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두 달하고도 열흘이 지났다. 마지막으로 서평을 쓰고 다시 글을 쓰려고 앉은 지금 이 순간까지 말이다. 핑계를 대자면 연말이었고, 팀을 옮기는 등의 큰 변화가 있었고, 푸켓으로 휴가를 다녀왔고, 새해였고, 또 생일 주간이었고 블라블라. 이런저런 말들은 다 됐고 그저 책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그러니 글을 쓰는 일은 얼마나 요원했겠는가. 올해는 분명 50편의 글을 써보자, 호기롭게 다짐했는데 아무래도 너무 높은 목표를 설정했지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시작해보려 한다. 너무 공들이지 말자, 너무 애쓰지 말자, 보태지 말고 꾸미지 말고 그저 생각한대로, 그럭저럭 별로여도 괜찮으니.
나의 책태기를 끝내게 해준 책은 김애란 작가의 신간 소설집 [안녕이라 그랬어]다. 소설가 50인이 뽑은 '올해의 소설'(발간된 2025년 기준이다)이며, 작가가 2019년부터 2024년까지 발표한 단편이 총 일곱 작품 수록되어 있다. 당연히도 통찰력 있고 뛰어난 소설들이나 무엇보다 재미있다. 게다가 이번 소설집의 이야기들은 김애란 작가의 어떤 작품보다도 지금의 내 삶과 닿아있는 부분이 많아 신기했다. 그러고 보니 김애란 작가가 몇 년생이던가, 포털에 검색해보니 1980년생이라고 한다. 훌륭한 작가와 동시대를 살아간다는 즐거움이 이런 것일까. 그녀와 조금이나마 유사한 생각의 흐름을 가지고 무언가를 공감할 수 있음에 한편으로는 기쁘다.
나에게 이 책을 단 한 단어로 표현하라고 한다면 아마 '미묘함'이라는 단어를 고르게 될 것이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나를 관통했던 감정이며, 책의 일정 장면마다 현실에서 맞닥뜨렸던 미묘한 순간들이 떠올랐다. 특히 인상 깊게 읽었던 세 번째 단편 '좋은 이웃'의 한 구절을 보자. 윗집으로 이사올 신혼부부가 인테리어 공사를 위해 입주민 동의를 받으러 온 후, 화자와 남편이 나누는 대화다.
-자기들이 산 건 아니겠지?
-뭘?
-집 말이야. 둘 다 넉넉잡아도 삼십대 초반으로밖에 안 보이던데. 우리도 그렇지만 그 나이에는 절대 못 살 액수잖아? 요즘 같은 때.
남편이 잠시 침묵하다 대꾸했다.
-부모가 해줬나보지. ... 인상은 어때?
나는 허공을 향해 두 눈을 깜빡였다.
-아직 사회 때 덜 묻고... 주류로 오래 살아온 인상?
그런 뒤 종이가방 입구를 벌려 그 안의 어둠을 빤히 응시하다 스스로도 깜짝 놀랄 말을 했다.
-이거, 세계과자점에서 이천 얼마면 사는 거네. 다 합쳐도 스물몇 가구인데, 자기들 집값에 비해 너무 약소한 거 아니야? (p.102-103)
몇 주 전 주말 아침, 나도 유사한 일을 겪었다. 평소에 누가 잘 찾아오지도 않는데 초인종 소리가 들려 덜컥 겁이 났고, 닫힌 문을 사이에 두고 누구세요를 몇 번 외치고 나서야 아랫집인 걸 알았던 기억. 문을 빼꼼 열어보니 젊은 남자 두 명이 인테리어에 대한 입주민 동의서를 받고 있었다. 사인을 하고 나서는 물티슈와 비타민 음료, 쓰레기 봉투를 받았다. 똑같은 상황이었고, 마찬가지로 세를 살고 있음에도 내가 화자와 같은 감정을 느끼지 않았던 이유는 뭘까. 신혼부부가 아니어서? 그들이 과하게 친절했어서? 아니다. 내가 살고 있는 이 아파트가 서울 중심의 대형 신축 아파트가 아니어서다. 집값이 과하게 비싸지 않고, 그래서 입주민들이 나와 크게 다르지 않은 삶을 살아서다. 화자와 완벽하게 똑같은 상황에 놓였다면 나 역시 내 안의 어둠을 빤히 들여다보다 생각지도 못할만큼 못된 말을 뱉었을 것이다. 소설 속 신혼부부가 승강기에 붙여둔 안내문의 '좋은 이웃이 되겠습니다'라는 마지막 말은 과하게 천진하고 순진무구해보이기 때문에, 그래서 상대방으로 하여금 더 비참한 기분을 느끼게 하기 때문이다.
같은 소설에서 화자는 '독서 교사'로 일하고 있다. 그녀는 시우라는 학생의 집에 직접 가서 수업을 진행하는데, 그것은 시우가 초등학교 삼학년 때 교통사고를 당해 다리를 쓰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흔히 그렇듯 그녀는 일견 시우와 그 아이의 가정 형편을 동정하는 듯 보인다. 현관과 발코니 벽에 실금이 있는 오래된 아파트. 플라스틱 소변통들이 놓여 있는 화장실. 그래서 화자는 본인이 어려웠을 때조차 시우의 수업료를 올리지 않았다. 그러나 소설은 그녀를 그대로 놔두지 않는다.
-선생님, 저희가 다음달에 이사를 가게 됐어요.
-아...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도 비슷한 상황이라 누구보다 시우네 사정에 깊이 공감할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다른 때라면 학부모에게 잘 하지 않았을 말을 했다.
-요즘 같은 때 집 구하기 어려운데, 고생하셨겠어요.
시우 어머니가 그런 나를 멀뚱히 바라보다 약간 수줍고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그게 아니고 저희가 저기 옆 동네에 새로 생긴 아파트에 들어가게 됐어요. (p.128)
지금까지 화자의 발자취를 따라 시우네의 형편을 함께 동정해왔던 나는 무언가로 가슴을 깊이 찔린 것 같았다. 나보다 어려워보였던 사람이, 불쌍해보였던 누군가가 사실은 저 위에 서있었음을 깨달은 순간. 누가 누굴 감히 동정하겠는가. 하지만 그보다 훨씬 더 충격적인 것은 숨쉬듯 자연스럽게 위와 아래를 나누고 있었던 자신을 마주할 때였다. 그래서 오랜만이었다. 가슴에 통증이 일 만큼 깊숙이 찌르는 소설은. 그렇게 찔러놓고서는 내 눈을 가만히 들여다보는, 내 마음을 빤히 쳐다보는 듯한 글 말이다. 그리고는 되물어온다. "넌 어때? 넌 어떻게 생각해? 너도 그렇지? 영락없지?"
나는 시우의 투명한 질문에 한번 더 폐부를 찔린 기분이었다.
-선생님은 남의 집 많이 가봤죠? 어때요? 다 다르죠? 정말 그 집이 행복한지 아닌지 다 보여요? (p.124)
꽤 많은 분량을 할애해서 '좋은 이웃'에 대해 이야기했다. 아마 일곱 편의 소설 중 내가 가장 충격적인 감정을 느낀 작품이어서일 테다. 마지막 소설 '빗방울처럼'도 유사한 주제인 '집'에 대해 다루고 있다. 우리가 땅에 발을 붙이고 살 수 있도록 하는 공간이자, 그 자체의 가격표로 주인의 재력과 등급을 나타내는 곳, 누군가의 열망이자 집착의 대상-강하늘의 영화 '84제곱미터'를 보자-, 그래서 더이상 집은 단순한 의미로서의 집이 아님을. 이 소설들이 쓰인 지난 몇 년과 지금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으니 앞으로도 우리는 집의 무게에서 쉽사리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어느 날 직장 동료가 "그럼 더 상급지로 간거야?"라 물었을 때 쉽게 대답 못한 건, 요즘 부동산 채널에서 유행하는 상급지니 하급지니 하는 말도 그때 처음 들은데다 순간 자신이 개천의 물고기가 된 기분이 들어서였다. 거주지에 따라 '급'이 아니라 '종' 자체가 나뉘는. (p.260)
신형철 문학평론가의 말을 빌리면 이 책의 주제는 '돈과 이웃'이다. 더불어 그는 김애란 작가를 '사회학자'라고 규정하기까지 한다. 그만큼 이 소설집이 현재 한국 사회를 통찰력 있게 바라보고 있다는 뜻일 것이다. 들여다볼 여유조차 없어 미처 깨닫지 못했던 우리의 일그러진 마음, 혹은 상처, 어두운 눈빛 같은 것 말이다. 나는 '홈 파티'에 등장한 '이연'이 되어 보이지 않는 계급 속에서 긴장감과 미묘한 불편감을 느낀다. '숲속 작은 집'의 '은주'가 되어 돈과 비용, 댓가에 대한 고찰에서 헤맨다. '이물감'의 '기태'가 되어 내장의 관상을 곱씹어보고, '레몬케이크'의 서점 주인 '기진'이 되어 아픈 엄마와 서인주 작가 사이에서 조바심 낸다. 소설 속 주인공들은 마치 나의 단면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결국 내가 꿈꾸는 인간의 모습은 '빗방울처럼'에서 주인공 '지수'에게 질문을 건네는 도배사와 같다. 돈이 최대 가치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작금의 세상에서도 최소한의 정직함과 따뜻함으로 이웃의 안부를 물을 줄 아는 사람 말이다. 그래서 묻는다. 당신에게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