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이 조금 아프다고 하는 큰아이 입 안에 프로폴리스를 열 번이나(평소엔 여섯 번만 뿌려준다) 뿌려주고 재웠다. 혹시 몰라서 배 도라지즙도 따끈하게 데워서 먹였다.
내가 아프기 시작한 지 이틀째였다.
더 심해지지는 않고 그럭저럭 견딜만하다고 여기며 약국에서 대충 감기약을 사다 먹으며 버티고 있었다.
다음 날 아침, 아이가 못 일어난다. 열이 나고 목이 아프단다. 기침하는 소리에 가래가 잔뜩 끼어 있다.
평소엔 간단하게 시리얼로 아침을 대신하지만, 혹시나 해서 밥을 하고 소고기 뭇국을 끓였는데 잘했다 싶다.
힘들어하는 아이에게 국에 밥을 말아 먹으라며 한 그릇 먹이고 설거지는 대충 쌓아놓고 병원 오픈 시간에 맞춰 아이를 데려갔다.
다행히 독감은 아니란다. 목이 많이 부어있고 가래가 심하다고 했다. 집에 돌아와 아이는 약을 먹고 잠을 잤다. 점심을 먹고 또 자고 오후에 조금 앉아 있다가 또 잤다. 저녁때쯤 컨디션이 돌아온 것 같다고 했다.
나는 아이가 자는 동안 뭐라도 하겠다며 책을 읽고 글을 쓰려고 앉아 있었지만, 집중이 되지 않아 시간만 보내고 있었다. 아이가 아파서 나도 붕 뜬 기분으로 하루를 보냈고, 내 맘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스트레스에 먹고 싶은 음식만 머릿속에 맴돌았다.
내일이면 괜찮을 거야. 아이가 학교에 가면 외출하자. 생각하며 겨우 달랬다.
다음 날 아침, 아이는 또 아프단다. 어제보다 열은 더 오르고 목은 더 아프단다. 결국 또 등교하지 못한 아이는 아침을 먹고 약을 먹고 다시 방으로 들어갔다. 한숨 자고 일어난 아이는 잠이 오지 않는다며 거실 소파에 앉았다.
심심해하는 아이에게 평소 좋아하는 프로 ‘벌거벗은 세계사’를 틀어줬다. 아이가 편안한 자세로 TV를 시청하는 동안 나는 잠시 같이 보다가 점심으로 먹일 죽을 쑤러 갔다.
같이 TV를 보며 죽을 먹었다. 그러는 동안 프로는 벌써 두 번째로 넘어갔다.
나는 설거지를 하고 빨래를 돌리고 건조기에 넣고, 건조된 빨래를 가져와 개고 하면서 종일 종종걸음 쳤다.
아이는 앉은 자리에서 벌거벗은 세계사 3개 회차를 클리어하고 저녁 때 하나를 더 보고서는 만족하며 잠자리에 들었다.
반면에 나는 오후 늦게부터 쓰러진 채 일어나지를 못했다. 아프지만 견디고 버텨보려 아프지 않은 척했다. 아이를 돌보느라 그랬던 것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아프다고 다 내팽개쳐두고 드러누워 있지를 못하는 사람이다.
결국 내 몸이 파업을 선언했다.
나는 이런 열악한 조건에서는 일 못하겠다!
영양 제공을 더 하든지(빵과 과자 부스러기 말고 영양가 있는 밥과 반찬을 말함, 군것질은 충분히 하고 있음) 일하는 시간을 줄이든지 해라! 아니면 압박이라도 하지 마라! 라며 시위를 하기 시작한 것이다.
남편이 병원에 가서 수액을 맞으라고 했는데, 혼자서 몸을 일으켜 걸어서든 운전해서든 갈 기력조차 없었다.
다행히 오늘은 아이가 괜찮아졌다며 등교했다.
나는 꼭 병원 가서 수액을 맞으라는 남편의 말을 고분고분 듣기로 하고 병원으로 향했다. 진료실에서 감기로 며칠 전부터 아팠는데, 아이가 아픈 바람에 그냥 버텼다고, 근데 어제부터 너무 기운이 없고 몸살 기운이 있다고 이야기했다. 입속, 콧속, 숨소리까지 확인해 보신 의사 선생님은 감기가 심하진 않은데 콧속이 좀 부어있고, 헐어있다고 하셨다. 그리고 많이 피곤한 것 같으니 비타민 주사를 맞고 가라고 하셨다.
왼쪽 팔에 주삿바늘을 꽂고 누워있으니 혈관을 통해 수액이 주입되는 느낌이 약간 뻐근하게 느껴진다. 혹시 불편하거나 무슨 일 있으면 벽에 있는 검은색 벨을 누르라고 하고 간호사 선생님이 커튼을 치고 나가셨다.
한숨 자야지 생각하고 눈을 감았는데, 자꾸만 번쩍번쩍 눈이 떠진다.
어? 왜 잠이 안 오지? 오디오북이라도 들을까? 아니야, 수액 맞으면서 한숨 푹 자야 컨디션이 좋아질 거야. 생각하며 억지로 눈을 감고 크게 숨을 들이쉬고 내쉬었다.
갑자기 오른쪽 벽 옆에 있는 커튼이 확 젖혀지더니 웬 덩치 큰 남자 아이가 얼굴을 들이민다. 그 뒤로 간호사 선생님이 나티나더니 미안하다는 듯 애매한 웃음을 짓고서는 아이를 데려가셨다.
뭐지? 벽 옆에 왜 저런 곳이 있지? 생각하며 다시 잠이 들려고 하는 순간 다시 그 아이가 커튼을 확 젖히더니 샤프를 내리꽂을 듯이 들고는 나를 노려본다. 정신이 이상한 아이 같다. 벨을 누를 정신이 없어서 그저 소리를 질러댔다. 아이가 샤프를 든 손을 나를 향해 휘둘렀다. 몸을 피하려고 했지만, 한쪽 팔에 주삿바늘이 꽂혀있어 자유롭게 움직일 수가 없었다. 게다가 너무 놀라니 내 몸 같지 않았다.
잠시 후에 달려온 간호사 선생님은 아이를 감싸듯이 안고 데리고 나갔고, 나는 다시 침대에 누웠다. 벽을 흘끗 보니 벨이 보였는데, 나는 왜 저걸 누를 생각을 못 했을까 생각하며 호흡을 가다듬었다.
언제 그랬냐는 듯 정적 속에 내 숨소리만이 들렸는데, 살짝 코를 고는 듯한 소리가 섞여서 들렸다. 이 와중에 코를 고네 생각하며 수액 주머니를 보니 혈관을 통해 내 몸속으로 다 전달이 되었는지 거의 남아있지 않았다.
조용히 커튼 걷는 소리가 들렸고, 간호사 선생님께서 “수액 다 맞았네요.”라고 작게 속삭였다.
힘겹게 눈을 떠서 껌뻑여 보았다. 수액실은 고요했고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벽은 그대로였다. 그리고 그 옆에 커튼 같은 건 보이지 않았다. 침대는 누군가 서 있을 만한 공간 같은 것은 전혀 없이 벽에 딱 붙어 있었다. 꿈을 꾼 건가? 하필 회복하려고 수액을 맞으면서 그런 꿈을 꿀 건 뭐람. 내가 압박을 느끼고 있나? 뭔가에 쫓기고 있나?
러시아의 작가 안톤 체호프가 이런 말을 했다.
“인간은 항상 두 가지를 열망한다. 가질 수 없는 것과 갖고 싶은 것.”
체호프의 말이 맞는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나는 늘 뭔가를 열망하며 살고 있다. 늘 무언가를 갖고 싶어 한다. 작가 손화신은 체호프의 말을 이렇게 해석한다.
“인간은 가질 수 ‘있는’ 것은 갖고 싶어 하지 않는다”
늘 가질 수 있는 것, 이미 가진 것은 뒤로 살짝 밀어놓고, 가지지 못한 것, 어쩌면 가질 수 없는 것에 집착하며 사는 것이다. 그래서 인터넷 쇼핑몰을 헤매고 다니며 이것저것 장바구니에 담아두고 결재는 못 한다. 온라인 서점에도 장바구니에 담아둔 책이 100여 권이 넘는다.
다이어리에는 늘 해야 할 일 목록으로 가득하고, 연간 계획표에도 올해 이루어야 할 목표가 줄을 서서 나를 압박한다. 그런데 목표한 날짜는 이미 지났고, 나는 아직도 제자리걸음을 걷고 있다.
누군가가 보기엔 그럭저럭 잘 살아 있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겠다. 그러나 내겐 언제나 부족하고 그래서 아쉽고, 그래서 못마땅한 일상의 연속이다.
무언가 근사하고 대단하기까지 하진 않지만, 적어도 스스로 만족할 만큼의 삶을 열망한다. 하지만 ‘스스로가 만족한다’라는 기준만큼 어려운 것이 없다. 만족의 기준은 언제나 지금보다 한 계단 위에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바라고 열망하는 것이다. 그러다가 그런 존재가 되지 못하는 내게 실망하고 나락으로 떨어지고 우울의 늪에 빠져버린다.
어른이 되면, 결혼하면, 아이를 낳으면, 40대가 되면 내 삶이 조금은 편안해질 거라는 기대감으로 살아왔다. 그런데 막상 기대한 나이가 되어도 나의 열망은 사그라지지를 않는다. 한쪽이 채워지면 한쪽이 비어있고, 그래서 늘 채운 쪽보다는 비어있는 쪽에 집중했다.
건강한 몸으로 하루를 보낼 수 있고, 사랑스러운 선물들로 가득한 일상이 나를 둘러싸고 있음에도 그런 선물은 그저 당연한 것이라고만 여겼다.
“어린이는 ‘가질 수 있는 것’을 매일 가지고 그것에 기뻐할 줄 아는 사람이다.”
손화신 작가는 <아이라는 근사한 태도로>에서 이렇게 말했다. 어제 하루 좋아하는 프로 네 개를 보고는 만족해서 잠자리에 든 아이가 오늘 아침 벌떡 일어나 등교한 것처럼. 나도 그날 하루 가질 수 있는 것을 가지고 기뻐하는 사람이 되어보면 어떨까.
다행히 나는 오늘 피곤한 몸에 비타민C를 잔뜩 주입한 사람이 되었고, 스타벅스의 블론드 아메리카노와 바비큐 치킨 치즈 치아바타를 먹고 행복해하는 사람이 되었다. 시끌벅적하지만 아무도 나를 터치하지 않는 공간에서 소소한 글을 쓰는 사람이 되었고, 곧이어 일주일 전에 예약한 미용실의 고객님이 되어줄 것이다. 이만하면 완벽하다!
샤프로 나를 찍으려는 사람은 꿈속에서만 존재했고, 현실에서는 그 누구도 그런 식으로 나를 공격하지 않는다. 이런 완벽한 날을 평범한 날이라고 아무것도 아닌 날이라고 누가 말할 수 있을까.