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탄생]

하지 말라는 일을 해봐도 될까요?

by 채부장


25. 11. 4

흔히 말하는 '벽돌책'을 아시는가. 모두가 알고 있지만 아무도 읽은 사람은 없다는 바로 그 책.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총균쇠] 등으로 대표되는 아주 두꺼운 책 말이다. 사실 500페이지 이상이 넘어가는 책들은 - 아무리 세계적으로 대단한 명저라고 하더라도 - 완독이 쉽지 않다. 더 솔직히 말하자면 펴는 것조차 엄두가 안 난다. 믿으셔라. 사피엔스와 총균쇠가 집 책장에서 몇 년째 눈을 흘기는데도 단 한 장을 못 읽은 사람이 여기 있으니.


왜 벽돌책으로 시작했냐. 바로 [생각의 탄생]이라는, 찾아보기까지 더하면 무려 455페이지의 유사 벽돌책을 읽어냈기 때문이다. 독서 모임이 아니었으면 정말 어려웠을 일이다. 약 한 달의 유예 기간을 받았음에도 제출 하루 전에 서평을 쓰고 있지 않은가. 해야 할 일이 정확히 주어진다는 건 얼마나 큰 동기 부여인지. 심지어 되새김질해야 할 부분이 많아 필사하다보니 작은 노트 15쪽이 꼬박 찼다. 평소같았으면 정말 읽지 않았을 분량과 내용임에도 꾸역꾸역 소화해낸 나를 칭찬해주고 싶다.


[생각의 탄생]을 읽고 처음 충격을 받은 부분은 이것이었다.

"한 음악가는 과학자와 예술가의 사고과정이 놀랄 만큼 흡사하다는 것은 개인적 차원뿐만 아니라 사회적 차원에서도 맞는 말이라고 주장한다. 과학자들이 '공통적인 문제해결법'이라고 인식하는 것을 예술가들은 '공유된 영감'으로 이해한다. 그러나 과학이든 예술이든 모든 '해답'은 동일한 창조행위를 통해 구해진다." (p.30-31)


"모든 과학은 예술에 닿아 있다. 모든 예술에는 과학적인 측면이 있다. 최악의 과학자는 예술가가 아닌 과학자이며 최악의 예술가는 과학자가 아닌 예술가이다." (p.31)


그전까지 나는 단한번도 과학자와 예술가가 유사한 유형의 사람들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아주 특이하게 두 가지 모두를 잘했던 레오나르도 다 빈치 정도 말고는. (그래서 그가 세기의 천재라고 불렸던 게 아니겠는가) 그런데 이게 웬걸. 과학자와 예술가가 같은 사고과정, 즉 창조적이고 통합적인 사고를 거친다니. 그렇다. 첫번째 챕터부터 이미 [생각의 탄생]은 통합수업의 중요성에 대해 설파하고 있다.


표면적으로 보자면 이 책은 창조적 사고를 위한 13가지 생각도구들을 다루고 있다. 그 도구들이란 관찰, 형상화, 추상화, 패턴인식, 패턴형성, 유추, 몸으로 생각하기, 감정이입, 차원적 사고, 모형 만들기, 놀이, 변형(적 사고), 통합이다. 책의 두번째 챕터에서 이것들이 처음 나열되었을 때는 하나하나가 도무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하지만 걱정말길. 저자들이 이 방대한 페이지를 통해 도구들의 쓰임을 낱낱이 설명해주고 있으니 말이다.


생각도구들을 하나씩 읽어가다보니 유독 어린 시절의 경험들이 많이 떠올랐다. 예를 들어 '패턴인식'의 경우, 벽지의 일정 무늬를 오랫동안 바라보면 저절로 그 안에서 무서운 형상이 떠올랐던 경험이 누구나 있을 것이다. 아주 어렸을 적 나는 그게 무서워 벽지를 오래 바라보지 못하고 눈을 피해버렸다. '모형 만들기' 장의 전쟁 게임을 보고는 어린 시절 그 수많은 놀이들이 기억났다. 여자 아이들끼리 각각의 역할을 맡아 롤플레잉을 하기도 했고, 야외에 있는 다양한 재료들로 나만의 집을 지어 소꿉 놀이도 했다. 나름의 규칙을 정해 하던 게임, 우리의 창조성을 마음껏 발현시키던 놀이들.


초등학생 때는 고무 동력 비행기 만들기도 했다. 적어도 그 때까지는 과학과 담을 쌓지 않았는지 나름 열심히 만들어 학교 운동장에서 날렸던 기억이 난다. '세계를 이해하려면 모형을 만들라'고 했던가. 얼마 전 봤던 유튜브에서 애굽민수 - 대한민국의 이집트 전문가- 가 베트남 해변가 모래사장에 앉아 높이 70~80cm의 피라미드를 직접 만들었던 경험을 이야기한 게 기억났다. 모형을 만들면 형상화, 추상화, 유추, 차원적 사고 등 여러 도구의 영향을 주고 받으며 세계를 이해할 수 있는데. 이런 경험이 있었는지 돌이켜봤을 때, 언제가 마지막인지 도통 기억도 나지 않는 것이다.


"좀 더 과격해질 용기가 있다면 하지 말라고 '교육받은' 일도 가끔 해보자. 이를테면 음식을 가지고 장난치기, 진흙탕에서 뛰어다니기 같은 것들 말이다. 이 충고는 문자 그대로 해석해도 되고 비유적으로 받아들여도 된다. 그것은 크게 문제 되지 않는다. 어떤 방법을 택하든지 간에 우리는 표준적인 행동과 사고와 지각의 습성을 깨뜨려야 한다." (p.346-347)


아, 미국의 교수님들. 대한민국의 특이성에 대해서도 좀 알아주셔야 합니다. 우리는 음식 가지고 장난치지 말라는 이야기를 평생 들으며 자라왔으니까요. 게다가 우리 나라에는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속담까지 있다구요. 그러니 한국인들이 이러한 사고과정과 삶의 태도를 가지는 것은 상대적으로 어려운 일이다. 게다가 우리는 '전문가'가 되는 것을 무엇보다 중요시하지 않는가. 나의 학창 시절만 해도 효율적으로 과목을 나누어 배우는 게 중요했고, 문/이과를 정해 특정 과목은 아예 공부를 안했으니 말이다.


왜 어린 시절에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창조적 사고와 활동을 했을까. 그 과정이 자라는 동안 서서히 소멸됐고, 지금은 그대로 굳어진 느낌이다. 책이 주장하는 바는 명확하다. '통합교육'이다. 훌륭한 결론이지만 지금 누군가를 가르치거나 전문적으로 교육하지 않는 나에게는 조금 먼 이야기처럼 들린다. 그렇다면 일단 자신의 교육부터 시작해야겠다. 옆에 놓여진 많은 것들을 관찰하고, 입체적으로 생각해보고, 연결고리를 찾아서 잇고, 몸으로 움직여보고 놀아보고 만들어보기. 지금 하고 있는 일에 적용해 창조적이고 통합적인 사고를 시도해보려 한다. 조금이라도 새롭고 발전적인 아이디어가 나온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세계가 안고 있는 심각한 문제들은 오직 '전인whole men'만이 해결할 수 있다. 그는 기술자, 순수과학자, 예술가 중 하나만 되는 것을 드러내놓고 거부하는 사람이다. 오늘날의 세계에서는 '모든 것'이 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것'도 되지 못한다." (p.412)


날 괴롭게 했던 벽돌책씨,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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