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과 시간, 속도의 상관관계

W.G.제발트<아우스터리츠>, 멘델스존<무언가 1번>

by 새로운 고전

'왜 시간은 한 곳에서는 영원히 정지하거나 점차적으로 사라지고,

다른 장소에서는 곤두박질을 치나요?

우리는 시간이 수백 년 혹은 수천 년 동안 일치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는 없을까요, 라고 아우스터리츠는 말했다.'


'먼지와 뼈들과 함께 침전한 시신들 위에 쌓인

토양층 위로 17세기와 18세기가 지나는 동안

대들보와 진흙 덩어리들, 그 밖에 런던의 가장 비천한 주민들이 사용했던

재료들로 뒤섞인 냄새 나는 골목들과 집들이

점점 더 어지럽게 뒤섞이는 가운데 이 도시는 커져 갔지요.'




W.G.제발트의 소설 <아우스터리츠>는 시간의 침적과 퇴적,

그 안에서 한 인간이 겪는 물결과 남겨짐에 대해 묘사합니다.

그리고 그 물결은 역사의 물결이기도 합니다.

히틀러가 유럽을 장악했을 때,

유대인 아이들을 영국으로 피신시키는 구조 운동이 있었습니다.

1938년부터 1939년까지 영국은 약 1만 명의 어린이를 받아 주었는데,

소설 속 네 살이었던 아우스터리츠 역시 그때 영국으로 건너갑니다.

건축가가 된 아우스터리츠는 막연한 기억을 더듬어 유년 시절의 진실을 찾아 나섭니다.




'내 사고의 이같은 자기검열,

다시 말해 내 속에서 시작되는 기억에 대한 지속적인 거부는

그 사이 점점 더 많은 노력을 요구했고,

결국은 어쩔 수 없이 내 언어 능력을 완전히 마비시키고,

나의 모든 스케치들과 기록들을 없애 버렸으며,

런던을 관통하는 끝없는 밤의 산책과

점점 더 자주 찾아오는 환각들과 더불어

1992년 여름에는 마침내 쓰러지는 지경에까지 이르렀지요,

라고 아우스터리츠는 이야기를 이어 갔다.'




공간과 시간은 누구에게나 균일하게 주어지지 않는다는 걸,

그리하여 어떤 시간은 특별히 한없이 늘어나기도 하고

찌그리지기도 한다는 사실을 이 소설을 통해 다시 알았습니다.




'모든 지나간 세월을 넘어 스스로에게 익숙한 삶에서

하루아침에 갑자기 나 자신이 고립된 아이임을

분명하게 알게 되었다는 것이 내게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어요.

그때 이후 나 자신에 의해 억눌려 왔지만 이제는

강력하게 몰려오는 쫓겨난 존재와 지워진 존재라는 느낌 앞에서

이성은 속수무책이었어요.'





https://www.youtube.com/watch?v=vDp20MuOrEE




시간이 진공포장된 것 같은,

간결하고 아름다운 노래

멘델스존의 무언가 1번입니다.

말이 없는 노래, 가사가 없는 음악이라는 뜻입니다.

편안하지만 밀도있는 아름다움을 가졌습니다.


무언가는 총 48곡의 피아노 곡으로, 짧지만 완성도 있는 형식과 깊이를

가졌다고 평가받는 작품입니다.

무언가의 작품들은 대부분 연주하기에 까다롭습니다.

반주와 멜로디의 역할을 한 사람이 감당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섬세한 프레이즈와 감정에 지나치게 빠지지 않는 음악적 균형이 필요합니다.

안드라스 쉬프의 연주를 소개드립니다.

이 곡이 수록된 앨범 'Piano concertos 1&2 (1986)' 또한 들어보시기를 권합니다.

앨범에서 그는 연대순이 아니라 감정적 순서로 곡을 연주했다고 합니다.


멘델스존의 친구였던 작곡가 슈만은 무언가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해질 무렵, 무심코 피아노 앞에 앉아 건반에 손을 얹으면

나도 모르게 흥얼거려 보고 싶은 가락이 떠오른다.

이런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을 테지만

그가 작곡가이고 더군다나 멘델스존 같은 재능 있는 사람이라면

단번에 아름다운 '무언가'를 만들어 낼 것이다.'




'내가 그 일요일 오후 건물 골조 위에 서서

어스름 사이로 건물 북쪽 면의 예술적인 격자를 올려다보았을 때,

그것의 위쪽 가장자리에 아마도 수리 작업을 하고 있는

아주 작은 사람 두 명이 거미줄의 검은 거미처럼 밧줄에서 움직이는 것을

한참 후에 알아차리고는 불편한 느낌을 받았어요.

나는 이 모든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지 못하고,

어쨌거나 계속해서 아버지와 마리 드 베르뇌유를 찾을 거예요,

라고 아우스터리츠는 말했다.'




슬픔으로 폐허가 된 시간과 풍경을 기억을 나열하는 듯한 묘사로

서술해 되살려 형상화한 이야기와

말없이 감정과 풍경을 전달한 음악을 함께 엮었습니다.

말도, 말 아닌 것도 모두 우리를 때로는 같은 정서로 끌어올려 주고

건져올려주기도 한다는 걸 나누고 싶은 마음으로 적습니다.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진실한 음악은

몇 마디 말보다 우리 감정을 더 잘 표현해 준다.'

- 멘델스존






*참고

W.G.제발트, <아우스터리츠>, 을유문화사, 안미현 옮김, 2001

Mendelssohn, <Song without Words> Op.19, No.1 in E Maj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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