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고된 미래, 함께 그리고 천천히
“마음이 현재에 있어야 행복하다. 마음이 과거에 있으면 후회하고 마음이 미래에 있으면 불안해한다.”
인터넷을 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봤을 글귀다. 출처가 어디인지는 모르겠지만, 아주 많은 사람들이 이 문장을 보고 공감했기 때문에 지금까지도 낡은 짤로 돌아다니는 것일 테다. 저 문장의 방점은 ‘현재’에 찍혀있지만 오늘만큼은 ‘미래’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마음이 미래에 있으면 왜 불안해질까. ‘밝고 희망찬 미래’라는 관용어구가 자주 쓰이던 과거와 달리 ‘암울한 미래’, ‘디스토피아’라는 표현을 더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요즘이다.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빠르게 발전하는 기술, 갈수록 심각해지는 환경 오염, 종교와 인종, 성별 간의 갈등 격화 등 수많은 문제들이 있으나 특히 우리 사회가 직면한 것은 초저출산, 초고령화의 문제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미래를 불안하게 만드는 커다란 이유다.
나 역시 노년의 모습을 상상하면 불안한 마음이 먼저 든다. 아마 현 시대를 살아가는 보통의 사람이라면 대개 그럴 것이다. 우리는 조금이라도 덜 불안한 노년을 맞기 위해 연금 저축을 알아보고, 미국 ETF에 장기 투자하고, ‘영끌’해서 부동산을 구입하기도 한다. 비단 금전적인 부분만이 아니다. 중년 이후로 진짜 부자는 ‘근부자’라 했던가. 노년의 나를 지탱해줄 근육을 키우기 위해 바지런히 운동한다. 헬스, 러닝, 필라테스, 요가, 등산, 수영… 세대를 막론하고 운동에 열광한다. 하지만 노후의 여유 자금이 충분해도, 열심히 운동을 해서 건강한 몸을 오랫동안 유지한다고 해도 결국 누구에게나 80세 이후의 노년은 찾아온다.
“일본은 이미 2015년 80세 이상 인구가 1,000만명을 넘어섰다. 개인 차이는 있지만 후기고령자인 75세를 넘기면 생활의 질에 영향을 줄 정도로 체력이 떨어진다. 80세가 넘으면 그 비율이 급격히 상승하는데, 4명 중 1명이 근육량과 신체 기능이 저하되는 ‘사르코페니아’ 의심자라고 한다. 이처럼 남의 도움 없이 고령자가 오롯이 혼자서 일상생활을 영위하는데 80세의 벽은 결코 낮지 않다.” (p.33)
아주 기본적인 일과조차 혼자 해낼 수 없게 되어 누군가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삶. 돌봐줄 사람이 없어 고독하고 외로운 고령자가 되는 것. 우리가 두려워하는 것은 그러한 미래일 것이다. 행복하고 건강하게 나이들 수만 있다면 장수를 겁낼 이유도 없지 않은가. 2024년에 태어난 아이들의 기대수명은 무려 83.7세라고 한다. 역대 최고의 기대수명이며 세계적으로도 최상위권에 속하는 수치다. 의학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이 기대 수명을 훨씬 넘기는 이들도 많아질 것이며, 나 역시 그럴 수도 있다 생각하면 눈 앞이 깜깜하다. 해서 [초고령사회 일본이 사는 법]의 저자는 우리보다 앞서 초고령사회를 맞이한 일본의 사례들을 통해 이 막연한 불안감을 함께 타파하고자 한다.
일본은 이미 스타벅스 치매카페, 슬로 계산대, 고령 근로자 매뉴얼, 기저귀 없는 요양원, 커뮤니티 케어 등의 다양한 방식으로 초고령사회에 대처하고 있다. 국가적인 지원부터 지역사회의 노력까지 당장이라도 벤치마킹할 부분이 많아보인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가장 선제적으로 시행되어야 할 것은 우리 모두의 인식을 바꾸는 일이다. 책의 1부 첫 장의 제목인 ‘함께 그리고 천천히’처럼 말이다. 얼마 전 트레바리의 소규모 모임에서 ‘노인 혐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노인에 대한 혐오를 가질 수 밖에 없는-물론 모든 ‘나이든 사람’에 대해서라는 것은 아니다-지금의 현실에서부터 그러한 혐오의 예시, 그리고 이것을 타파하려는 각자의 방식에 대해서였다. 우리와 다른 시간, 혹은 세대를 겪어온 노인들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많은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20대, 30대인 우리가 그들을 모두 이해하지 못하는 것처럼 아랫 세대 역시 노인이 된 우리를 그리 여길 것이다. 서로가 서로를 혐오하지 않으려면 이 시대, 이 공간을 ‘함께’ 살아가야만 한다는 사실을 필히 인지하고 조금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는 여유를 가져야 할 것이다. 쓰고 보니 늘 듣는 지하철 안내 문구 같은데, 실제로 그래야하는 일이니 그대로 적어두겠다.
“인간은 누구나 언젠가는 늙고 죽는다. 아기를 낳아 기르는 것이 정말 힘든 일이듯 노인 또한 그리 간단하게 죽지 않는다. 갑작스러운 사고나 심장발작이 아니고서야, 누구든 길든 짧든 누워서 일정 기간 누군가의 수발을 받아야 한다. 이런 사실을 부정한다면 정말 살벌한 세상이 될 것이다. 노인뿐만 아니라 신체장애를 가진 사람에 대한 차별로 이어질 수도 있다. 약자를 보살필 수 있는 사회가 되어서야 비로소 선진국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P.263 소설가 가키야 미우 인터뷰 중)
내가 생각하는 행복한 노년은 이렇다. 70대가 되어서도 사회에서 배척당하거나 소외되지 않고 어딘가에 속하여 다른 이들과 교류하는 삶이라면 좋을 것이다. 여유 자금이 충분히 있더라도 나 자신을 위해, 혹은 사회에도 기여할 수 있는 일을 할 수 있다면 금상첨화다. 앞서 말한 80세의 벽을 넘지 못해 거동이 어려워진다면 사람보다 따뜻하고 친절한 로봇의 돌봄을 받는 것 역시 좋겠다. 그보다 더 원하는 것은 건강하게 살다가 죽음의 순간을 스스로 결정하는 일이다. 만약 지금부터 50년이 지나 내가 80대 후반이 될 때 즈음엔 우리 나라도 네덜란드처럼 안락사를 인정하게 될까. 최대한 부작용이 없도록 수많은 논의를 거쳐야겠지만 반드시 그랬으면 좋겠다. 존엄하게 죽을 수 있다면 이 길고 긴 생애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을 내려놓고 더 열심히 살아낼 수 있지 않겠는가.
다시 30대의 나로 돌아와 작금의 문제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70대, 80대와 같은 초고령의 나이로 접어들기도 전에 당장 희망퇴직의 위기 앞에 서 있는 직장인들 말이다. 오래 사는 만큼 오래 일해야 하는데, 과거 세대에 비해서도 고용이 불안정한 현실이다. 일본 역시 유사한 갈등과 조정 과정을 거친 것으로 보인다.
“2021년 4월 일본 정부는 정년 연령을 70세까지 끌어올리는 등 고용 연장 정책에 여념이 없었다. 정년 연장이 대세인 이런 상황에서 한 유명 기업 CEO가 온라인 강연에서 ‘45세 정년제’를 제기하면서 일본 열도가 발칵 뒤집혔다.” (p. 52)
“45세는 인생의 분기점이다. 그리고 자신의 삶을 재고하는 일은 중요하다. 자신의 인생에 대해 생각하고 공부해야 한다. 현재의 사회보장제도는 70년대 고도 성장기에 기초한 제도다. 이제는 종신고용과 연공서열로 대표되는 일본의 고용제도에서 벗어나야 한다. 45세 정년제는 인재가 성장산업으로 흘러 들어가는 것을 촉진시켜 회사 조직의 신진대사를 좋게 할 것이다.” (p.53)
심지어 2012년 일본 국가전략회의 보고서에는 ‘40세 정년제’가 담겨있었다고 하지 않는가. 이 책을 읽을 때까지만 해도 40세 정년제가 웬 말인가 했는데 요 며칠 새 희망퇴직에 대한 기사가 쏟아지는 걸 보니 남의 나라 이야기만은 아닌 듯하다. 당장 ‘희망퇴직’으로 검색해보니 첫 페이지에만도 현대모비스, 이마트24, LG화학, SBS, 아모레퍼시픽, 롯데컬처웍스 등 내로라하는 대기업들의 이름이 줄줄이다. 규모가 상대적으로 작은 우리 회사 역시 공식적으로는 아니어도 알게 모르게 퇴직자를 받고 있다. 일례로 아모레퍼시픽의 희망퇴직 기준은 근무한 지 15년 이상인 자 혹은 45세 이상의 경력 입사자다. 내후년이면 나의 근속 연수도 꽉 채운 15년인데, 이대로라면 40세가 되기 전에 희망퇴직 대상이 되는 건 아닐지 내심 걱정이다. 사실 앞서 45세 정년제를 주장한 산토리홀딩스의 니나미 다케시 사장 말이 틀린 것은 아니다. 45세 전에 삶을 재고하여 제2의 인생을 준비하자는 취지는 좋다. 그러나 그 주장은 다음 단계로의 고용이 안정적인 사회여야 한다는 전제 하에서만 유효하다. 양질의 일자리가 충분하여 다른 직업으로도 유연하게 넘어갈 수 있는, 그래서 사회적으로도 개인에게도 모두 긍정적인 방향이 되도록 말이다. 아무런 대책이나 사회적 안전망 없이 고용중단만 일어난다면 초고령화 사회의 미래는 암울하기만 할 것이다.
모두에게 공평하게 주어지는 단 한가지는 시간이라고 했다. 우리는 모두 나이를 먹고 언젠가는 노인이 된다. 반드시 맞이할 그 미래가 결코 불안하거나 두렵기만 하진 않도록 최선을 다해 방어 진지를 구축해야할 것이다. 회사를 다니면서도 다른 미래를 설계해야하고, 오래도록 건강한 몸을 유지해야하고, 시간이 지나도 함께 할 만큼 소중한 사람들을 곁에 두어야 하고, 비단 내가 아닌 다른 이들도 존중받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이미 미래는 예고되어 있다. 그러니 우리 모두가 함께 할 노력만이 남은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함께 그리고 천천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