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월요일, 놀라운 발견을 했다. 이 발견은 독서에서 비롯된 것이다. 최근에 책 두 권을 동시에 읽고 있다. 읽던 책 중 하나는 일본의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친근감을 위해서 이하 미스타 무로 칭하겠다)의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한국의 소설가 최민석(※역시 친근감을 위해서 이하 미스타 최로….)의 것이었다. 돌아가며 두 사람의 책을 읽던 중, 어느 순간 이들의 공통점을 찾아내어 버렸다. 깊은 통찰에 글을 읽으시는 분들 모두 깜짝 놀라실 수 있으니 기대하시라.
첫 번째, 그들은 아시아인이다. ‘이게 뭐야?’ 싶으시겠지만 끝까지 읽어 주시라.
두 번째, 그들은 글을 쓴다. 점점 그럴듯해진다.
세 번째는 소름이 돋는 발견이다. 아마 본인들도 인지하지 못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미스타 무는 에세이에서 자신의 신체적 비밀을 한 가지 적었다. 미스타 최 역시 동일한 비밀을 숨기고 있었다. 유수의 소설가들이 가지고 있는 공통적인 신체적인 특징은 무엇일까? 그것을 가져야만 글을 잘 쓸 수 있게 되는 것일까? 궁금해할 분들을 위해 공개한다. 그것은, 둘 다 살이 잘 찌는 체질이라는 것이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더욱 까무러치게 놀라버렸다. 그들이 공유하는 모든 공통점을 나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가끔 체중 관리가 괴로워서 타고난 체질에 대한 비탄에 잠기곤 했다. 하지만 삼십 대 중반이 되어서야 비로소 이 체질의 좋은 점 한 가지를 찾아내고야 만 것이다. 그렇다. 나는 좋은 작가가 될 자질을 갖추고 있었다. 서둘러 미스타 무와 미스타 최의 사진을 확인했다. 둘 다 통통한 볼살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거울을 보았다. 볼이 햄스터의 먹이 주머니처럼 오동통했다. 이럴 수가. 혹부리 영감의 혹이 노래 주머니였듯이, 볼살은 사실 이야기 주머니였던 것이다.
개인적인 경험으로, 살이 쪘을 때는 서글픈 일이 많았다. 밥 한 끼 사주지 않았으면서 체중을 이유로 핀잔을 주는 사람들이 꽤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음속에 울분과 한이 생겨났다. 이러한 감정들은 마음속에 저장되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이야기 주머니인 볼에 저장되는 것이다. 그리고 볼에 저장된 응어리는 글로 해소해야 풀 수 있게 된다. 어쩌면 그러한 이유로 쉽게 체중이 늘어나는 체질을 가진 사람들은 글을 쓰게 되는 것일까.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는 1) 살이 쉽게 쪄야 하고 2) 그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아야 하며 3) 스트레스는 볼에 저장되어야 하고 4) 볼에 쌓인 감정들을 풀어내는 차원에서 글쓰기를 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나를 두 사람과 공통점이 있다고 엮는 것은 조금 쑥스럽다. 하지만 기왕 창피한 김에 더 뻔뻔해져 보기로 한다. 그래서 무라카미 하루키, 최민석 그리고 나를 ‘우리’라고 칭하기로 했다. ‘우리’는 프리메이슨보다 은밀하게 볼살로 연대하고 있다. 그들의 소중한 이야기 주머니는 신선한 소재와 신 내린듯한 글발을 가져다주었다. 그렇다면 나의 볼살도 언젠가는 영감을 가져다줄 수도 있다. 스스로의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서, 기대감으로 부푸는 밤이다. 오늘 밤에도 볼이 바람에 스치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