이 자주 붉어지는 건 언젠가 내 음식을 맛있게 먹어주던 사람들이 떠올라서일 거라고. 마늘 볶는 냄새, 칼을 잡는 느낌... 요리할 때마다 그 사람들 얼굴이 선명해지는 건 다 그 덕분일 거라고. 자주 생각해봐요.


곰곰이 생각해보니 누군가의 허기를 채워주는 일. 그건 제가 사랑을 표현하는 일 중에서 가장 쉬운 일이 아니었나 싶어요. 상대방이 너무 큰 행복을 선사 받은 것처럼 웃어줘서 더 좋았고요. 그런 경험들은 쌓이고 쌓여서 제게 자꾸 요리 욕심이 나게 해요.



저는 최강록이라는 요리사를 좋아하는데요. 주말에 우연히 '5시간을 곁들인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카레'라는 그의 유튜브 동영상을 보고 나서 카레를 하게 됐어요. 글쎄요, 쉬워 보였지만 생각보다 서 있는 시간이 길더라고요. 타지 않게 자꾸 저어주기도 해야 했고요, 너무 졸아들면 아주 조금씩 물도 부어주어야 했어요. 요리를 끝내고 생각해보니 왜 이 사람 요리를 제가 좋아하는지 알겠더라고요. 요리 잘하는 사람이 세상에 무궁무진하지만 저는 이 사람 요리에 담아내는 기운이 참 좋아 보였던 것 같아요. 눈에 보이는 정성이랄까. 알려주는 대로만 하면 조금 엉성한 맛이어도 먹는 사람이 씩 웃어 줄 것 같은 음식.


요리할 때 노련한 기술과 신선한 재료(a.k.a 마음, 요리사들은 재료를 고를 때 정성을 엄청나게 쏟는다는 글을 봤어요) 중 하나만 선택해야 한다면 아무래도 재료 쪽을 택하겠어요. 기술과 기운, 그러니까 유명한 드라마의 대사를 빌리자면 외력과 내력의 싸움 같은 것. 정성을 쏟아 고른 재료, 그래서 좋은 기운을 가득 품은 재료라면 응당 훌륭한 음식이 되지 않을까 해서요.


좋은 사람이 되는 것도 크게 다를 바 없는 것 같아요. 마음, 마음, 그리고 또 마음. 말 잘하는 기술, 협상하는 기술... 기술도 좋지만, 마음이 없으면 다 허울이잖아요. 들켜버리면 아무 소용 없는... 그 사람 허기가 무엇일까 떠올려보는 마음, 우린 그거면 돼요.


외국 친구들에게 만두와 잔치국수를 해줬을 때, 엄마에게 뇨끼를 해줬을 때, 아빠에게 쭈꾸미 볶음을 해줬을 때, 애인에게 필살 김치찜을 해줬을 때. 저는 그때 그들의 표정을 절대로 잊지 못해서 아마 앞으로도 요리에서 쉽게 벗어나지는 못할 것 같아요.
                

2020. 11. 01

편지를 다 쓰니 비가 그친 집에서

김민수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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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강록 카레 레시피 영상의 댓글... 어쩐지 쉽지 않더라....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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