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자에게 가장 필요한 것

by 너랑

21세기 여행자로서 여행지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여행 경력 n년의 베테랑 여행가로서 단언컨대 그것은 유심이라고 말하고 싶다. 현대인에게 스마트폰은 무엇인고 하면 신체의 일부이다. 어쩌면 그 이상인지도 모른다. 인터넷 없이 어떻게 여행지에서 길을 찾을 것인가? 음식은 어떻게 배달시켜 먹을 것인가? 택시는 어떻게 탈 것인가? gln 결제는 또 어떻게 하고?


이러한 이유로 치앙마이의 첫날, 첫 번째 일정으로 유심을 사기로 했다. 님만해민의 큰 쇼핑몰인 마야몰의 AIS에 가서 유심을 사야지. 마야몰의 오픈 시간은 10시. 고로 천천히 준비를 해 9시 50분부터 설렁설렁 걸어가면 된다. 이토록 철저한 계산 끝에 열 시 정각에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마야몰 앞에 도착했다. 역시 시간을 칼같이 맞추는 베테랑다운 면모다. 열 시가 되어 직원이 레드카펫을 깔아주듯 문을 열어주자마자 시상식에 온 배우처럼 3층의 AIS로 올라갔다.


하나 이게 웬일인가? AIS 매장의 셔터가 내려가 있는 것이 아닌가? 아뿔싸. 안내를 보니 AIS는 11시부터 연다고 한다. 빨간 머리 앤은 말했다. 생각한 대로 되지 않는 건 정말 멋지다고. 그래서 당황하지 않기로 한다. 그래. 여행도 마음대로 되지 않아 더 재밌지 않은가!


고로 아침 식사부터 하기로 했다. 치앙마이의 유명한 지역 음식인 카오소이 맛집에 가기로 했다. 20분 정도 걸어 도착한 그곳에서 동요의 가사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온 세상 어린이들 다 만나고 오겠네가 이런 뜻이구나. 카오소이를 먹겠다고 다양한 인종과 국적을 가진 사람들이 디즈니 랜드라도 온 듯이 늘어서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치앙마이에 오지 못한 2년 동안 이 집은 더더욱 유명해진 모양이다. 도저히 11시까지 먹을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아서, 옆 집에서 망고스틴만 사서 다시 마야몰로 돌아가기로 했다.


11시에 겨우 맞춰간 통신사. 날 맞아주는 직원이 친절하다. 무슨 일로 왔냐고 하여 유심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태국의 미소라고 불러도 될 만큼 환하게 웃으며 여권을 가져왔냐고 물어본다. 나는 한국의 썩소라고 불러도 될 만큼 당황하여 당연히 안 가져왔다고 했다. 젠장.


그래서 두 번의 허탕 끝에 처연히 집에 돌아왔다. 유심사기 무척 힘들다. 역시 귀한 것은 고생스럽게 얻는 것이다라고 스스로를 달랜다. 와이파이가 잡힌 김에 카카오 톡을 열어본다. 치앙마이 여행 정보방에서 강퇴를 당했다. 유심이 없어서 닉네임을 바꾸라는 방장의 메시지를 확인 못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이토록 일사천리로 돌아가니 열도 받고 배도 고파서 옥수수 쏨땀을 시켜 먹었다. 한국 사람으로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전 세계에서 매운맛에 가장 강하다고 믿고 있다. 하지만 태국인들도 한국인들과 매운맛 견디기 올림픽에서 금메달 은메달을 놓고 겨룰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 쏨땀이 매웠다. 그것도 뒤지게 매웠다. 밥을 먹으면 이 매운맛이 중화되겠지 기대하며 찰밥을 베어 물었다. 뜨거운 밥알이 쏨땀으로 자극된 혀를 인두처럼 지져주는 것 같다. 눈물이 핑돈다. 하지만 또 맛이 있어서 한번 더 쏨땀을 먹는다. 그러나 너무 매워서 찰밥을 먹는다. 그런데 찰밥때문에 혀가 더 아파져 물을 한 바가지 먹는다. 결국 식사동안 가장 많이 먹은 것은 물이 되어버렸다. 사실 평소에 물을 잘 안 마셔서 물 마시려고 쏨땀 먹은거다. 정말로.


옥수수 쏨땀, 맛있지만 디지게 맵다.


이렇게 별로 한 일도 없이 얼레벌레 치앙마이에서 첫날이 지나간다. 하지만 교훈을 많이 얻었으니 여행자로서의 내공이 한 뼘 성장한 것이 아닐까? 라고 엉망진창 오늘을 아름답게 포장해본다.



오늘의 교훈:

1. 유심을 살 때는 여권을 챙기자

2. 맛집은 오픈런하자

3. 태국의 매운맛을 얕보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