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을 읽은 후에 서평 읽기를 권합니다
조금 우습게도 이 책을 선택한 이유는 나의 오독 때문이었다. 북쪽에 위치한다는 의미의 북호텔(nord hotel)을 마음대로 북호텔(book hotel)로 바꾸어 읽은 덕분이다. 세계문학전집 중에도 책과 호텔을 다룬 이야기가 있다니, 안 집어들 수가 없지 않은가. 심지어 표지 한 귀퉁이에 슬립을 입고 책을 펴든 희끗한 머리의 여성이 그려져 있었다. 다시 봐도 꽤 오해할 만하다. (비록 한글로 크게 쓰인 '북호텔' 밑에 'L'Hotel du Nord'라는 프랑스 원제를 발견하지 못한 내 잘못이 대부분이지만)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이 '오독'이 아주 귀중한 독서 경험을 안겨주었다.
출근길 지하철이 의외로 높은 집중력이 발휘되는 독서 공간이라는 것을 아시는가. [북호텔]은 그리 길지 않은 분량 덕에도 그렇고, 각 장마다 새로운 인물들의 이야기를 들려주기 때문에 끊어 읽기가 용이한 책이다. 가방에서 책을 굳이 꺼낼 필요 없이 계속 들고 다니며 온전히 지하철에서만 읽게 된 것도 그 때문이리라. 일주일 남짓의 통근길에 완독을 할 수 있을만큼 부담 없는 고전이니 누구라도 쉽게 시작해볼 만하다. 더불어 2025년 서울의 콩나물 시루 지하철 대신 1900년대 초 파리의 호텔을 들여다볼 수 있으니 이 얼마나 환상적인 경험인가.
[북호텔]의 작가 '외젠 다비'와는 완전히 초면이었다. 이름만 보고선 어느 나라 작가인지 눈치채기도 어려워 서둘러 책날개를 펼쳐보았다. 1898년 프랑스 메르레벵에서 태어난 그에게는 흥미로운 이력이 있었다. 1923년 그의 부모가 파리 제마프 강변에 있는 값싼 호텔을 구입해 '북호텔'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운영했다는 것이다. 그 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집필한 책이 [북호텔]이며 특유의 현실적인 묘사로 인해 '포퓰리스트 상'을 받았다는 것도.
사실은 책날개를 읽을 때까지만 해도 이 책이 너무 무겁고 어두운 주제만을 다루고 있지 않을지 걱정됐다. 당대의 사회상을 다룬 소설이나 현실을 반영한 글들이 대부분 그렇듯 말이다. 그러나 [북호텔]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따뜻했고, 진솔했고, 사람 냄새가 나는 소설이었다. 물론 그 바탕에는 왜 포퓰리스트 상을 받았는 지 알 수 있을만큼 현실적인 묘사가 깔려 있다. 책의 주인공은 르쿠브뢰르라는 부부다. 첫 장에서 남편인 에밀 르쿠브뢰르는 처남의 돈을 빌려 파리의 둑길에 있는 저렴한 호텔을 보러 간다. 1900년대에도 부동산을 매수하고 매도하는 일은 어찌나 골치가 아픈지.
"캄캄해서 방문에 있는 방들의 번호도 읽을 수가 없었다. 구테 씨는 지금은 2월이니까 해가 빨리 져서 그렇지만 여름이 되면 복도는 아주 밝은 데다가 눈이 부시기까지 하다고 말했다. "거기다가 전등이 여기저기 있고...." 구테 씨는 잠시 말을 끊었다가 "화장실에도 전등이 있으니까요."라고 했다." (p.9)
매도인과 매수인의 입장을 모두 경험해봤다면 르쿠브뢰르의 입장도, 구테의 입장도 선연히 이해가 될 것이다. 좋은 점만을 보여주고 싶은 매도인과 나쁜 점은 없는지 찾아내야만 하는 매수인. 그러나 우리가 아무리 열심히 들여다보더라도 이길 수 없는 어떤 기운이나 기분에 홀리는 순간이 있지 않은가. 그것은 심지어 집을 살 때와 같은 중요한 결정의 때에도 찾아온다. 에밀 역시 그런 순간을 마주한 듯하다.
"저녁 하늘로 연기가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탕플 교외 쪽 하늘은 두꺼운 구름으로 뒤덮이고 있었다. 파리의 소음은 사방에서 들려와 마치 막연한 격려를 하는 것 같았다. 느닷없이 그는 결심했다. 어떤 값을 치르더라도 이 호텔을 사야겠다는." (p.12)
이제 나는 어쩔 수 없이 르쿠브뢰르 부부를 응원할 수밖에 없다. 새로운 사업을 앞두고 설레하는 그들의 마음을 훔쳐본 죄다. 마치 내가 북호텔의 주인장이 된 것처럼, 호텔의 안녕과 손님들의 무사안일을 기원한다. 르쿠브뢰르 부부가 호텔을 매수한 이후 5장부터는 새로운 인물들이 고개를 빼꼼히 내밀기 시작한다. 그들에 대한 이야기는 각 장, 그러니까 기껏해야 6쪽에서 10쪽 정도의 분량밖에 되지 않는다. 그래도 나는 빠르게 그들에게 마음을 빼앗긴다.
"그들은 급하게 방을 뛰쳐나오기 때문에 카운터 앞에 와서야 옷매무새를 마무리한다. 아무렇게나 면도를 하고 대강 세수를 한 얼굴들이다. 그들의 언 얼굴들은 새벽처럼 시푸르뎅뎅하다. 잠이 깨지 않은 목소리는 평소와 다르고 눈꺼풀을 깜박인다. 그들은 단꿈에서 깨어나며 "망할놈의 일!"하면서 생활을 저주한다. 때때로 그들은 의자 위에 펄썩 주저앉으며 기지개를 켰다. 단조로운 운명이 그들을 짓누르는 것이었다. (p.42)
어떻게 애정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 때의 파리 사람들 역시 일을 해야하는 생활을 저주했다는데. 북호텔에서 출퇴근하며 일하고 있는 회사원, 회계원, 급사들, 전기공들, 인쇄공, 미장이, 목수 등등과 지금의 우리가 다른 점은 무얼까. 그들은 몸이 훈훈해지라고 커피에다가 럼주나 코냑을 약간씩 섞어 마실 수 있었다지만, 우리는 겨우겨우 머리를 깨우기 위해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들이부어야 하는 정도의 차이일 것이다. 100년 전에 쓰인 소설과 지금의 묘한 교차점을 본다.
소설을 덮고 나서도 딱 두 인물이 뇌리에 남았다. 한 명은 아까 말했듯 5장에 처음으로 등장하는 손님이며, 아마 르쿠브뢰르 부부 외에 가장 많은 지문을 차지한 르네 르베스크일 것이다. 그녀는 철공장 직공인 피에르 트리모와 함께 호텔에서 살기 시작했다. 피에르의 사랑이 식어가는 게 보이자 르네는 그의 사랑을 다시 얻기 위해 호텔에서 일을 구한다. 르네는 야무지게 호텔 살림을 돕고 주인 마님인 루이즈 르쿠브뢰르는 르네를 조카처럼 대한다. 르네가 미혼모의 몸으로 아이를 낳아도, 끝내는 그 아이를 잃고 방황 속에서 헤매도 말이다. 많은 일들을 겪고 르네가 북호텔을 떠나던 날, 그녀는 썩 홀가분해보였지만 나는 마치 루이즈가 된 양 가슴 깊이 울컥하는 감정을 느꼈다.
"그녀는 일어나서 짐을 꾸렸다. 오래 걸리지 않았다. 쿨로미에를 떠날 때보다 옷이 더 많지도 않았다. 어린 자식에 대한 추억으로 모아 두었던 것들을 쓰레기와 잡동사니들과 함께 쓰레기통 속에 처넣었다. 그러고는 옷걸이에서 외투를 끌어냈다. 이제는 자유의 몸이 되었다. 그러나 자신의 그 자유를 어떻게 해야하는가?" (p.125)
두 번째 인물은 책 속에 정말 적은 분량으로 등장한다. 그가 온전히 등장한 건 12장과 34장 뿐, 나머지는 책 중간중간에 지나가는 이름으로만 묘사된다. 바로 드보르제 영감이다. 12장에서의 그는 이미 65세이며 충분히 늙은 사람으로 묘사된다. 지금을 살고 있는 다른 등장인물들과 다르게 그의 이야기 대부분은 과거를 추억하고 회상하는 장면으로 구성된다.
"그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불이 반짝거리는 가게가 그리웠다. 다른 사람들의 삶은 그 자신을 잊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호텔 안은 온통 조용하다. 잠이 들 수만 있다면, 그의 온몸을 괴롭히는 고통을 더 이상 느끼지 않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얼마 안 있어, 목숨을 견지하려면 없어서 안될 몇 푼 안 되는 돈조차 벌 힘도 없어질 것이다. 그렇게 되면, 뭐라고? 양로원이라고...?" (p.72)
물론 100년 전보다 인간의 수명은 훨씬 늘어났겠지만 지금의 우리 역시 드보르제 영감의 고민을 벗어나긴 어렵다. 누구나 늙고 아프고 외로워지는 순간을 맞이할 것이기 때문에. 그리고는 그가 다시 북호텔에 등장하는 34장, 우리는 훨씬 더 늙어버린 드보르제 영감을 만나게 된다. 그는 '머리를 어깨 위로 숙이고 입을 반쯤 벌린 채로 타일 바닥을 바라보고', '얼마 안 가서 눈을 깜빡'거리며 '졸기 시작'한다. 그는 이제 북호텔에 머물던 65세의 자신을 그리워하는 것이다. 우리는 언제나 조금이라도 젊은 날의 자신, 조금 더 건강했던 자신을 그리워하지 않는가. 루이즈의 마지막 한 마디에 나 역시 마음을 보태본다.
"루이즈는 노인의 주머니 속에 꾸러미 하나를 넣어 주었다. 그러고는 10프랑의 돈을 그의 손에 쥐어 주고, 옷깃이 벌어진 그의 저고리를 고쳐주었다."
"안녕히 가세요! 잊지 말고 또 오세요." (p.207)
하지만 안타깝게도 르쿠브뢰르 부부의 북호텔은 더이상 없다. '모던 피혁'이라는 큰 기업에 부지가 팔려 북호텔이 헐려버렸기 때문이다. 비단 호텔과 안녕하는 것이든, 집과 안녕하는 것이든, 학교와 안녕하는 것이든간에 추억이 서려있는 공간과의 이별은 슬프다. 마지막 장에 가서는 마치 내가 북호텔의 주인이었던 양 서글픈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그건 작가가 내 마음 속에 호텔 손님들과의 정감 있는 생활을 담담하게 묘사해 넣었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들과 잔뜩 얽히고 설키는 이 일상이 가끔은 진절머리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돌아보면 인생을 더없이 풍부하게 만들어주는 것임을. [북호텔]을 읽으며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
"그녀는 이런 곳에 예순 명이나 되는 사람이 살았다는 점에 놀랐다. 그녀는 가까운 몇 해 동안의 노력이 없어져 버리는 것을 보고 있었다. 그녀의 과거가 조각조각 사라져 버렸다. 숙박인의 이름들이 떠올랐다. 그들 하나하나에 덧붙여진 추억이 되살아오는 것이었다. "내가 미쳤나 봐." 하고 그녀는 중얼거렸다. 그리고 땀에 젖은 이마를 손으로 문질렀다." (p.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