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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랑 Dec 29. 2023

글쓰기 수업

어떤 어른이 되고 싶냐 하면...

 

 이십 대의 나는, 삼십 대가 되면 인생이 끝나는 줄 알았다. 그 시절에는 ‘청춘’이라는 말이 너무나 버겁게 느껴졌다. 모두가 염불처럼 청춘에는 하고 싶은 일을 다 해야 한다는 둥, 이 시기를 허투루 보내면 안 되는 것처럼 떠들어 댔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젊은이들에게 용기를 주려고 한 말인 것 같지만, 나와 같은 겁쟁이는 청춘을 제대로 누리고 있지 못하는 것 같아 조바심만 났다. 나의 취향이 뭔지 알지도 못했고, 남들이 좋다는 건 다 흉내 내야 했다. 청춘이라는 이유로 특별함을 기대했던 일상은 때때로 아니 언제나 시시했다. 이 시절이 가장 빛나는 시기라고 하는데, 이후에는 얼마나 빛이 바랜 채로 살게 되는 건지 좌절뿐이었다.


 근래에 글쓰기 수업을 다니기 시작했다. 평소 글쓰기에 관심이 있기도 했거니와, 가장 좋아하는 작가의 글쓰기 수업이니 갈 수 있을 때 가야겠다고 마음먹었기 때문이다. 글쓰기 수업에서는 동기생들의 에세이도 세 편씩 감상할 수 있었다. 내가 모르는 이들의 생각을 엿볼 수 있다는 것이 글쓰기 수업의 즐거움 중에 하나였다. 총 다섯 번의 글쓰기 수업이 분수령을 지나는 세 번째 시간이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남들이 쓴 숙제를 펼쳐보았다.


 그중에서 내 마음을 사로잡은 글이 있었다. 마도로스였던 친구의 사랑 이야기였다. 글에서 연륜이 묻어 나왔고 우리 세대에는 없는 서정적인 분위기가 느껴졌다. 한 편의 아름다운 연애 소설을 읽는 듯했다. ‘나는 왜 이런 글을 쓰지 못할까?’ 첫 번째 이유는 경험이 부족한 탓이다. 그렇게 생각하다 보니 내 친구 중에는 단 한 명도 뱃사람이 없다는 사실에 친구들이 원망스러웠다. 나의 다채로운 글쓰기를 위해서 한 명 정도는 승선을 해줄 법도 한데 말이다. 그리고 두 번째 이유는 필력이 부족한 탓이다. 경험을 아름다운 글로 녹여내는 필력에, 글을 쓴 사람이 부러워졌다. ‘누가 이 글을 쓴 걸까?’ 나는 교실을 둘러보았고, 어렵지 않게 누가 썼는지 알아낼 수 있었다.


 항상 수업이 끝나면 강의실에 남았다. 좋아하는 작가의 수업인지라, 사인받을 책을 바리바리 들고, 선생님과 말 한마디라도 더 해보고 싶어서 사인해 달라고 매달리곤 하였다. 그리고 언제나 함께 교실에 남아 선생님과의 면담을 기다리시는 분이 계셨다. 수강생들이 사인을 받는 것을 한참을 기다리다가, 선생님께 질문을 하시는 노신사 분이었다. 그분은 컴퓨터 사용에 익숙하지 않으신지 선생님께 수기로 글을 보내도 되느냐고 상담하셨다. 남과 다른 크기의 인쇄물의 글씨, 그리고 글 속에서 밝혀진 화자의 나이 때문에, 그분의 글이라는 것을 쉬이 짐작할 수 있었다.


 세 번째 수업이 끝나고 우리는 여느 때처럼 강의실에 남았다. 용기 내어 그분께 말을 걸었다. 글을 너무나 잘 보았고 우리 세대에는 없는 낭만이 있다고 느꼈다고 말이다. 그분은 고맙다고 말씀하시며, 자기도 이런 곳이 아니면 젊은 세대의 이야기를 들을 수 없어서, 이 글쓰기 수업이 귀한 시간이라고 말씀하셨다. 컴퓨터로 글을 쓸 줄 몰라 손으로 글을 쓴다고 하신 그분은, 가벼이 손을 떨고 계셨다. 손을 떠는 불편함을 감수하면서도 적어내고 싶은 이야기들. 시간은 생각하는 사람을 경험으로 무르익게 해 준다.


 삼십 대가 되었지만 인생은 끝나지 않았다. 오히려 이십 대보다 더 만족스럽다. 취향도 생겼고, 남이 하는 걸 굳이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삼십 대가 되면 죽어야 하는지 알았던 어린 시절의 내 모습이 철딱서니 없게 느껴진다. 그리고 노년에는 어떤 모습이 되고 싶은지 상상해 보았다. 본인보다 어린 작가에게 피드백을 받으며, 끊임없이 배우고 성실하게 글을 쓰는 분이 떠올랐다. 그리고 소망했다. 나이가 들어서도 배움을 멈추지 않고, 마음속에 많은 이야기를 품은 어른이 되고 싶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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