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하지만 확실한
동사무소 앞에는 너른 공터가 있었다.
보통은 도로를 사이에 두고 아랫마을 윗마을 아이들이 따로 놀았지만, 그 동사무소 앞에서만큼은 아래위 마을 아이들이 한마음이 되어 한데 뭉쳐져 놀았다.
6살까지 다닌 유아원이 바로 그 공터 한쪽 옆에 있었고, 거기서 골목길을 따라 쭉 들어가면 내가 다니던 교회가 나왔다.
동사무소 앞 공터는 아이들이 달리기 계주 하는 곳이었고, 돌멩이를 모아 공기놀이를 하는 곳이었다. 손등과 양볼이 빨갛게 터도 아픈 줄도 몰랐다.
그곳은 내게 온 세계나 마찬가지였다.
거기서 동네 친구들과 뛰어놀 때만큼은 낮이고 밤이고 상관없었다.
<응답하라 1988> 드라마에서처럼 “덕선아! 밥 먹어!”라며 엄마가 부르러 오지도 않았다.
우리는 해가 지면 각자 알아서 뿔뿔이 흩어져 집으로 갔다.
네 살 때부터 해가 뜨면 유아원에 가고, 선생님께서 손잡고 도로만 건너주면 알아서 집까지 걸어갔다.
해가 떠 있는 동안은 골목이든 동사무소 앞이든 어디서든 뛰어놀았다. 해가 지면 집에 가 씻고 밥 먹고 잠을 잤다.
시간 관리 같은 건 알 필요도 할 필요도 없는 삶이었다.
그 공터엔 언제나 햇살이 가득했고, 내가 걸었던 골목길에도 늘 밝고 따뜻한 햇살이 가득했다.
뽑기에 늘 실패해도 신나게 들고뛰었던 칼모양 꽃모양 사탕에 행복했던 곳.
뛰다가 넘어져 다친 무르팍의 흉터는 아직도 남아있지만, 그 흉터는 늘 따뜻하고 밝게 빛나는 그 시절의 추억도 함께 떠오르게 한다.
아이였던 나의 시간은 무한대 같았는데, 두 아이의 엄마가 된 나의 시간은 하루 24시간이 늘 부족하다.
특히 독서지도사가 되기로 결심한 뒤로 그렇지 않아도 부족했던 시간은 마치 줄어든 옷처럼 더 짧게 느껴졌다.
두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낸다 해도 아직 어린 둘째를 오랫동안 맡기긴 어려웠다.
갓 돌이 지난 둘째는 “오늘은 엄마랑 산책하고 갈래요.”라며 어린이집 가는 시간을 어떻게든 늦추고 싶어 했다.
다행히 가지 않겠다며 울고불고하진 않았지만, 이미 가기 싫은 마음이 가득한 아이를 억지로 보내기도, 오랫동안 맡기기도 힘들었다.
동네 한 바퀴를 돌며 산책을 끝내고 두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나면, 집으로 돌아와 공부를 시작했다.
집안일은 일단 못 본 척했다.
집안일은 시작하면 끝이 안 나기 때문에 최대한 미루고 짧게 대충 끝내기로 했다.
독서지도사 공부는 오프라인과 온라인 두 과정 중 한 가지를 선택할 수 있었지만, 오프라인 수업을 들으려면 오가는데 시간이 많이 들었다.
온라인에 비해 수강료도 비쌌다.
나는 시간과 돈, 둘 다 없었기 때문에 온라인 수업을 듣기로 했다.
온라인 수업의 수업료도 큰돈이었기에 망설였다.
하지만 그 자격증만 따면 돈은 어떻게든 벌 수 있을 거라 생각해서 나름 과감하게 결제를 했다.
두 아이가 어린이집에 있는 동안 최대한 집중해야 했다.
한 번에 합격해야 한다는 일념으로 대학 때도 열심히 하지 않았던 공부를 뒤늦게 하기 시작했다.
수험생의 마음으로 집중했다.
아무리 읽어도 외워지지 않는 여러 개념들을 보면서 이래서 공부도 어릴 때 했어야 했나 싶었다.
머릿속에 구겨 넣은 지식들이 자꾸만 달아나는 것 같았다.
아무도 지켜보고 있지 않은 그 시간에 집중하기란 왜 이리 힘든지.
집안일의 유혹, 놀고 싶은 유혹을 뿌리치기 위해 애썼다.
'두 번은 없다. 기회는 지금뿐이다. 아이들이 집에 돌아오는 순간 공부도 끝이다'
는 생각으로 최대한 집중하려고 노력했다.
한편으로는 공부를 하면서 희열도 느꼈다.
배우고 있는 모든 지식들은 분명 우리 아이들에게도 필요한 내용이었다.
이건 일석이조, 꿩 먹고 알 먹고, 도랑치고 가재 잡고 아닌가? 생각하면서 신나 하기도 했다.
40여 일을 공부한 후 자격증 시험에 도전했다.
필기와 실기 시험이 있었는데, 필기시험은 독서지도를 할 때 필요한 다양한 지식들을 묻는 문제였고, 실기 시험은 실제 수업을 진행할 수 있는 계획안을 만들어보는 것이었다.
그간 들인 노력이 배신하지 않아 한번에 합격했다. 그리고 나는 발걸음도 당당하게 공부했던 독서토론논술 회사의 지부 사무실을 찾아갔다.
감사하게도 바로 일을 시작할 수 있었다.
하루 24시간이 부족한 두 아이의 엄마는 이렇게 시간을 관리했다.
최우선 순위만 생각하기.
시간관리 방법들을 보면 다양하다.
이런저런 계획표들도 많다.
하지만 나의 시간관리 방법은 단순했다.
목표를 위한 행동에 가장 집중력 높은 시간을 배정해서 가장 많은 시간을 투입할 것.
아이들이 없는 오전 시간이 가장 집중하기 좋은 시간이었고, 나는 그 시간에 강의를 들었다.
들으면서 외우고 이해하기 위해 노력했다.
내게 많은 시간이 없다는 생각에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했다.
아이들이 있을 때는 아이들과 함께 해야 한다는 게 나의 원칙이었고, 그걸 지키려다 보니 혼자 있는 시간의 효율성을 최대한 높여야 했다.
밤만 되면 물먹은 스펀지가 되는 체력 때문에 더더욱 밤에 공부할 생각은 하지도 않았다.
또 다른 시간은 새벽이었다.
밤에 집중력이 아예 없어서 가능한 새벽에 일어났고, 그때 성경을 읽고 기도했고, 책을 읽고 의식을 확장시켜 나갔다.
시도때도 없이 올라오는 포기하고픈 마음을 가라앉히고, 울컥울컥 올라오는 화와 원망을 터뜨리지 않기 위해서는 지속적으로 마음수련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인생에 가장 중요한 목표가 있을 때의 시간 관리 방법은 딱 한 가지다.
가장 중요한 일을
가장 집중력 좋은 시간에,
가장 많이,
집중력 있게 하기.
나머지는 가족의 행복과 나의 마음과 정신의 성장을 위해 사용하기.
복잡한 계획표는 그걸 짜는동안 이미 지쳐버린다.
한 번에 딱 한 가지.
목표한 바를 빠르게 성공적으로 이루기 위한 방법이자, 시간관리를 효과적으로 할 수 있는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