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음에 대하여

로제 마르탱 뒤 가르<회색노트>, 쇼팽 피아노 콘체르토 1번

by 새로운 고전

'아! 나의 마음이 메마르지 않기를!

나는 생활이 나의 마음과 감각을 무디게 할까 봐 두려워.

나는 나이를 먹고 있어.

이미 '하느님'이라든가 '정신'이라든가 '사랑'이라든가 하는

커다란 관념들이 이전처럼 가슴속에서 뛰지 않는 느낌이야.

그리고 모든 것을 갉아먹는 '회의'가 때때로 나를 삼켜 버려.

아! 어째서 이성으로 따지는 대신에

우리 마음의 온 힘을 다해서 살아가지 못하는 것일까?

우리는 생각을 너무 많이 해!'




이 문장을 읽자마자 이 소설을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문장이, 내 마음을 다 알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제게 이 소설은 젊음 그 자체입니다.

날것의 꿈과 동경과 영혼의 문장들이 사랑스럽습니다.

상처와 혼란마저 사랑스럽습니다.




'네 영혼의 상태는 무관심, 관능 혹은 사랑 중 어느 것이니?

내 생각에는 그래도 세 번째 상태가 아닌가 싶어.

다른 두 상태보다 훨씬 더 너다우니까.

나로 말하면 내 감정을 들여다보면 볼수록 인간이란,

한낱 짐승이며, 사랑만이 인간을 높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그것은 상처입은 내 마음의 부르짖음이고, 그것은 나를 속이지 않으니까!

사랑하는 친구야, 네가 없다면 나는 한낱 열등생, 바보에 지나지 않았을 거야.

내가 이상을 열망하게 된 것은 순전히 너의 덕택이다!'




로제 마르탱 뒤 가르의 <회색 노트>는 1904년 프랑스,

일주일동안 집에서 탈출했다 돌아오는 두 소년의 이야기를 그립니다.

가톨릭교도의 명망있는 집안의 아들과 프로테스탄트 출신의 문제아,

예민하고 성숙한 감각의 다니엘과 독특한 예술적 감각의 자크,

서로에게 깊은 끌림을 느낀 둘은 회색 천을 덧댄 노트에 서로의 이야기를

공유하며 관계를 쌓아 나갑니다.




'그는 일어서면서 소리쳤다.

"그 퐁타냉과 같은 나쁜 녀석들은 어떤 특별한 시설에다

수용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 애들이 그런 영향을 받도록 그대로 두어서야 되겠습니까?"

그는 뒷짐을 지고 눈을 내리깐 채 책상 위를 왔다 갔다 했다.

(...)

"나는 크루이 소년원 안에 특별 병동을 만들어 우리 원아들과는 다른 계층에 속하는

불량 소년들에게 특별한 교도를 받도록 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믿어지지 않으시겠지만,

그 특별 병동이 언제나 텅텅 비어 있단 말입니다!

아이들을 그곳에다 넣도록 애들 부모를 설득하는 일까지 내가 해야 된단 말입니까?

나는 공교육 기관이 이런 우리 사업에 관심을 가지도록

온갖 노력을 다해 왔습니다!"

그는 어개를 으쓱해 보이고는 다시 의자에 털썩 앉으며 끝을 맺었다.

"그런데 도대체 그 무종교 학교에 있는 사람들은

사회의 위생이라는 것을 과연 염두에나 두고 있을까요?"'




두 소년의 편지와 교차되어 보여지는 어른들의 세계는

책 속에서 그래서 더 회색 노트와 대립되어 보입니다.

자크는 엄격하고 숨막히는 집에서 탈출하고 싶어하지만 결정적인 탈출의 순간마다

죄책감을 느낍니다.

다니엘은 자유로운 프로테스탄트 집안에서 자랐지만

아버지의 외도로 붕괴된 집안은 불안정합니다.

이야기는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판단하지 않은 채 두 소년의 편지와

두 집안, 일주일 간의 시간을 들려줍니다.

어른들의 세계에도 사연과 고민은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cpNnGa2hoqw




이 곡을 처음 들었을 때도 튀어오르는 젊음의 에너지를 느꼈습니다.

힘찬 현악기의 인트로를 지나 피아노 멜로디로 미끌어져 들어가면서,

누군가의 순수를 훔쳐보는 것 같은 이상한 질투가 들었습니다.

가공되지 않은 젊음의 정신이 뭉쳐져 곱게 빚어지면 이런 소리가 날것만 같습니다.

뜨거운 첫사랑일까, 청명하면서도 힘차고 정직하지만 다채롭습니다.

쇼팽의 피아노협주곡 1번 3악장입니다.




바르샤바 음악원 시절 쇼팽이 짝사랑했던 콘스탄차라는 소녀를 떠올리며

피아노협주곡 2번을 작곡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뒤이어 작곡한 1번의 2악장에도 콘스탄차에 대한 마음을 담았다고 알려집니다.

쇼팽은 협주곡 1번에 대해 친구 보이체호프스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새로운 협주곡의 아다지오는 E장조라네.

여기서 나는 강렬한 힘을 추구하지 않았어.

로맨틱하고 평화로운 기분에 젖어 약간의 우울함을 느끼면서,

많은 추억들을 되살리는 장소를 바라보는 듯한 느낌을 담아내려고 했지.

아름다운 봄의 달빛이 어린 밤처럼 말이야.'



'봄의 달빛'을 다음의 문장과 함께 들어보시길 권합니다.



'너의 마음을 짓누르고 있는 그 고민을 어떻게 위로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이 절망의 외침을 치유할 수 있을까?

아니다, 벗이여, '이상'이란 결코 인생과는 상반되는 것이 아니야.

아니고 말고, 그것은 시인의 꿈이 빚어낸 한낱 환영만은 아니야!

'이상'이란, 내 생각에는 (설명하기 어렵지만) 그러나, 내 생각에는

지상의 가장 비천한 것에까지 고귀함을 부여하는 것이다.

우리가 하고 있는 모든 것을 위대하게 만드는 것,

조물주의 입김이 신성한 능력으로 우리 속에 불어넣어 주신 모든 것의 완전한 발전이다.

내 말을 이해하겠니?

이것이 바로 내 마음속 깊이 깃들여 있는 '이상'이야.'






*참고

로제 마르탱 뒤 가르, <회색 노트>, 정지영 옮김, 민음사, 2018

Chopin <Piano Concerto No.1 Op.11, III. Rondo (viv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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