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at's in your bag
이번 달 회사 북러닝 책으로는 <자연으로 향하는 삶>을 선택했다. 추천글이나 지인의 소개, 유튜브나 SNS에서 보고 고른 것이 아니라 오롯이 책 소개만 읽고 흥미로워보여 신청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책은 다른 책들과 달리 총 4권의 짧은 단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얇은 띠지로 묶여있는데 책들의 컬러감이나 디자인도 꽤 예쁘다- 통합본으로 묶을 수도 있었겠지만 출판사 ‘가지’에서는 ‘자연 속 생명들처럼 각각의 생각과 글이 섞을 수 없이 고유했기 때문’에 분철해 담았다고 썼다. 4권이 모두 자연과 생명을 담은 ‘생태 에세이’이며, 그 중 2권은 새를 다루고 있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이 책을 고른 이유 중 가장 큰 부분은 아빠와 같이 읽고 싶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이우만 작가의 <새를 그리는 사람>, 그리고 야생조류 유리창 충돌 사고를 조사하는 희복 작가의 <그렇게 죽는 건 아니잖아요>를 읽는 동안 저절로 아빠가 떠올랐다. 지인들에게 장난스러운 말로 우리 아빠가 얼마나 새를 좋아하는 지 떠들곤 했는데, 작가들의 글을 읽으니 그들 역시 어떻게 이 작은 생명에게 이토록 빠지게 되었는지 알 수 있었다.
새와 접점이 없었고, 흔한 새 이름도 잘 모르다가 어느 순간 블랙홀에 빠지듯 새들에게 매료되는 순간. 이우만 작가는 필드스코프로 찬란하게 빛나는 청둥오리를 들여다봤고, 희복 작가는 트래킹을 마치고 오는 길에 여수 방음벽 아래 떨어진 죽은 새들을 들여다봤다. 한 명은 마치 농사를 짓듯, 사진을 찍고 고르고 수없이 다시 보며 아주 세밀하게 새를 그려낸다. 나머지 한 명은 전투를 하듯, 안전 조끼를 입고 조사 가방을 들고 방음벽 밑 떨어진 새를 기록하러 다닌다. 그들이 하는 일은 마치 대척점에 있는 것 같지만 사실 같은 일이다. 새의 존재를 알리고 지키고자 하는 일 말이다.
네 명의 작가는 서로 다른 분야에서 서로 다른 일을 하고 있지만, 내가 느낀 넷의 이미지는 유사하다. 무엇보다 그들은 아주 성실하다. 앞서 말한 두 작가 외에도 식물을 연구하고 그리는 이소영 작가, 생태 감수성을 알리는 최원형 작가 역시 마찬가지다. 나같은 평범한 사람의 매일과는 다르게 그들은 일상에서 늘 실천한다. 최대한 식물을 채집하거나 표본화하지 않고, 식물이 주는 아름다움에만 현혹되지 않으며 그들을 그대로 바라보는 것. 혹은 청소기 대신 빗자루, 세탁기 대신 손빨래, 고기 대신 채식을 선택하며 개인의 삶부터 바꿔나가는 것.
각각의 책 말미에는 네 작가의 ‘What's in my bag’이 수록되어 있다. 꽤 재밌는 기획이라고 생각했다. 우리가 유튜브에서 흔하게 접하는 왓츠인마이백은 99% 소비와 연결되는 컨텐츠가 아닌가. 그런데 작가들의 가방 안에는 소비와는 거리가 먼 물건들이 잔뜩 담겨 있었다. 아이들 어릴 적에 쓰던 천 기저귀를 잘라 손바느질해서 만든 손수건, 물휴지 대신 쓰는 100% 면 휴지, 일회용 나무젓가락을 쓰지 않으려고 늘 들고 다니는 수저집. 15년 정도 쓴 전지 가위와 10년 정도 쓴 샤프는 어떤가. 그리고 네 명 모두 기록을 위해 늘 메모장과 필기구를 가지고 다닌다는 점도.
자연스레 내 자신을 돌아보게 되는 독서 경험이었다. 서른 여섯 해 하고도 반 년을 더 산 지금, 나는 얼마나 의미 있는 삶을 살고 있는지 되돌아본다. 세상 혹은 자연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는 삶인가, 아니면 일말의 실천조차 하지 않고 모든 것을 소비해버리는 삶인가. 부끄럽지만 아직까지는 후자에 가까운 것 같다. 조그만 벌레만 봐도 기겁을 하고, 자연에서의 하룻밤도 한사코 마다하고, 에어컨과 세탁기, 건조기를 마음껏 돌려대는 현대인의 삶. 네 권의 책을 모두 읽고나니-그것이 비록 꾸며낸 것일지라도-조금 더 실천적인 삶을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더 예쁜 마음으로 생명들을 바라보고 개인의 일상부터 조금씩 바꿔가야겠다는 생각. 오늘 나들이는 일단 텀블러부터 가지고 가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