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로 이 게임을 끝내시겠습니까?
'모멸감'에 대해 생각해본 적 있는가. 얼핏 보면 '수치심'이나 '자괴감'과 유사한 용법으로 쓰이는 것 같지만 '모멸감'은 특히 타인에게로부터 기인한다는 것에서 차이점을 가진다. 이 책에서 정의하고 있는 '모멸'은 '모욕하고 경멸하는 것', '즉 마음으로 낮추어 보거나 하찮게 여기는 것'이라고 한다. '다른 사람을 의도적으로 또는 무심코 격하시키고 그 존엄성을 부정하는 것', 그리고 그 상대방이 느끼는 감정이 바로 모멸감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특히 한국 사회에서 두드러지는 모멸의 감정에 집중한다.
책을 읽으며 특히 흥미로웠던 부분은 '언어에 반영된 한국인의 정서 지형' 장이었다. 한국어에는 부정적인 정서를 가리키는 단어가 압도적으로 많다는 것, 특히 '화'와 '위계 질서'에 대한 표현이 많다는 사실을 처음 깨달았다. 책에 나열되어 있는 그 수많은 단어들에서 조선시대부터 이어져 온 우리 민족의 한과 분, 수치심과 억울함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이토록 화나고 서럽고 억울한가. 그리고 왜 그 부정적인 감정들을 타인에게 전가하고 투영하며 안식을 찾는가. 다음을 읽어보자.
'우리 사회에서 우리의 값어치(남의 눈에나 자신의 눈에나), 사람의 값은 권력과 부와 지위에 의하여 정하여진다. 이것들은 우리 사회가 믿는 유일한 가치이다. 다른 한편으로 이러한 가치의 추구는 사회구조가 오만과 모멸의 구조로 되어 있기 때문에 불가피한 것이 되기도 한다. 오만과 모멸의 사회체계에서 가해지는 수모를 피하며 자존심을 유지하려면 최소한도의 부와 권력과 지위를 확보하여야 하는 것이다.' (p.135)
이 글을 읽다보니 한 달 전쯤 내가 했던 우스운 행동이 기억난다. Chat GPT에 바보같은 질문을 한 것이다. 나는 현재 이런 일을 하고 있고, 자산은 얼마이고, 앞으로 이루고 싶은 어떤 꿈이 있는데 이걸 토대로 '부'와 '명예'를 모두 얻으려면 지금부터 어떻게 해야 할까. 이런 식의 질문이었다. 앞선 문장들에 비춰본다면 이러한 나의 욕망은 타인에게서 가해지는 수모를 피하며 자존심을 유지하기 위함이었다. 어쩌면 지금까지의 삶의 동력 역시 한국 사회에 팽배한 비교와 자괴감의 매커니즘에서 나왔을 것이다. 학창 시절에는 친구들보다 공부를 잘해야 한다는, 그래서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좋은 직업을 가져야 한다는 목표가 있었다. 그 후에는 모든 조건이 알맞은, 훌륭한 배우자를 만나야 한다는 기준이 따라왔다. 부모를 닮아 똑똑하고 착실한 아이를 낳아 길러야 한다는 사회적 요구는 도저히 엄두가 안나 포기해버렸다.
'우리는 행복해지기 위해 그 어느 시대보다도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행복해져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매여 사는 듯도 보인다. 그런데 우리가 추구하는 행복감의 정체는 과연 무엇인가. 그 대부분이 우월감으로 보인다. 내가 남보다 조금이라도 더 잘났다는 것을 스스로에게, 그리고 타인에게 증명하는 데서 살맛을 느끼는 것이다. 그러다가도 내가 못났다는 것이 드러나면 곧바로 불행감에 빠져든다. 비교 속에서 우위를 차지하고 그것을 인정받는 게임에 몰두하다 보면, 행복과 불행의 양극을 오가는 진자운동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리고 내게 행복감을 주는 바로 그 점이 불행의 원천이 되기도 한다.' (p.299)
저자가 꼬집고 있는 이 상황은 정확히 내 삶에 대한 비판으로 꽂힌다. 어쩌면 나는 이 오랜 시간 동안 게임을 하고 있던 게 아닌가. 가족들에게, 선생님에게, 친구들에게, 상사에게, 동료들에게 인정받는 게임. 일명 '때깔 좋은' 이미지들을 선별하여 SNS에 장식하고, 그에 대한 긍정적인 피드백으로 HP를 올리는 게임. 그 게임이 너무나 중독적인 동시에 '살맛'을 느끼게 해주니 쉽게 멈출 수가 없다. 한편으로는 재산과 지위로 은연 중에 타인의 '몸값'을 결정하고 더불어 내 몸값도 올리기 위해 주식, 부동산, 코인 등의 한탕주의에 혹하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내 인생의 일정 부분에 대해 모멸감을 느끼게 되는 상황은 잘 참아넘기질 못한다. 저자는 모멸감을 주는 방법으로 비하, 차별, 조롱, 무시, 침해, 동정, 오해의 7가지 예시를 들고 있는데 이 중에서도 특히 나에겐 '침해'가 그렇다. 이제 적지 않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소위 말해 '고나리질'이 많이 들어오기 때문이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냉정한 말 혹은 거절을 잘하지 못하는 내 성격 때문일 것이고, 대부분의 상황을 솔직하게 오픈하는 성향 때문에도 그럴 것이다. 아주 긍정적으로 보아 상대방이 진정으로 나를 생각하는 마음에 본인 딴에는 충직한 조언이라고 여겨서 말한 것일 수도 있다. 결론적으로는 아직도 그런 말들에 '긁히는' 내가 문제인 듯하다. 나 역시 '역지감지'(저자가 말한 '상대방의 입장에서 느끼는 단계')를 못하고 있지 않은가.
'상대방의 마음에 대한 상상력과 감수성이 부족하면 무심코 상처를 주기가 쉽다.' (p.190)
돌아보자. 나 또한 상대방의 입장을 충분히 공감하지 못하고, 배경 지식이나 경험이 없는 상태에서 잘못된 판단을 했던 많은 경험이 있다. 심지어는 그의 말에 내가 공격당했다 생각하고는 발톱을 세우기도 했다. 당연히 상대방에게도 상처가 날 것이고, 서로 마음을 터놓고 솔직하게 말하는 시간이 오기 전까지는 갈등 봉합이 어렵다. 비록 나와 대립각을 세우는 타인일지라도, 그의 상황과 마음을 이해하고자 하는 긍정의 상상력과 감수성이 필요하다.
'불쌍하게 여긴다는 말의 뉘앙스를 살펴보자. 얼핏 상대방의 어려움에 깊이 동감하는 듯 하지만 냉철하게 뜯어보면 열등한 존재로 대상화하고 있다. ... 행복에 대한 강박이 만연한 현대사회에서 자기보다 불행한 사람들과의 대면이나 비교는 상대적인 행복감을 가져다준다. ... 당신들의 비참을 잠시 어루만지면서 우리의 남루한 처지를 위로하는 카타르시스가 필요한 것이다.' (p.193-196)
'침해'에 이어 자신을 돌아보게 했던 키워드는 '동정'이었다. 너무나 쉽게 남을 가여이 여기는 것은 물론, 그의 열등함 혹은 불행에 비추어 내 삶의 행복감을 고양하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동정'이라는 감정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 것인가. 순수한 의미의 걱정과 배려마저도 위선적인 동정으로 여겨질까 두렵다. 갑자기 모 배우가 트위터에 썼던 글이 떠오른다. 연기의 기회가 없어서 슬퍼하는 후배를 보고 아무리 촬영이 힘들어도 본인은 연기하고 있으니 행복한 사람이라고 했던 그 말이다. 적어도 그렇게는 되지 말자고 다짐한다. 한편으로는 말을 줄여야겠다고도 생각한다. 심각한 상황에 처해있는 누군가에게는 생각 없는 리액션으로만 비칠 수도, 가벼운 태도로만 보일 수도 있는 일이니 말이다.
나이가 들수록 내 안에서 '돈'의 가치가 더 올라가고 있음을 느낀다. 외려 돈이 없었던 시절보다 지금이 더 그렇다는 것이 우습기도 하고, 어떻게든 그러지 않으려고 다짐하지만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며 분명 망치로 맞은 것 같은 순간이 있었다.
"내가 가진 것 중에서 돈을 아무리 많이 준다 해도 팔 수 없는 것이 얼마나 되는가?" (p.237)
얼핏 들으면 다 팔 수 있을 것 같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저자는 세 가지 질문을 던진다. 100억을 주는 대신, 평생 불치병을 안고 고통 속에서 살아야 한다면? 혹은 가족과 친구 모두가 나에게 등을 돌려 맘 편히 차 한잔 할 사람도 없다면? 마지막으로 평생 절대로 일이나 공부, 자기 계발을 할 수 없다면? 100억과 이 상황을 바꿀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적어도 나는 바꾸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저자가 말하고 있는 대로 돈의 진정한 목적이 무엇인지 따져볼 때다. 나에게 '좋은 삶'이란 어떤 것인가.
책에서 계속 반복되고 있는 문장은 이것이다.
'인간은 목숨을 부지하는 것 이상의 무엇을 원하는데, 바로 존재감이다' (p.62)
'자존감은 경우에 따라서 생명보다 더 귀하게 여겨진다' (p. 62)
'인간에게는 목숨 이상으로 소중한 그 무엇이 있고, 그것이 손상되거나 부정당할 때 삶의 동기를 상실한다' (p.80)
'인간에게 생명보다 중요한 것이 자존감이다' (p.210)
우리 사회가 타인의 신체나 생명을 중히 여기듯, 그들의 정신과 품위에 대해서도 응당 그래야만 한다.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명확하다. 구성원 모두가 '품위 있는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우리가 가져야만 하는 것이 있다. 바로 '모욕 감수성'이다. 인간을 인간 이하로 보는 것은 선천적인 것이 아니라 습득되었을 확률이 높다고 한다. 자신과 다르거나, 자신보다 아래에 있다고 느끼는 이들에 대한 인식 말이다. 때문에 이 습득된 인식을 해체하려는 개개인의 노력이 필요하다. 교육이 선행되어야 하고 당연히 제도적으로도 받쳐줘야 한다. 우리 사회에 만연해있는 비교와 서열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것은 쉽지 않겠지만 적어도 나 자신의 생각은 바꿔보려고 노력해야겠다. 젠더 감수성을 가지듯 모욕 감수성도 가질 것. 타인의 상황을 함부로 판단하거나 가정하지 않을 것, 그래서 내 주위 모든 사람들이 존엄하고 품위 있게 살 수 있도록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