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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누누 Sep 12. 2021

디지몬 - 그래, 그리 쉽지는 않겠지

여섯 시의 싸움

여섯 시의 싸움


디지몬의 주된 경쟁자는 언제나 포켓몬이었다. 두 작품 모두 비슷한 시기에 나왔고 무슨 몬스터가 나오고 인간과 몬스터 간의 교감과 그를 통한 성장이 작품의 중심 주제였으니까. 때문에 포켓몬과 디지몬 둘 중 누가 더 강하냐, 태일과 지우 둘 중 누가 더 매력적이냐 같은 이야기는 디지몬과 포켓몬 이야기가 나올 때 빠지지 않는 이야깃거리였다.


하지만 텔레비전에서 디지몬 시리즈를 보고 자란 내게 디지몬의 가장 큰 경쟁자는 포켓몬이 아니었다. 오히려 포켓몬은 경쟁적 동료에 가까웠다. 경쟁이지만 본질은 동료인 그런 존재. 디지몬의 진짜 경쟁자는 같은 시간에 방영하는 여섯 시 내 고향이었다. 텔레비전 말고는 디지몬을 볼 수단이 없고 심지어 그 텔레비전도 집에 하나밖에 없던 시절이었다.


나는 디지몬의 열렬한 팬이었고 아빠는 여섯 시 내 고향 애청자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빠도 여섯 시 내 고향 말고는 딱히 볼 게 없었던 것 같다. 아빠는 요즘 도시 어부의 모든 에피소드를 찾아서 본다.

집에 돌아와 딱히 할 일이 없는 아빠가 여섯 시 내 고향을 보면 나는 그 옆에서 하릴없이 아빠가 여섯 시 내 고향을 재미없어하거나, 아빠에게 할 일이 생기거나, 아빠가 나를 생각해서 디지몬을 틀어주거나, 아빠도 디지몬을 보기를 바랐다. 어쨌든 뭐가 됐든 아무튼 디지몬을 틀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여섯 시 내 고향을 봤다.


아빠는 여섯 시 내 고향이 끝나면 내게 보고 싶은걸 보라며 리모컨을 줬지만 디지몬은 30분이 채 넘지 않는 만화영화였고 여섯 시 내 고향은 한 시간 가까이 진행되는 프로그램이었다. 여섯 시 내 고향이 끝난 시간이면 디지몬은 이미 다음화 예고까지 끝난 뒤였다. 아빠가 여섯 시 내 고향을 보는 날은 곧 디지몬을 보지 못하는 날이었다. 내게 여섯 시 내 고향이란 명백히 내가 디지몬 보는 걸 방해하는 훼방꾼이었다. 저 놈의 여섯 시 내 고향은 언제 끝나나 늘 생각했지만 여섯 시 내 고향은 KBS에서 디지몬 시리즈 방영을 그만하고 원피스를 방영하기 시작할 때도 계속 방영 중이었다. 나는 여섯 시 내 고향이 싫었다. 디지몬보다 포켓몬을 더 좋아하는 애들보다 더.


여섯 시 내 고향이 싫었던 까닭은 디지몬을 보지 못해서 뿐만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그 프로그램이 재밌다는 점이 너무 싫었다. 자는 듯 안 자는 듯하는 아빠 옆에서 여섯 시 내 고향을 보고 있으면 머릿속은 온통 ‘디지몬 봐야 되는데’로 가득 찼지만 또 눈은 계속 여섯 시 내 고향을 보고 있었다. 리포터들이 시골 마을로 내려가서 어르신들을 만나고 유쾌한 농담을 던지고 일손을 돕고 새참을 먹고 춤추고 노래하는 모습이 볼수록 재미있었다. 흥미진진한 일이 벌어지진 않지만 아무런 사고도 벌어지지 않는 게 평화로웠다. 대충 디지몬이 끝났을 시간이 되면 나는 체념하고 여섯 시 내 고향을 집중해서 봤다. 아빠는 자는 것처럼 누워 있었다.


하지만 여섯 시 내 고향을 보며 재밌다고 느끼거나, 아무 생각 없이 보게 될 때면 나는 언제나 디지몬을 배신했다는 기분이 들고는 했다. 언제나 여섯 시 내 고향에 대한 맹렬한 분노와 적의를 가져야 했다. 디지몬을 보지 못하게 만드는 원흉이었으니까 말이다.


동네 친구 집에 놀러 갈 때면 언제나 여섯 시가 될 때까지 놀았다. 하루는 주현이네 하루는 슬지네 이런 식으로 동네를 전전했다. 여섯 시 내 고향을 피해 디지몬을 보기 위함이었다. 친구 어머니께서는 늘 내게도 저녁밥을 줘야 하나 난처해하셨다. 내심 내가 집에 갔으면 한다는 걸 다 알고 있었지만 나는 꿋꿋이 여섯 시까지 버티다가 디지몬을 보고 집에 돌아갔다. 내가 눈치채지 않아도 되는 나이라는 것까지 알고 있었다.


여섯 시 내 고향을 피해 동네를 전전하고 아빠의 눈치를 보고, 혹은 체념하고 여섯 시 내 고향을 볼 때면 디지털 월드를 구하기 위해 애쓰는 선택받은 아이들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택받은 아이들이 악한 디지몬과 힘겨운 사투를 벌일 때 나는 어른의 의중을 살피고 눈치를 보며 월요일 화요일 저녁 여섯 시에 여섯 시 내 고향을 보지 않는 집을 찾아다녔다. 그건 그 시간에 한국에 사는 선택받지 않은 어린이가 치러야 하는 싸움이었다. 나는 결국 여섯 시 내 고향을 이기지 못해 허탈하게 여섯 시 내 고향을 보며 여섯 시 내 고향이 재밌다는 배덕감에 휘말릴 때도 선택받은 아이들만큼은 꼭 승리하기를 바랐다.


얘들아 봐봐 나도 이렇게 노력하고 있어. 너희들의 싸움을 응원하기 위해 말이야. 그러니까 제발 이겨줘. 악한 디지몬들을 쓰러뜨려줘. 세상을 구해줘. 내가 보지 못하더라도.

라고 아이들을 응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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