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액스]

의자 뺏기 게임 : 단 하나의 의자만 남았을 때

by 채부장
25. 11. 22


두 달 전 즈음 영화 ‘어쩔 수가 없다’를 보았다. 이병헌, 손예진 배우가 나오는데 감독이 박찬욱이라니, 덮어놓고 봐야하는 영화 아닌가. 그만큼 기대가 커서였을까. 영화를 본 직후의 감상은 의외로 ‘굉장히’ 재미있진 않다는 것이었다. 별점에 꽤 후한 내가 왓챠피디아에 별 세개 반을 남길 만큼(심지어 이동진 평론가도 별 네 개를 주었는데) 말이다. 누군가 나에게 ‘어쩔 수가 없다’가 어땠냐고 물어보면 전작인 ‘아가씨’나 ‘헤어질 결심’만큼 재미있지는 않다고 답했다. 그런데 참 이상한 일이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이 영화가 더 생각나는 게 아닌가. 그냥 킬링타임으로 보았던 수많은 영화들과 달리 ‘어쩔 수가 없다’의 어떤 장면은 아직까지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그 중에서도 마지막 장면, 이병헌 배우가 아무도 없는 공장에서 만족스러운 얼굴로 일을 하던 씬이 자꾸 떠올랐다.


다시 생각해보면 그렇게 뇌리에 박히는 영화이기 때문에 좋은 작품이라 평가받는 게 아닐까. 박찬욱 감독이 20년 넘게 준비한 영화라던데, 그럼 이쯤에서 왜 그가 원작인 [액스]를 선택한 것인지 궁금해진다. 사실 영화를 보기 전에 미리 읽어보고 싶었는데 그 때는 쉽사리 구할 수가 없었다. 다행히 영화 개봉 후 찾는 사람들이 많아졌는지 회사 북러닝에도 올라와있어 냉큼 신청했다. 책을 읽고 영화를 보는 것도 좋지만, 영화를 보고 책을 읽으니 장면 장면들이 떠오르며 이걸 이렇게 바꾸고 끼워맞췄구나 하는 생각도 들어 꽤 재미있었다.


원작의 작가인 도널드 E. 웨스트레이크는 범죄 소설 분야에서 독보적인 작가로 평가받는다고 한다. 에드거 상을 세 번이나 수상할 만큼 뛰어난 미스터리 작가라는데 왜 지금까지 몰랐는지. 그러나 이 소설 [액스]는 지금까지 내가 읽어왔던 흔한 범죄 소설이나 스릴러 소설과는 다른 모양새를 갖추고 있다. 왜, 주인공인 버크 데보레는 낭떠러지 끝에 몰려 ‘어쩔 수가 없이’ 살인을 저지르는 가엾은 인물이기 때문이다. (‘가엾은’이라는 표현을 곧이 곧대로 받아들이진 말아주시라) [액스]는 범죄 소설보다도 사회 비평 소설에 가까우며, 중간중간에 블랙코미디와 풍자를 섞어 읽는 재미까지 더해주는 작품이다.


책을 읽다보면 이 소설이 대체 언제 쓰여진 건지 궁금해진다. 중반쯤 묘사되는 것처럼 소설의 현재 시점은 1997년이다. 버크는 ‘밀레니엄이 세상을 뒤흔들고 있다’고 말한다. 그는 밀레니엄이 다가온다는 사실로 말미암은 광기가 생산적인 사람들을 자르게 만드는 건 아닌지 생각한다. 2025년인 지금, 나는 대답해줄 수 있다. 그것은 밀레니엄 때문이 아니라 30년이 가까운 세월이 지나도록 쭉 이어지고 있는 현상인 것을. 1997년과 2025년 지금의 양태가 크게 다르지 않음을, 그래서 이 소설을 읽는 내내 등골이 쭈뼛한 기분이 들었다고 말이다. 다만 지금의 인류는 같은 인간 뿐 아니라 AI와도 싸워 이겨야한다는 것이 다르지만.


이곳 사람들 중 몇 명이나 지금 내 처지를 이해할 수 있을까? 차를 몰다보니 그런 의문이 든다. 깔끔하게 깎인 저 잔디를 떠받치고 있는 땅이 얼마나 얇고 위험천만한지 알고 있을까? 봉급날을 한 번 지나치면 불안감에 잠을 이룰 수 없다. 봉급날을 매번 지나치면 그야말로 공황 상태에 빠져버리고 만다.” (p.18)

하지만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그때도 없었고, 지금도 없다. 나는 포기하지 않고 계속 이력서를 훑었다. 그것 외에는 특별히 할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모르긴 해도 내게 이력서를 보내온 사람들 대부분이 나와 같은 상태일 것이다. 희망도 없이 꾸역꾸역 살아가는 것. 단지 특별히 할 일이 없기 때문일 테지. 우리는 상어와도 같다. 계속 헤엄치지 않으면 이대로 가라앉아버릴 테니까.” (p.50)


과연 내가 그를 죽일 수 있을까? 진지하게 묻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정당방위일 수도 있다. 내 가족, 내 인생, 내 대부금, 내 미래, 나 자신, 내 삶을 살리니까. 명백한 정당방위다. 나는 그를 모른다. 그는 내게 아무 의미가 없다.” (p.53)


최고경영자들과 그들을 그 자리에 앉힌 주주들이야말로 내 진정한 적이다. 하지만 그들은 내 문제가 아니다. 그들은 이 사회가 알아서 처리해야 할 문제일 뿐 내가 개인적으로 챙겨야 할 일이 아니다.” (p.66)


꽤 많은 문장을 인용했다. 버크 데보레가 경쟁자들을 죽이기로 결심한 이유, 그리고 그것을 태연하게 합리화하는 모습이 여실히 드러나는 문장들을 골랐다. 어린 시절 의자 뺏기 게임을 해본 적이 있는가. 사람 수보다 적은 의자를 놓고 빙글빙글 돌다가 노래가 끝날 때 의자를 찾아 앉는 놀이 말이다. 생각해보니 ‘오징어 게임’에서도 유사한 게임을 다뤘던 것 같다. (거기서는 몇 명의 그룹을 만들어 방으로 들어가야하는 형태였지만) 얼마 전 본 ‘피지컬 100 아시아’에서도 나라별로 원 안에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들어가야 하는 게임을 진행했었다. 다만 참가하는 나라보다 원의 수가 적어 어떻게든 다른 나라 선수들을 밖으로 밀어내야 했지만. 우리는 이런 게임에 익숙하다. 내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남보다 빨리 움직이고, 그것도 여의치 않으면 남을 밀어내는 게임 말이다.


‘어쩔 수가 없다’의 왓챠피디아 한줄 평 중 인상 깊은 문장이 있었다.


“작년에 대학 예비 1번에서 끊겼을 때 만수될 뻔했음 진짜로”


웃픈 문장이지만 그만큼 공감이 가기도 한다. 수능이 막 끝난 지금 시점에 더 와닿는 이야기다. 그토록 꿈꾸던 대학에 혹은 직장에 들어가기 위해 우리는 얼마나 노력하는가. 저 자리가 내 것이라면, 내 앞에 한 명만 없어진다면, 대기 번호가 1번일 때 얼마나 더 조바심이 나는지. 갑자기 박진영의 ‘니가 사는 그 집’이라는 노래가 떠오른다. ‘니가 사는 그 집 그 집이 내 집이었어야 해 니가 타는 그 차 그 차가 내 차였어야 해’…


정리 2. (땅에서) 삼림, 낡은 집, 거주자 등을 제거하는 방법으로 개척하는 것” (p.198)


버크 데보레는 대학 시절 ‘정리’의 사전적 정의를 찾아본 적이 있다. 여기서의 정리가 챗GPT에게 원어로 어떤 단어냐고 물어보니 ‘redundant’ 혹은 ‘redundancy’라고 한다. 한국어와 마찬가지로 ‘정리(해고)’라는 의미다. 요즘 인기 있는 드라마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 이야기’가 생각난다. (너무나 현실적이라고 해서 나는 오히려 보지 못하고 있지만) 거기서도 주인공 김낙수 부장이 공장 직원 해고 리스트를 인사팀에 넘기지 못하고 본인의 희망퇴직을 선택해 25년간 일한 회사를 떠나지 않는가. 이 선택이 오히려 비현실적이라며 비판을 받는 지금이다. 우리는 어떻게든 우리의 자리, 밥그릇을 지켜야 한다. 지금 살고 있는 이 안전한 땅 밖으로 제거되지 않도록 말이다.


당장 회사에서 어떤 이유를 들어 나가라고 하면 어떨까. 예상하지 못했고, 준비되지 않은 상황이라 앞이 깜깜할 것이다. 그런데 예상했고 준비했다면 괜찮을까. 아마 아닐 듯하다. 대학을 졸업하고 쭉 회사원으로만 살아와 이 울타리 밖은 어떤지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의외로 울타리 밖의 삶이 잘 맞을 수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내가 선택해 퇴사를 결정하는 것과는 천지차이일 것이다. 회사 사람들에게 농담조로 정년까지 다니고 싶다고 말하곤 하는데, 사실 자존심 구겨지는 일 없이 그럴 수만 있다면 꽤 좋은 선택 아니겠는가. 물론 이것 역시 지금의 회사 생활과 나의 삶에 충분히 만족하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이야기다.


오래 다닌 회사를 퇴사하고 나서도 갈 곳이 있다면, 내가 할 일이 있다면 그토록 절망적이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사회적 안전망이 너무 부족한 상태다. 버크 데보레처럼 급작스럽게 정리해고를 당한다면 당장의 대출과 이자, 각종 보험료, 생활비부터 걱정해야 하는 현실이니 말이다. 우리는 알고 있다. 사람들을 위한 의자가 더 많아야 한다는 사실을, 그래서 의자를 더 만들기 위해 모두가 노력해야 한다는 것도. 1997년의 문제는 2025년까지 해결되지 못하고 외려 더 심각한 상태로 흘러왔다. 누군가 도끼로 우리 모가지를 날릴까 두려워하고, 경쟁자들을 처단해야만 내 자리가 마련되는 지금의 문제를 부디 같이 해결해야 할 때다. 부디 이 전쟁에 AI만은 참전하지 말아주기를.


한때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한다는 게 부적절한 아이디어로 받아들여진 적이 있었다. 하지만 세상은 많이 바뀌었다. 우리는 그것을 믿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공공연하게 떠벌리기까지 한다. 우리 정부의 지도자들도 항상 자신들의 목적을 앞세워 자신들의 행위를 변호한다. 미국을 휩쓸고 있는 대량 인원 삭감의 폭풍에 대해 공개적으로 입장을 표명한 모든 CEO들도 같은 아이디어를 내세운다.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한다고.” (p.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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